국내 유명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K 씨. 입사지원서를 몇 군데 넣었으나 아직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K 씨가 일본어를 전공하게 된 이유를 들어보니 어릴 때부터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해외문화를 접하다 보니 영어 실력은 좋은 편이라, 일본어까지 잘 한다면 취업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부모의 권유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K 씨가 정작 취업에 적극적이어야 할 시기에 그렇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의 부모는 의아해 하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알아보았다고 한다. 이유는 K 씨 자신이 전공과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내막을 알게 된 그의 부모는 지금이라도 원하는 과(科)로 옮기거나 대학원 진학을 권했으나 K 씨는 학교보다는 현장에서 부딪히며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다. K 씨의 경우는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와 유학생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직업을 선택해야 할 때까지 자신에게 맞는 삶, 또는 직업이 무엇인지 적절히 판단하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서야 고민하는 사례다.

지난 2013년 한국직업훈련개발원이 발표한 <대학생의 실제 전공과 희망 전공 간 불일치 실태와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대학생 45.0%, 4년제 대학생 37.9%가 원하는 전공을 고려해 대학을 선택했다. 특히 입학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대학일수록 성적을 우선 고려한 것으로 드러나, 불과 35%만이 전공을 고려하여 대학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노동시장 이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전공 취업 비율이 전공 일치자보다 낮은 반면 하향취업 비율은 높고, 취업 시 임금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상장기업 임원을 많이 배출한 ‘소케이마치’, 이른바 취업 시장의 인기 상위 7개 대학의 하나인 주오대학에서는 ‘커리어 디자인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신입생부터 2학년까지 학생 자신이 ‘자신에게 맞는 삶’, 즉 직업을 찾아내어 졸업 뒤 사회인으로서 자신을 적극 디자인할 수 있도록 진행하는 진로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를 토대로 3학년 이상 학생들에게는 1대 1 맞춤형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는 오는 2016년도부터 전국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진로 선택 집중학년제’를 도입한다. 운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자 진로교육법이 제정돼 오는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진로교육법은 학생의 발달 단계와 소질, 적성에 맞는 진로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협력과 공공기관의 진로체험 기회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초·중·고·대학교별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진로 교육과 취업 지도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진로 교육 확대에 환영을 표하면서도, 자칫 형식화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에서 진로 교육이 또 다른 스펙 강요로 변질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초·중·고 학생들의 경우는 체험 등 인프라 확충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학생 본인이 가치판단을 확립하고, 이를 토대로 변화하는 직업 세계를 잘 인식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이를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DB)로 관리함으로써 미래사회에 적응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치열한 입시 현장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알아나가야 할 것들을 부모나 선생님이 아닌 학생 스스로가 진지하게 고찰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쳐 학생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찾고, 강점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23일 한국고용정보원의 발표에 따르면 입체(3D) 프린터 개발자, 빅데이터 전문가, 스마트헬스케어 기기 개발자, 엔(N)스크린 서비스 개발자 등 26개 신규 직업들이 한국직업사전에 새로 등재됐다. 사회의 발달에 따라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어느 로봇 공학자는 곧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직업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바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세상이다. 특정된 몇몇 직업군에 치중하는 진로 선택의 획일화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다양성의 확보와 적응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주희

커리어 디자이너, 화가, 전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사무국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