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지난 1일을 기점으로 시행 1주년을 맞이했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제조사의 과도한 리베이트 관행과 가계통신비 요금 인하에 대한 담론이 봇물을 이뤘으며, 정부는 '성공적인 정책'이었다는 평가를 내려 극과 극의 상황인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시장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 영업정지가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며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차분한 복마전
당초 업계에서는 단통법 1주년을 맞아 업계의 비판을 의식한 소위 '플레이어'들이 서로 자중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1일부터 7일간 영업정지를 당해도 사입자 빼앗기 복마전이 별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였다.

이러한 예상은 어느정도 들어맞았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는 4일 SK텔레콤 가입자 숫자가 1일부터 3일까지 모두 1만9335명이 감소했으며 경쟁사인 KT가 1만19명, LG유플러스가 9316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약 2만명의 SK텔레콤 가입자가 사이좋게 KT와 LG유플러스에 유입된 셈이다. SK텔레콤 입장에서는 타격이지만 괴멸적인 피해는 아니다. 통신 3사의 총 번호이동 건수는 3만2777건이며 하루 평균 1만925건 수준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시장의 과열 기준으로 삼는 하루 2만5000건에 미치지 못한다.

1위 사업자가 영업정지를 당하고, 현금흐름이 활발해지는 추석 연휴 직후에 시장이 과열되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단통법 1주년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다. 국회 미방위 국정감사를 통해 단통법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무성해지며 KT와 LG유플러스가 음성적인 리베이트를 풀기 어려워진 대목이 결정적이다. 물론 음성적인 리베이트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2위와 3위 사업자가 공세의 수위를 미리 설정한 상태에서 적당히 가입자를 탈취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는 뜻이다.

정부 당국의 단속의지도 포인트다. 실제로 음성적인 리베이트의 온상지로 불리는 각 온라인 커뮤니티에 3일까지 '번호이동을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되기는 했으나, 이후 방통위 현장조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현장에서도 리베이트를 운운하는 대리점은 별로 없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불법 보조금, 즉 음석적 리베이트의 최소화와 정부의 단속의지가 강제적으로 시장과열현상을 막았다는 평가다.

그래도 문제는 있다
하지만 시장과열현상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순조로운 상태라는 뜻은 아니다. 일단 현재의 상황이 방통위가 정한 시장과열에는 미치지 못해도, 애초부터 단통법의 등장으로 유통시장 자체가 침체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번호이동이 시장과열의 지표인 것은 맞으며, 그 건수가 확연하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시장 자체가 완전히 죽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즉 기기변동과 신규가입, 번호이동 모두 단통법의 영향으로 동반하락했기 때문에 시장과열적 문제에서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중저가 스마트폰 등장도 비슷한 이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단통법의 실효성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단통법의 핵심은 유통구조 투명화와 가계통신비 인하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이 지점에서 유통구조 투명화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나 가계통신비 인하에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보조금 상한제를 통해 유통구조 투명화라는 목적은 달성해도, 가계통신비 인하에는 실패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결론적으로, 시장 자체가 죽어버린 상태에서 SK텔레콤이 약 2만명'만' 빼앗겼다는 것을 두고 '시장이 필요이상으로 과열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뜻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민희 의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6월까지 9개월 동안 이동통신 3사가 지급한 리베이트는 총 2조 271억원으로 SK텔레콤 8780억원, KT 6756억원, LG유플러스 4755억원에 달한다고 지난달 22일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제조사가 뿌린 8018억원을 더하면 2조8289억원이다. 이러한 리베이트가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에 투입됐다면 더욱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일지 않았을까? 보조금 상한제가 없었다면 이러한 리베이트는 자연스럽게 가입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SK텔레콤 영업정지에 대한 '걱정'을 뿌리부터 사라지게 만들지 않았을까? 다양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여기에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4일은 대리점이 문을 열지만 개통은 불가능한 일요일이다. 그런 이유로 가입자들이 나름의 생각을 정하는 시간을 고려할 경우, 월요일인 5일부터 7일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게다가 KT와 LG유플러스는 갤럭시S6와 같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보조금 상한액에 가까울 정도로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맞서 SK텔레콤은 모델인 설현을 내세우는 스타 마케팅과 더불어, 성공적인 기획 스마트폰인 루나를 통해 방어전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적인 효과에는 의문부호가 달리는 상황이다.

결국 SK텔레콤 영업정지와 경쟁사의 차분한 대응, 여기에 따른 당국의 엄격한 규제가 맞물리며 시장과열현상은 벌어지고 있지 않지만 그 기준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단통법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심지어 리베이트를 대리점의 생계수단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