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간 플랫폼이 되는 제조업은 국가산업 전체의 구조적 건전성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독일의 ‘인더스트리4.0(Industry 4.0)’, 미국의 ‘리메이킹 아메리카 프로젝트(Remaking America Project)’ 등 제조경쟁력 강화를 통해 국가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 주도 아래 제4의 제조혁명시대를 열어줄 ‘제조업3.0’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제조현장은 스마트팩토리의 도입으로 노동효율 개선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로 제품 설계, 생산, 유통 등 모든 과정에 유연성을 높이는 ‘맞춤형 공장’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노동개혁, 임금피크제 등 정책적 보조까지 더해져 제조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연일 반복되는 노사갈등과 파업으로 일 보 진전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야말로 위기다. 현장을 많이 접하는 필자는 이러한 우리 제조업의 위기를 단순히 정책이나 환경 등 외부 관점에서만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 담당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제조업 위기와 더불어 현장의 혁신활동이 많이 무너져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기울어가는 현장에 힘을 불어넣어야 할 혁신활동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제조기업 A 사는 15년 가까이 현장혁신활동을 진행했다. 구성원이 스스로 문제를 찾고 형식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해결방안을 모색하도록 했다. 조직별 역량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화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물론, 실질적 변화에 대해서는 인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 초기에는 반발도 심했지만 활동이 정착된 뒤에는 품질, 원가, 생산성, 안전과 직결되는 좋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진화력’이었다. 구성원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활동이 기업의 성과로 기여되기까지 현장 직원에게 스스로 혁신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역량이 생긴 것이다. 정해진 작업장에서 하루 종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현장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강요하기보다, ‘나와 내 가족이 회사보다 우선’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활동의 주체로서 존중해준 결과다. 현재는 기자재나 공정의 품질확보, 기술표준화, 자체기술 전수까지 활동범위가 확장되며 15년간 혁신활동을 거듭할 수 있는 더욱 단단한 체계로 자리 잡았다.

제조업 패러다임의 변화와 관계없이 ‘사람’이 모든 활동의 원천이 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구성원을 존중하기보다 기법 이식에 급급했던 과거의 혁신방법으로는 문제개선은 물론 스마트팩토리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공감과 변화를 바탕으로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혁신이 이어질 수 있도록 내부의 체계를 다시 잡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경영자는 무엇보다 구성원 개개인을 존중해야 한다. 성공적 기법이나 첨단기술은 혁신의 도구일 뿐이다.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현장 직원들이 그것에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유된 공동의 목표 아래 스스로 비전을 세우고 문제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혁신의 시작이다. 작은 변화가 현장의 동력이 되어 위기를 넘나드는 외부환경의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던 즈음 A 사 현장 직원 한 분이 내게 찾아왔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누구보다 반발이 심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당시 그가 건넨 한 마디는 지금도 필자가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큰 힘이 된다. “2000명의 현장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모두 변화시켜주어 고맙습니다”. 기업의 성장보다 더 의미 있는 혁신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