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품어온 것이다. 만약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있다면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첨단과학이 발달한 미래로부터 아무도 현재로 되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불가능한 것 같다고들 말한다.

‘시간이 무엇인지’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근대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과학자들까지도 고민한 주제였다. 수천 년에 걸쳐 과학이 발달해 왔지만 시간의 본질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다. 시간은 지금도 과학 잡지의 훌륭한 주제가 되곤 한다. 우리는 시간을 인식하고 활용하지만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뉴턴의 운동법칙,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에서도 시간을 알 필요는 없다. 삼성전자나 애플이 갤럭시 기어나 애플 워치를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시계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은 많은 일들을 해낸다. 달걀이 부화되기도 하고 꽃이 피기도 하고 우주가 팽창하기도 한다. 시간은 낮과 밤을 구분해줘 사람의 생체 시계를 조절하고 모든 생리작용의 리듬을 관장한다. 두뇌는 시각정보와 청각정보를 동기화해 사물세계를 감지한다. 그런데 시간은 왜 앞으로만 향해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주는 왜 팽창만 하고 수축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우주의 무질서는 시간이 갈수록 왜 심해지는지, 아무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설명하지만 우주의 역사가 시작한 시간이 언제인지도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시간은 우주의 질서

시간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세 가지 관점이 있다. 첫 번째 관점은 시간이 우주의 기본 물성으로 실존한다는 것이다. 공간이나 질량과 같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시간은 사건이 발생하는 틀을 제공해준다. 이것이 바로 뉴턴의 관점이다. 시간은 마치 집 벽과 같이 고정되어 있고 운동을 측정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물체가 얼마나 멀리,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 두 번째 관점은 아인슈타인의 관점이다. 시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관찰자의 운동과 중력 상태에 따라서 각기 다른 속도로 지나간다고 판단한다. 시간은 고착된 것이 아니고 공간과 함께 측정해야만 정확하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뉴턴의 위대한 경쟁자 고트프리드 라이프니츠의 관점으로, 시간은 실존하지 않고 인간 두뇌에 새겨진 가상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주의 본질은 변화하고 있고 시간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정신적 작용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수수께끼에 봉착했다.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물리학자와 철학자들은 아직도 이 문제에 온전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시간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건들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수단이다. 만약 정해진 순서대로 사건이 발생하지 않고 순서가 조금이라도 뒤집히기라도 한다면 우주의 질서가 엉망진창이 될 테니 말이다. 컴퓨터가 제어하는 자동화 시스템에선 사건의 순서가 뒤바뀌면 시스템이 멈춰버린다. 입력이 없으니 프로세싱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다. 하지만 우주의 질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시간 축에서 움직인다.

우주 속을 뚫고 달리는 흔들의자

빠르게 달리는 기차 속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주변의 건물들과 나무들이 빠른 속도로 뒤편으로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바라보면 태양과 별들이 낮과 밤에 번갈아 나타난다고 느끼지만 실제론 지구가 정확히 23시간 56분 4초 만에 한 바퀴씩 자전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자전 속도는 위도에 따라 다른데 북위 37도 34분인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지구의 반지름이 5073㎞ 정도이므로, 서울에서 지표면이 움직이는 속도는 약 1332㎞/h(370m/s) 정도가 된다. 흔들의자에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실제로는 음속(340m/s)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구가 이토록 엄청난 속도로 자전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자전이 등속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구가 가끔씩 회전을 멈추기라도 한다면 사람들은 지구 밖으로 튕겨 나갈지도 모른다. 사람은 비행기 안이든 기차 안이든, 움직이는 물체 안에 있을 때는 속도가 변하지 않은 한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지구의 자전 속도뿐만이 아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365일이다. 지구의 공전 궤도는 타원형이지만 원이라고 가정하고 계산해 보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속도는 초당 29.86㎞ 정도 된다.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던 속도가 초당 17㎞이었으니, 우리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우주선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태양을 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주 공간에서 태양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고 은하계 속에서 초당 210㎞의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또 은하계도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을 기준으로 보면 초당 552㎞의 속도로 우주 속을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우주의 움직임은 인간이 만든 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도저히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속도들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생체시간

시간은 이제 생물학자들의 주제로 옮겨갔다. 생물학적으로 본 시간은 아이슈타인의 관점과 일치한다. 지구에 사는 생물들은 조류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지구에 비추는 태양 빛을 기준으로 진화해 왔다. 지구가 제공하는 낮과 밤의 시간 길이에 맞추어 생물들의 생체 시계가 진화했다. 지구 생물은 지구 공간을 벗어나서는 생체리듬이 달라지므로 생존하기 힘들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의 기준은 지구 공간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시간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상당히 정교하게 인식한다. 인체 감각기관과 두뇌가 정밀하게 시간에 동조해 움직여 준다. 예를 들어 타석에 선 야구 선수가 120m/h 이상의 속도로 날아드는 공을 정확하게 배트의 중심에 맞출 수 있는 이유는, 투수의 투구 폼을 읽고 공이 날아들 궤적을 유추해 미리 몸의 각 근육을 정교하게 움직여서 배트가 공의 궤적과 한 순간에 마주치도록 정밀하게 시간 제어를 했기 때문이다. 두뇌가 인체의 근육 움직임을 생체시간 정보를 기준으로 정교하게 관리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말도 잘할 수 없다. DARPA 로봇 챌린지에서 많은 로봇들이 멀쩡하게 걷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로봇의 구분동작이 순차적으로 제어되지 못해서 무게 중심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인체는 정교한 시간 관리를 통해 각 근육의 동작을 제어하고 있으며, 단순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작에서도 많은 근육들이 마치 오케스트라 합주를 하듯 적시에 최적의 공간이동을 하고 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시간을 감지하는 능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기본적인 감각기능이다.

인간의 두뇌에는 빛에 반응하여 수면을 조절하는 시계가 있다. 생체 시계는 인체의 모든 세포의 활동도 제어한다. 간에도 시계가 있고 비장에도 시계가 있고 그리고 지방세포에도 시계가 있다. 생체 시계는 잠을 청하고 식사 시간을 지정한다. 호르몬을 조절하고 당분이나 인체에 중요한 생물학적인 과정을 지배한다. 생체 시계를 통해 일정을 관리하는 것은 많은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흔한 일이다. 그러나 생체 시계가 일상적이고 중요해질수록 왜 이런 시계가 맨 처음에 필요했는지 신비롭게 여겨진다. 많은 과학자들은 여러 생물이 독립적으로 각각 자신만의 기준으로 생체 시계를 발전시켜온 점을 주목한다. 생물체들은 아마도 태양빛 속의 해로운 자외선을 피하고 자신의 허약한 DNA를 보호하기 위해 세포 단위로 진화한 것으로 짐작해 왔다. 하지만 또 다른 과학자들은 인체의 모든 시계들이 관장하는 모태 시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원래 생물학적인 시계는 오늘날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정교한 신체 시계를 닮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전적인 시계는 아마도 해시계처럼 간단하게 시작했지만 점점 더 정교해지면서 오늘날처럼 인체의 모든 대사작용을 조절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생체 시계는 RNA 분자와 단백질들로 풍부하게 구성되어 있다. 하루 중 특정 시간이 되면 어떤 단백질 시계가 세포 내에서 메신저 RNA를 생산하도록 지시하고, 동시에 다른 시계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이 단백질 양이 임계값을 넘어서면 더 이상 메신저 RNA를 생산하지 않도록 한다. 이렇게 자기억제 기능이 있는 단백질은 다시 분해되어 농도가 임계치 아래로 떨어지면 다시 메신저 RNA를 생산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식이다. 자연계의 생물들은 사이아노박테리아, 균류, 식물, 곤충을 가리지 않고 각자 자신에 맞는 생체 시계를 지니고 있다. 단백질 종류도 서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메신지 RNA와 단백질 생산의 증가와 감소를 예측해서 거사를 도모한다. 생체 시계는 인체의 리듬을 생물학적으로 예측하고 조절하는 생물학적 시간이다. 미래과학은 이제 생체 시계의 비밀을 좀 더 파헤쳐 인체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