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위기 때마다 고민입니다. CEO가 위기 때 나서지 않는 거예요. 내부 대응 미팅에도 참여하지 않고요.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의사결정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임원들끼리 모여 의견을 나누고 여러 시나리오를 가지고 올라가 CEO에게 선택을 구하는데요. 빠르고 효율적이지 않네요. 이런 CEO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우선 고생이 많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런 고민은 외국 기업의 실무자들도 많이 하는 것 중 하나인 듯합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위기관리 전문가가 이런 조언을 하더군요. “위기가 발생했을 때 CEO와 함께 정확하게 위기관리 목표(Goal)를 공유해라. 당신이 세운 이번 위기관리의 목표는 어떤 것입니까? 질문해라. 그리고 조언할 때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활동들을 결과와 함께 조언하라” 맞습니다. 필자는 이분의 조언에서 ‘행동’만을 조언하려 하기보다 ‘그 결과’를 함께 조언해서 ‘목표와 결과를 함께 관리하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지금 질문한 분처럼 많은 실무라인들은 생각에 ‘우리 CEO는 위기관리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CEO가 위기관리를 잘 모르는 것 같아’, ‘CEO는 자꾸 피하려고만 해서 문제야’라는 느낌이 상당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왜 기업을 책임지는 CEO가 위기관리에 관심이 없겠습니까? 오랫동안 경쟁으로 성장해 그 자리에 오른 CEO가 위기관리 자체를 모르기야 하겠습니까? 기술이나 기법의 문제는 좀 다르겠지만요. 그리고 리더인 CEO가 왜 피하려고만 하겠습니까? 평소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분인데요. 왜요.

필자가 말하려는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그 CEO는 나름대로 위기관리를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절대로 CEO의 지식이나 성격이나 습관 때문에 ‘뒤로 빠지는’ 대응을 하는 게 아닐 거라는 의미입니다. 전략적이라는 거죠. 앞의 위기관리 전문가 조언을 빌리자면 ‘CEO의 위기관리 목표’가 일부 임원과 실무자들이 가지는 ‘위기관리 목표’와 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겁니다. 그럼 그 CEO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대부분 그런 CEO는 위기관리를 ‘지는 게임’이라 간주하는 분들입니다. 즉 위기가 발생하면 마음속으로 ‘지는 게임에 리더십을 보이려다 실패할 경우, 우리 회사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아주 심각하게 고려한다는 거죠. 물론 회사를 위해 이번 위기를 관리는 해야 하지만, 그걸 CEO인 자신이 리드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위기관리 목표가 다른 거죠. CEO를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기업문화 문제이기 때문이죠. 위기관리에 실패했을 경우 그를 리드했던 최고경영진에게 부정적 평가를 내려 인사상 불이익을 주곤 하는 기업문화 말입니다. 이런 담장을 걷는 위기관리에 어떤 리더가 매번 나서서 명운을 걸겠습니까? 문제가 CEO라기보다는 그 전문경영인을 움츠러들게 한 내부 기업문화와 정치구도가 진짜 문제라 볼 수 있습니다.

귀사가 그런 기업이라면, 아마 CEO를 대신해 위기관리를 리드하다 실패한 고위 임원도 사후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악순환은 계속될 겁니다. 그분을 CEO의 희생양이라고 부르기도 하겠지만, 그 또한 기업문화와 정치의 당연한 소산이죠. 그 대상만 다른 결과죠. 모든 기업 활동들은 진행 순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서에 따른 진화가 이루어지고요. 성공적인 위기관리 문화가 내부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위기를 바라보는 기업문화가 건전하고 발전적이어야 합니다.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고,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라.’ CEO를 비롯 모든 임직원들에게 평시와 위기 시 적극적 위기관리를 주문하는 명령입니다. 또한 선진기업들의 위기관리 매뉴얼처럼 ‘위기관리에 관한 모든 리더십과 책임은 CEO에게 있다’는 문구에 주목할 수 있는 기업문화여야 합니다. CEO를 중심으로 짜 놓은 위기관리위원회와 그 아래로 연속해서 펼쳐진 역할과 책임들을 평소에 지속 교육 훈련하는 것이 당연해야 합니다.

만약 위기관리 매뉴얼에도 CEO의 책임 문구를 삭제하고, 위기관리위원회 구조와 구성을 실무임원단으로 배열하고, 각종 귀책 항목들을 아래로만 향해 놓았다면, 그런 기업문화와 정치구도라면 필자는 진정한 위기는 바깥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봅니다. 즉 태생적으로 풀리지 않을 고민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