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글로벌 브랜드로 잘 나가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신속한 시장대응, 우수한 제품, 공격적인 글로벌 마케팅…? 이 모두가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필자가 현장에서 경험한 바로는 구매접점에서 잠재고객을 사로잡는 현장 마케팅이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필자가 유럽에서 광고회사 주재원 생활을 할 때 삼성은 LCD TV로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게 되었는데, 철옹성 같던 소니를 꺾고 1위로 올라서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그때 소니는 ‘color like no other’를 슬로건으로 칸에서 상까지 받은 대단히 성공적인 TV 캠페인을 펼쳤는데, 삼성은 오히려 판매점에서 ‘Shop Display’를 매력적이고 차별적으로 시연해 잠재고객들을 실제 구매자로 낚아챘다. 안방에서 소니 캠페인을 보고 LCD TV를 살 마음을 품게 되어 판매점에 온 구매 고려자를, 삼성이 멋진 숍 디스플레이로 유혹해 삼성 LCD TV를 사게 만든 것이다. 별 특징 없이 전시돼 있는 소니 제품 대비, 멋지게 설계된 전시공간에 최적의 제품정보와 시연이 이루어지는 삼성 제품을 보면 안 사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렇듯 소니와 삼성의 대결은 안방의 소비자만을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낡은 패러다임과, 판매 현장의 구매자를 잡고자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결을 원시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삼성의 사례에서 단초를 볼 수 있었듯 안방의 ‘소비자’가 아니라 판매 현장의 ‘구매자’, 이른바 쇼퍼(Shopper)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 요즘 광고, 마케팅의 절대 명령이 되었다. 쇼퍼의 특성, 상황, 욕구를 정확히 읽어내 그에게 최적의 광고, 마케팅 제안을 제공해 구매로 연결하는 ‘쇼퍼 마케팅(Shopper Marketing)’이 기존의 ‘소비자 마케팅(Consumer Marketing)’을 넘어선 새로운 관점과 접근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비콘이나 측위 기술의 발전으로 위치 기반 마케팅(Location-Based Marketing)이 구현되고 있는데, 이런 마케팅 실험은 쇼퍼 마케팅이 단지 이론적 구상이 아니라 실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아직은 위치기반마케팅의 실효성에 대해선 논란이 많은 게 사실이다. 아직 구매여정을 거치고 있는 쇼퍼의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데 부족함이 많다. 잠재고객의 상황과 욕구가 생기는 컨텍스트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하고 판매, 프로모션 제안들을 일률적이고 일방적으로 쏘아대니 스팸으로 인식돼 반응률이 뚝 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있긴 하지만, 쇼퍼 마케팅으로 전환은 거역할 수 없는 큰 흐름이 되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몸담은 회사에서도 쇼퍼 마케팅 구현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먼저 쇼퍼 마케팅 전략수립을 위해 구매자의 구매 여정(Purchase Journey)을 정확하게 읽어내려 하고 있다. 구매 전(Pre)-구매 중(During)-구매 후(Post) 단계별로 어떤 접점에서 정보를 찾고, 제품을 비교하고, 최종 구매의사결정을 하는지, 구매 후에는 어떤 구매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지 파악하는 작업을 정교화하고 있다. 광고가 집행되는 매체 접점을 파악하는 Watch 단계에만 머물지 않고, 구매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파악하는 Buy 단계까지 연결되는 양상 및 Watch와 Buy 간의 영향 관계를 밝혀내려 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 소니처럼 욕구자극에만 머물고 구매 성과로 연결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와 닐슨, 오라클이 전략적 협력에 관한 MOU를 맺은 것도 이러한 쇼퍼 마케팅 정교화를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닐슨의 구매자, 리테일 산업 분석력과 오라클의 마케팅 클라우드 서비스 플랫폼을 결합하면 Watch에서 Buy에 이르기까지 쇼퍼 분석력이 고도화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쇼퍼 마케팅 실행력이 강해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둘째는 쇼퍼 마케팅의 실행 플랫폼을 직접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유투브가 광고매체이자 마케팅 플랫폼이 되었듯, 우리도 광고 거래대행 방식을 넘어서 실제 광고, 마케팅이 실행되는 플랫폼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모바일 쿠폰을 판매하는 플랫폼뿐만 아니라, 위치기반 마케팅에 탑재하는 광고집행 플랫폼, 구매현장에서 스마트 디지털 사이니지 등 여러 ‘쇼퍼 마케팅’을 Activation하는 플랫폼을 구상하고 구축하는 중이다.

‘광고비의 반절이 낭비되고 있는데 그 반절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한 유명한 광고주의 한탄이 자주 언급되곤 하는데, 이제 쇼퍼 마케팅을 돌파구로 이런 광고주의 한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되었다. 빅데이터와 기술 발전의 도움으로 이런 바람이 실현될 가능성은 한층 밝아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매체에 국한된 광고라는 형식만 생각하지 말고 구매여정에서 쇼퍼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어떤 새로운 형식과 내용이 필요한가를 고민하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제 광고를 쇼퍼 마케팅의 첨병이 되게 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