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추석 하면 옛 어른들이 들려준 동화 같은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달에 옥토끼가 산다는 이야기다. 사리판단이 여물지 못할 나이인 5~6세 때 어른들은 추석날마다 음력 8월 15일 앞산 위로 둥그렇게 떠오른 대보름달을 가리키며 “얘야, 저 달에 계수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고, 그 아래서 옥토끼 한 쌍이 방아 찧고 살고 있단다”라고 들려주곤 했다. 이 같은 달나라 옥토끼 주술은 1969년 미국이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를 달 표면에 착륙시켜 인간의 발을 내딛게 한 과학의 힘으로 깨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간혹 보름달을 쳐다볼 때마다, 달나라 옥토끼 얘기가 비록 ‘지어낸 허구’일지라도 ‘미지세계를 향한 동경’이란 점에서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키우는 촉매 역할을 했던 점을 인정했다. 만일 인류가 달이란 존재를 알게 된 이후 달을 보고도 아무런 심미적 감흥이나 상상의 나래를 품지 않았다면, 아마 아폴로 11호 우주선은 없고 달도 영원히 ‘옥토끼가 사는 세계’로 남아있을 것이다.

때가 때인 만큼 추석과 관련된 달나라 옥토끼 이야기를 꺼냈지만, 실상은 명절인데도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둥그런 보름달처럼 원만(圓滿)하지도, 옥토끼 방아질처럼 한가한 형편이 아니다. 지난 13일 노사정위원회가 정부의 종용에 쫓기듯 도장을 찍은 노동개혁 합의 때문이다. 노사정 3자가 비록 합의에 도달했지만 노동시장 개편을 담은 노동개혁 대타협을 놓고 벌써부터 재계는 재계대로, 노동단체는 노동단체대로 제각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강성 노동계는 이번 노동개혁이 “쉬운 해고, 임금 삭감, 비정규직 확대를 규정한 개악”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도 경제단체 입장을 통해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드는 노동개혁이라 평가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며 달갑지 않다는 뜻을 나타냈다. 자유시장주의를 표방하는 한 경제연구기관의 토론회에선 아예 이번 노사정위의 노동개혁 대타협을 ‘최악의 합의’라고 맹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치권에서도 청와대의 ‘노동시장 개편’ 지시를 받은 여당만 반길 뿐 야당들은 일제히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노동개악’이라며 향후 정부의 법안 처리를 적극 저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노사정 대타협의 당사자들인 노(勞)와 사(使)가 반대하고, 나머지 정(政)도 둘로 나뉘어 분열돼 있는데 과연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말이 온당한가? 노동개혁 합의에 참석한 노사정위 대표자들은 정말 각 진영의 대표성, 그리고 국민적 대표성을 갖는가? 물론 국민 전부를, 사회운영 주체 모두를 100% 만족시킬 대타협이란 성립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번 노사정 대타협을 준비하면서 노사정위원회는, 그리고 정부는 노동시장 개편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불특정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에게 과연 노동개혁의 진정성과 찬반 의견을 구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정부는 저성장 기조에서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노동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면서 2002년 당시 독일의 사민당 슈뢰더 총리가 추진하고, 이어 기민당 메르켈 총리가 주도한 노동시장 개혁 방안 ‘하르츠 개혁’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노사정위원회와 독일의 하르츠 위원회는 구성부터 달랐다. 한국 노사정위가 각 진영의 대표자 중심으로 이뤄진 반면에, 하르츠 위원회는 노사정의 직접 당사자는 배제하고 전문가그룹 15명으로 구성했다. 그렇기에 불과 10개월 만에 하르츠 개혁안이 확정되고 입법화가 일사천리로 진행돼, 이듬해인 2003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르츠 개혁안도 독일의 일부 국민과 단체로부터 저항을 받고 소득 불균형과 양극화를 심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대체로 하르츠 개혁 시행이 독일의 통일 이후 불거진 경제침체를 회복하고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토대가 되었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하르츠 개혁의 결과를 마음에 두고 있는 듯하다. 특히 북한정책과 외교 분야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지만, 경제 분야 국정수행에서 그다지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 임기 내에 뭔가 가시적인 경제성과 도출에 욕심을 부릴 만하다. 국정 지도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책무이다. 그러나 이해를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번 노사정위의 노동개혁 대타협은 한마디로 두루뭉술하고, 노사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졸속의 느낌이 짙다.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의 조급함이 작용했다면 그건 더더욱 국민의 이해(利害)와 지지를 배반하는 것이다.

이번 추석에 여야 국회의원들은 저마다 지역구로 내려가 민심을 살필 것이다. 19대 국회 마지막 회기인 데다 내년 총선을 앞둔 만큼, 고향에서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목소리를 모으려 할 것이다. 그런 정치인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우리 청년 구직자들 장래와 중장년 근로자들 노후를 어떻게 균형 있게 조화시킬 수 있을지, ‘노동개혁’에 대한 민의(民意)부터 제대로 챙겨 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