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면세점 사업권을 따기 위한 2차전을 준비 중이다. 유통업계 마지막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지난 7월에 이어 대기업 간 빅매치가 예고되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올해 11월부터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서울 시내 3곳과 부산 1곳의 면세점 사업권을 지키려는 기업과 빼앗으려는 기업들의 치열한 눈치싸움과 결과에 영향을 미칠 대내외 변수다.

관세청은 오는 25일 롯데가 운영 중인 서울 소공동점(12월22일)과 잠실 월드타워점(12월31일), SK네트웍스의 워커힐점(11월16일), 신세계 부산 조선호텔점(12월15일) 등 총 4개 시내면세점 특허 입찰 접수를 마감한다.

시내 면세점은 과거 특별한 사유만 없다면 사업권을 10년 보장 받았지만 2013년 관련 관세법이 바뀌면서 롯데와 SK 등 기존 운영 업체들도 5년 마다 특허권을 놓고 신규 업체들과 똑같은 경쟁을 치뤄야 하는 형편이다.

공항면세점과 달리 외국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시내 면세점 사업은 최근 몰려드는 유커(중국 관광객) 덕분에 유통업계 마지막 남은 대박 사업으로 손 꼽힌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단 2계층을 이용하는 면세점 매출이 1조9763억원으로 롯데그룹 전체 매출의 52%를 차지할 정도다. 이는 서울 시내 6개 면세점 전체 매출 4조3502억원의 45.4%를 차지하는 규모이기도 하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전통적인 유통 채널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 관광객 특수를 맞으면서 면세점 매출은 2007년부터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2012년부터는 영국과 중국 등을 제치며 규모 면에서 세계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한파로 유통업계 6월 매출이 급감한 와중에도 롯데면세점은 상반기에 작년보다 20% 증가한 2조1385억원의 매출과 47% 늘어난 2293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국내 면세점 사업을 업체별로 살펴보면 롯데와 신라의 매출액이 각 2조2914억원(50%), 1조3542억원(30%)으로 전체 매출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매장별 매출액은 호텔롯데 롯데면세점 본점이 1조882억원, 호텔신라가 6371억 원, 호텔신라 인천공항면세점이 4581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유통 대기업들 '빅매치' 2라운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면세점 사업권을 얻기 위한 대기업간 신경전은 ‘전쟁’에 비유될 만큼 치열하다. 신규 면세점 사업권 3곳이 추가되는 심사에서는 7개 대기업이 총력전을 펼쳐 현대산업개발과 손 잡은 호텔신라의 HDS신라와 63빌딩을 면세점으로 바꾸겠다는 한화그룹의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1, 2위로 선정됐다. 중소기업 몫 1개 사업권은 하나투어가 최대주주인 에스엠이 획득했다.

이번에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롯데와 SK등 기존 사업권자는 텃밭을 수성해야 하는 입장이고 1차전에서 탈락한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은 설욕전을 다짐하고 있다. 여기에 두산까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지난 2일 깜짝 참여를 발표한 두산은 동대문이라는 지역적 장점을 최대한 부각하며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동대문 상권의 터줏대감인 두산그룹은 2일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를 면세점 후보지로 정해서 이달 25일까지 면세점 허가 신청을 하겠다"며 "동대문 지역을 명동에 이어 제2의 허브 관광지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7일에는 동대문 상인들로 구성된 동대문패션타운 특구협의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동대문지역 관광과 상권 활성화를 위한 본격 행보를 시작했다.

동대문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명동과 함께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4년 서울시 관광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대문은 명동(55.1%)을 누르고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지역 1위(55.5%)에 오를 정도로 인기다. 때문에 지난 7월 시내면세점 입찰에 참가한 21곳 중 대기업 중에서는 롯데와 SK네트웍스가, 중소기업 중에서는 중원면세점과 키이스트, 그랜드관광호텔, 동대문소상공인연합회, 한국패션협회 컨소시엄, 동대문24면세점 등 8곳이 동대문을 후보지로 지목하기도 했다.

두산그룹도 "연간 두타(두산타워) 방문객 2000만명 가운데 외국인은 500만명으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350만명은 중국인"이라고 강조했다.

두산 행보에 시선이 가는 또 다른 이유는 업계 1위를 장악한 롯데의 불안한 처지 때문이다. 최근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따가운 국민 눈총을 받고 있어 정치권에서는 이 참에 재벌들의 지배구조를 손 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때문에 현재 롯데가 보유 중인 2개 면세점 가운데 하나는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지 않겠냐는 전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특히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은 상공업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어 이 같은 흐름을 가장 빨리 파악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OB맥주 등 소비재 산업으로 성장한 두산그룹은 중공업과 건설 중심의 포토폴리오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롯데가 1개 면세 사업권을 내놔야 한다면 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소공동(매출 1조9763억원) 면세점 보다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월드타워점(매출 4820억원)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롯데는 2016년 5월 김포공항점, 2017년 12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점 특허 만료까지 앞두고 있어 기존 사업권을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때마침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면세점 시장의 독과점을 해소하기 위한 독과점 기업에 대해 신규특허 및 재허가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관세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심재철 의원은 면세점 특허 공고일 직전 사업연도의 면세점 매출액이 전체 매출액의 30%를 초과하는 기업'에 대해 특허를 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기존 사업자 SK네트웍스도 지난해 27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알짜사업’을 절대 포기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SK네트웍스는 11월16일 특허 만료를 앞두고 워커힐 면세점을 리뉴얼 오픈할 계획이다. 새롭게 단장한 면세점으로 해외 관광객들을 맞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23년 면세 사업 경험을 가지고 있는 SK네트웍스는 워커힐 면세점 1층과 2층을 새 단장해 기존 보다 약 2.5배 커진 3000여평 규모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특히 워커힐 면세점은 라이프스타일 쇼핑과 다양한 문화 경험, 레저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는 국내 유일 복합 리조트형 면제점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더욱이 SK는 지난 7월 입찰에서도 경쟁사들을 압도하는 5500억원 투자 계획으로 동대문일대를 패션과 문화, 관광을 아우르는 글로벌 면세점 타운을 만들겠다는 전략을 내놓고도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수성’만 전념한다는 계획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7월 신규 사업자 입찰에서 아깝게 4위로 고배를 마신 신세계도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 표명은 하고 있지 않지만 참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충무로 본점을 통째로 면세점으로 바꾸고 새로 매입한 전 제일은행 건물까지 활용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고 명동 상권의 지존으로 올라서겠다는 포부가 좌절됐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명동뿐만 아니라 남대문 상권 전체를 살리겠다는 상생안까지 제시했지만 사촌인 호텔신라에게 양보해야 했다. 다만 현재 보유 중인 부산 조선호텔 면세 사업권도 지켜내야 하는 상황에서 중복 입찰이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백화점도 아직까지 입찰 참여 여부는 정해진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백화점은 삼성동 코엑스 면세점과 연계해 삼성동 현대백화점에 면세점을 세워 강남으로 몰리는 중국 관광객들을 잡겠다는 계획을 이미 제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영업이익의 20%를 사회 환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도 내놨지만 결과는 참가 기업 7개 중 가운데 7위를 기록해 현실의 벽을 경험했다.

현재 서울시에는 신라호텔(호텔신라), 워커힐(SK네트웍스), 소공동(롯데), 코엑스(롯데), 월드타워(롯데), 동화면세점 등 기존 6개에 용산 현대아이파크(HDC 신라), 여의도 63빌딩(한화겔러리아티임월드), 인사동 하나투어건물(에스엠) 3곳이 추가돼 모두 8곳 시내 면세점이 영업을 하거나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