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인의 날을 맞아 미술인상을 수상한 중견작가들과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인사동 공평갤러리. 김흥수, 이정웅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작가들의 그림이 거의 반값에 전시돼 있다.
작년 같으면 올리자마자 팔렸을 만큼 마니아층을 형성한 작가들의 작품도 그대로 걸려있다. 130여점 중 판매된 것은 고작 4작품과 예약 두 작품.
한국미술협회 정선미 위원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인지도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파격적인 가격에 내놨으나 찾아오는 발길이 뜸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풍경은 화랑가뿐만 아니라 옥션도 마찬가지다. 찾아오는 발길이 뜸하다 보니 시중의 그림가격은 20~30%, 심지어 반토막까지 빠졌고 옥션의 시작가도 30% 정도 낮춰 시작해 그 언저리에서 낙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미술품 가격하락은 컬렉터들이 경기가 좋았던 최근 1~2년새 미술품에 많은 자금을 투자했지만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자금회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엠포리아갤러리 관계자는 “얼마 전 소더비즈 경매에 14개를 내놔 12개가 낙찰됐지만 거의 반값에 낙찰됐다”면서 “이것은 우리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갤러리 입장에서는 해외보다 국내시장이 자금 회수력이 빨라서 좋고 국내투자자 입장에서도 해외 작품이 국내시장에 소개돼 있다면 굳이 해외까지 나가서 구입할 필요가 없을 만큼 값이 저렴해졌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술품가격 하락 추세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내년 상반기를 저점으로 하반기부터는 점차 살아날 것으로 전망했다.

엽기적 사실주의 그림 인기
따라서 지금은 관망할 때가 아니라 평소 눈여겨봤지만 구할 수 없었던 작품들을 시장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다. 더구나 2010년부터 개인이 거래한 4000만원 이상의 미술품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안이 통과된다면 올해와 내년은 다시없는 호기가 될지도 모른다.
최근 화풍의 유행은 단연 ‘장 샤오강’풍 강한 인상의 얼굴 그림이다. 또한 사진같이 사실적인 하이퍼 리얼리즘도 유행하고 있다. 정선미 작가는 “최근에는 창자가 삐져나와 있는 엽기적이거나 험악한 사실주의 작품이나 일러스트풍의 그림이 인기 있다”고 귀띔했다.
또 팝아트의 영향을 받아 동시대 그림도 주목받고 있다. 해외에서는 김동유, 홍경택, 최소영, 강형구 등 국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호하고 있다고. 그래서 최근 투자자들은 글로벌 마켓에 어필할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이 누구일지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다.
현재 엠포리아 갤러리의 ‘미술품 빅세일전’에서는 해외 유명작가의 작품들을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만나볼 수 있다. 해외 도록에 소개되기도 했던 폴 아이즈피리의 <플룻연주가>는 4700만원인 작품이 3800만원에, 7억원인 르누아르<핑크색 블라우스를 입은 안드레>가 4억8천만원, 앤디워홀의 <리즈>는 8000만원인 작품이 560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그외 프랭크 스탤라, 라울 뒤피, 샤갈 등 유명작가들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미술협회가 주최한 ‘2008 대한미국 미술인의 날 특별기념전’이 열리는 인사동 공평갤러리에는 호당 30만원 하는 작품이 거의 반값인 10만~15만원에 전시돼 있다. 김흥수 화백의 <안식>은 2500만원인 작품을 2000만원에 내놨고, 이정웅의 <붓>은 5000만~9000만원인 작품이 4500만원에 나왔다. 이밖에도 이정웅, 고석원, 구자동, 이강욱, 문인환, 김성호 등 대한민국 대표 미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
또 인사동 한국미술센터가 기획한 ‘용기백배-그림선물특가전’에서는 한국화 화가 김춘옥, 여운, 송수련, 손혜림 등 29명의 작품 300여점을 시중보다 30%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갤러리고도의‘드림프로젝트’에서는 고영미, 김진경, 박성현, 이영진 등의 31명의 작품 30여점을 30% 이상 할인된 가격에 만나볼 수 있다.
옥션도 저렴하게 내놓기는 마찬가지. 12월16일에 열리는 서울옥션의 올해 마지막 경매에는 내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기를 기념해 안중근 의사의 옥중휘호가 출품됐다. 이 휘호는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 라는 글귀로,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필히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는 구절을 안중근 의사가 직접 적은 것이다. 이 휘호의 왼쪽 아래편에는 ‘경술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고 쓰여있고, 안중근 의사 특유의 수장인(手掌印)이 찍혀있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이 작품의 추정가는 3억~4억원으로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3억원의 약 80%선에서 시작가가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취향 고려해 장기 투자해야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에게 미술 작품을 단순히 재테크로만 생각하고 뛰어들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자신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어떤 작품이 좋다더라는 주변의 말만 믿고 작품을 구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엠포리아갤러리의 정연석 대표는 “투자자들이 작년 같은 호황만 생각하고 단기투자를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했다가 가격이 떨어지자 당황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미술작품은 최소 5년 이상은 가지고 장기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매에서 샀던 작품을 다음 달에 또 다른 경매에 내는 사람도 있지만 한두 달 만에 수수료를 빼고 이익을 낸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김명진 서울옥션 이사도 “국내시장의 거품이 많이 꺼졌기 때문에 해외시장보다 가격이 더 떨어진 작가들도 있다”며 “이런 작품들을 잘 골라 사두면 곧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지금은 예전 같으면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좋은 작품을 다양한 루트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기회지만 장기투자로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희나 기자 hnoh@ermedia.net

박스
인터뷰 | 김명진 서울옥션 이사

“좋아하는 작품 나오면 적극적으로 사라”

Q 최근 시장에서 미술작품의 가격이 20~30%, 많게는 반값까지 떨어졌는데 지금이 투자할 적기라고 보는가.
시장에 거품이 많이 빠져 미술품 가격이 하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이 최적기라고 누구도 쉽게 단언할 수 없다. 미술품은 각자가 구입한 시기, 개별가격이 있고 주관적인 취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미술시장은 전무후무하게 호황이었다. 당시에는 구하려야 구할 수 없었던 작품들을 요즘 같은 때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만일 미술품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시장의 전반적인 정보에 귀를 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눈여겨봤던 작가의 작품이 나왔다면 지금은 적극적으로 사야 할 때라고 본다.

Q 투자자들이 미술품 정보를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안목은 작품을 보면서 공부해야 생기는 것이다. 정보를 수집하려면 발품을 파는 방법밖에 없다. 자신이 관심 있는 작가들의 시중가격을 옥션 홈페이지에서 파악해보는 등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챙긴 후에 인사동 화랑을 돌아다니면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또한 화랑에 적극적으로 정보를 요구해 수시로 정보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Q 최근 은행의 PB들은 갤러리를 여는 등 고객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미술품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보는가.
미국의 유명 보험사의 PB들은 미술품 딜링을 겸해서 한다고 들었다. 그들에게는 전문 아트딜러를 공유할 수 있는 공유망이 있다고 알고 있다. 고액자산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미술품에 대한 전문지식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PB센터에서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작가들의 작품세계나 향후 전망 등 전문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PB들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Q 어느 정도의 자금이 있어야 미술품투자에 참여할 수 있을까.
미술품에 대해 관심이 있어 공부를 하고 싶다면 직접 구입해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돈을 투자하면 그만큼 빠르게 학습할 수 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작품들 중에는 몇 백만 원만 가지면 투자할 수 있는 작품들이 굉장히 많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접근한다면 미술품투자는 매우 쉽다.

Q 현재 국내 미술시장은 어느 단계인가.
국내 경제 수준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경제 수준에 비춰보면 ‘박수근’의 작품들은 더 비싸게 평가받아야 할 작품들이다. 큐비즘(입체파)이 나오기 전, 피카소가 20대 초반 빈민가의 소외된 사람들을 그렸던 <청색시대>라는 작품은 우리 돈으로 1000억원에 팔렸다. 그에 비해 작년 전무후무하게 호황이었던 국내 미술시장의 규모는 4000억원 정도밖에 안 된다. 그만큼 국내 미술시장은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높다.

사진설명
김흥수 | 안식
프랭크 스텔라 | 악수
폴 아이즈피리 | 플롯연주가
앙드레 브라질리에 | 황혼의 승마
이정웅 | Brush
안중근 | 유묵

오희나 기자 hnoh@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