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IoT) 산업의 긍정적 전망과 함께 반도체 산업도 장밋빛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 주요 기업들의 새로운 시도와 후발주자의 공격 속에서 ‘샌드위치’가 될 판국이다. 기존의 안정적인 시장에 안주하기보다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 반도체 제품별 세계시장 비율(2014년). 출처=iSuppli, 산업연구원

반도체 시장은 크게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반도체)로 나뉜다. 메모리반도체는 다시 D램, 낸드플래시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된다. D램은 매우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저장, 또는 저장 내용을 바꿔 다시 넣을 수 있는 기능이 있지만 전원이 끊기면 기록해 둔 자료가 사라지는 특성이 있다. 과거에는 주로 PC용 주기억장치에 사용됐으나 최근에는 모바일 기기에 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에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끊긴 뒤에도 정보가 계속 남아있는 메모리 반도체로서 D램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향후 하드 디스크(HDD)를 대체할 유망한 반도체로 지목받고 있다. 현재 낸드플래시는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 등의 저장기기로 사용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며,, 경쟁력의 핵심 요소는 표준품 대량생산에 필요한 공정기술이다. 수요 측면에서 볼 때, 특정기기에 한정돼 있어 공급 증감에 따라 수급 불균형의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수익적 특성을 지닌다.

모바일 시대, 메모리 반도체의 변화와 시스템 반도체

PC시대가 가고 모바일시대에 접어들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급 구조는 큰 변화를 겪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과거 데스크탑PC, 노트북PC, 게임기, 디지털카메라 등을 대체하면서 반도체시장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D램의 수요 구조는 모바일로 전환되고, 클라우드의 발달도 낸드플래시의 시장구조 또한 기업 서브나 데이터센터 저장장치 분야로 이동하는 상황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데스트탑PC의 20% 정도만 소요된다. 결국 반도체업계는 새로운 수요처를 찾아 신속한 개발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도태되는 비운을 맞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 엘피다의 파산.

엘피다는 스마트폰용 메모리반도체를 신속히 개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미국의 마이크론에 매각됐다. 뿐만 아니라 시대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PC용 메모리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HP 등도 부진을 겪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기간에 삼성전자, 애플, 퀄컴, 샤오미 등 모바일용 메모리반도체 주력 기업들은 대약진을 일궈냈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시스템반도체보다 적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서플라이(iSuppli)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메모리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23.3%, 시스템반도체는 76.7%를 차지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저장을 주로 담당하는 기능을 해 스마트폰 등 특정제품에 한정되는 등 수요시장을 크게 확대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물인터넷 산업의 발전은 반도체업계에 또 한 번의 격변을 예고한다. 사물인터넷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시스템반도체가 요구된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Gartner)는 2015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전년대비 4.0% 증가한 35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스마트용 반도체의 기여율은 81.1%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으며, 뒤이어 ▲저장장치 SSD용 반도체 29.5% ▲울트라모바일용 반도체 16.9% ▲산업용 반도체 14.3% ▲자동차용 반도체 14.1%  순으로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매출액별로 보면 2015년 현재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PC 등 데이터 프로세스(38%) 분야이며, 스마트폰 통신(31%)과 함께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로 자리잡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2014~2019년 반도체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3.6%인 반면, 산업용 기기와 자동차 분야의 성장률은 각각 8.1%, 6.0%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두 시장이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변화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가트너는 향후 5년간 매출액을 기준으로 사물인터넷 관련 반도체 어플리케이션 상위 15개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6개가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에 사물인터넷 기술이 접목되면 이를 통해 사전 유지보수 지원 기능을 통해 예측정비가 가능해진다. 아직까지는 미약하지만 최근 자동차의 전장화 추세와 함께 자동차에 이상이 생길 경우 운전자에게 이상 여부를 알리는 기능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이는 센서를 통해 이상을 감지하고 해당 정보를 처리, 전달하는 것이 가능한 사물인터넷의 기능 덕분이다. 이러한 기능은 네이게이션 등으로 전달되는 인포테인먼트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카메라와 GPS(위성추적장치)의 결합으로 외부 충돌방지, 차선 이탈 등에 대한 방어운전도 가능해진다. 게다가 이러한 기술은 결국 자율주행 자동차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듯 사물인터넷은 IT를 중심으로 여러 분야가 융복합되는 형태로의 발전이 예상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안심할 수 없는 이유

최근 글로벌 증시가 요동을 치는 가운데 국내 코스피 증시도 몸살을 앓고 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이탈하는 만큼 국내 대형주의 부진이 두드러진 것이다. 시장 탓을 하기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산업의 호황과 이에 따른 긍정적 전망 일색이던 기업들의 주가 하락이 가팔랐다. 국내 대표산업인 자동차업계와 같이 엔저 피해가 거론됐지만 국내 반도체산업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등 어둠 속의 한줄기 빛과 같았다. 하지만 이내 무색해졌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4~6월 2분기 반도체시장에서 103억66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12.0%의 점유율을 기록해 117억9700만달러로 1위를 기록한 인텔(13.6%)을 바짝 추격했다. 게다가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42억9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려 점유율 4.9%를 기록하며 미국 퀄컴(4.5%)을 제치고 3위에 올랐다.

▲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주요 변수의 변화. 출처=IBK투자증권

올 초 이후 인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퀄컴의 주가흐름을 보면 각 기업들이 영위하는 사업구조가 다르다 하더라도 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선전을 고려한다면 주가 차별화 흐름이 나타나야 했지만 이들 기업의 주가는 동반 하락했다.

이와 관련, 국내기업들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하지만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샌드위치론’이다. 즉,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선진국 기업들에게 뒤처지고 있음은 중국이라는 후발주자에게 메모리반도체 분야도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물인터넷의 발전으로 향후 반도체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에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시장 공략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현재 중국은 반도체 최대 수요국이며 중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에 나섰다. 특이한 점은 시스템반도체에 집중됐던 지원사격이 메모리반도체 쪽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중국 내 반도체 출하액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28.4%이다. 또한 가트너는 오는 2017년 중국이 전세계 전자제품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8%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반도체 수요에 있어서 중국의 영향력이 크게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펼친다는 것은 경쟁 기업들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시스템반도체에서 메모리반도체 중심으로 육성정책을 펼친다는 것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게 불안요소로 작용한다.

▲ DRAM 애플리케이션별 중국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 출처=IBK투자증권

물론 중국이 메모리반도체 특히, D램 시장을 공략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자국에서 일어나는 D램수요의 폭발적 성장을 중국이 지켜볼리 만무하다. 분명히 중국은 D램 중심의 메모리시장에서 기술적으로 상당히 뒤쳐져 있을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강 체제가 워낙 견고해 과도한 우려는 기우로 판단된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예상을 뒤엎고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점령한 것처럼 이변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먼 미래에 현재 주식시장을 돌아보면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하락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 그만큼 단기적인 주가 움직임과 주체별 매수매도 흐름도 무의미해 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시장 환경과 반도체 산업의 변화를 고려한다면 국내 업체들은 현재의 업황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어려운 시기라도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들의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