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후 손에 쥐는 건 월 100만원 안팎…
자녀에 기대겠다 16% 불과

서울시 은평구에 살고 모 협회에서 24년 동안 착실하게 일하고 있는 이명우(가명·50) 부장.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아들 한 명과 고2 딸 한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회사의 정년은 60세.

그런데, 3년 후 즈음 본부장의 직책은 될 수 있겠지만, 윗직책으로 올라가기는 힘들 듯 하다. 현재의 직속상관인 본부장 나이는 54세. 본부장은 직원이 가져오는 서류에 사인하는 것이 일이지만 자신의 일에 무료함을 느끼고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둘이서 매일 하는 대화는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 얼마 전 본부장이 주식 투자로 큰돈을 날려 이 대화도 시들해졌다. 이 부장은 요즘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다. 병원에서 지방간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자주 피곤하다. 운동해야지 싶지만 잦은 술자리에 퇴근 후 리모컨을 끼고 사는 게으름이 몸에 배여 쉽지 않다.

이 부장은 40대 후반 즈음부터 노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혼 시작부터 외벌이였던 이 부장은 부인이 조금이라도 노후준비 금액을 빼놔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그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했다.

직책이 올라가며 현재 세후 420만 원 정도 월수입이 있지만 99㎡ 아파트 대출금(현 시세4억5천만원)의 원리금, 아이들 교육비, 생활비 등을 쓰고 나면 몇 십만 원을 마음대로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큰 마음 먹고 3년 전 5억2천만 원을 주고 구입했던 아파트는 현재 7천만 원 가까이 내렸다.

퇴직금도 중간정산으로 이미 다 써버린 상태. 위안을 삼는 것은 90만 원이 조금 넘는 국민연금이다. 퇴직연금은 가입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90만 원으로 살 수 있을까 싶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부동산이 오르길 기다릴 뿐 특별한 방법이 없는 듯하다.

심리적 여유 없는게 더 큰 문제

<이코노믹리뷰>의 노후대비 설문조사 통계로 본 50대 직장인의 자화상이다. 노후대비에 대한 생각이 있고, 노후 하면 자녀와 빠른 준비, 불안 등의 단어가 떠오르지만 여유자금이 부족해 엄두를 못 낸다.

상품 가입을 해도 장기상품에 가입할 심리적 여유가 없다. 어렵게 상품 가입을 해도 윤택한 노후를 보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자녀에게는 공부를 끝까지 시켜야지 하는 생각은 있지만 기댈 마음은 전혀 없다.

설문 조사 결과, 노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묻는 질문에 ‘보험’ 26.5%, ‘자녀’ 16.5%, ‘빠른 준비’ 15.1%, ‘불안’ 9.9%, ‘부동산’ 8.3%, ‘잘 모름’ 23.6% 순으로 답했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적으로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 느낌은 아니다.

‘보험’ 응답의 경우, 지방인 전남/광주(36.1%)에서 가장 높은 점, 남성(22.8%)보다 여성(30.0%)이 높은 점, 40대(30.5%)가 보험에 대한 인식을 많이 하는 점 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평균의 사람이라면 먼저, 자신에게 맞는 노후 생활의 자금 규모와 기간별(단, 중, 장기) 라이프 사이클을 짜 보자. 경제적인 위험, 시장의 변동 등을 생각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노후대비를 위한 자산관리는 저금리 시대일수록 일찍 시작해 장기적인 투자계획을 세워야 한다.

저소득층도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최근 한국은행이 50세 이상, 주당 근로시간 30시간 미만의 사람을 기준으로 은퇴 이후 가계소비 변화를 조사한 결과, 은퇴가구의 가계소비가 은퇴 이전에 비해 9.3%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 조정 등으로 갑자기 은퇴를 하는 비자발적 은퇴의 경우는, 소비 감소폭이 이보다 1.5배나 많았다. 특히, 은퇴 이후 목돈 마련이 어려운 저소득자는 더욱 심각한 상황. 자산 규모가 하위 25%에 속하는 사람들은 상위 25% 사람들 보다 소비 감소가 4배 이상 더 많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의 경우 은퇴 이후 준비를 더 꼼꼼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균성 교보생명 강남재무설계센터장은 “직장인의 경우 퇴직연금이 많이 도입되어 국민연금 이외 연금활용이 높아지고, 주택도 연금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소한의 노후 생활비 보장을 위해서 국민연금을 준비하거나 실손 의료비 정도는 꼭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이학명 mrm97@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