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요?”

필자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벌써 10여년 동안이나 행복에 대해 연구하고, 방송도 하고, 책도 쓰고 하니, 강연이든 사석이든 가리지 않고 물어본다. 그런데 답이 쉽지 않다. 신간 <행복을 인터뷰하다(샘터)>를 출간하고 출판사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동석한 30대의 젊은 친구 또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요?’라고 물었다. ‘책에 다 나와 있습니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해주었더니,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행복해지는 법은 아직도 공부를 더 해야겠고, 쉽게 불행해지는 법을 알려줄게요!”

첫 번째, 비교하기

불행에 쉽게 빠지는 이유 첫 번째는 비교해서이다. 사실 비교는 성장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타인과 비교하면서 모방학습을 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 문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지나치게 비교에만 매달린다는 데 있다.

요즘은 비교가 실시간으로, 그것도 글로벌하게 이루어져서 큰일이다. 예전에는 웬만큼 잘 생긴 남자라면 준수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름 잘난 맛에 살 수 있었다. 결혼을 하면 아내도 그럭저럭 만족하고 평생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만 보면 조지 클루니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같이 괜히(?) 잘 생기고 몸도 좋고 게다가 돈도 많은 인물이 넘쳐난다. 안 그런다고 하지만, 컴퓨터에 빠져있는 아내의 옆얼굴에는 ‘비교 중’이라고 적혀 있는 것 같다. 남편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비교를 당할까 봐 걱정일 테고, 그러니 스스로 더 비교의 늪에 빠지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일은 젊은이들의 자존감 저하와 맞물려 외모에 대한 비교와 경쟁이 극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이들이 많은 거리를 걷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처음에는 너무 예쁜 얼굴들이 많아서 놀라고, 두 번째는 같은 얼굴이 한둘이 아니어서 놀란다. 현대 의학의 힘으로 성형 미인을 대량생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무리 얼굴을 고치고 몸매를 바꿔도 자존감은 회복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잠시 만족하고 우울함에서 벗어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불행에 빠지게 된다. 비교 끝에 얻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소모뿐이다.

두 번째, 욕심 부리기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했던가. 욕심은 늘 화를 부른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분수를 지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성취주의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욕심 많은 친구가 있었다. 학력이나 경제력이 뒤처지는 것도 아닌데, 늘 자기계발과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40대에 당뇨와 고혈압을 앓을 정도로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이혼 문제로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가정마저 내팽개치고 바동거리며 사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불행하게 살아야 하나요?’ 그의 답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더 행복해질 것 같다’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이미 그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아니, 능력을 지나쳐 욕심을 부리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 욕심을 버리고 그만 만족하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단다. 결국 불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말한 ‘조금만 더 노력하면’은 어느 정도가 끝이고, ‘행복’은 오기는 하는 것일까?

흔히 미래를 위해 일한다고 한다.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미래에 행복하려면 지금 당장 행복하다고 느껴야 한다. 행복은 현재형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래에 행복하기 위해 우리는 욕심을 부린다. 100%의 힘을 쏟고 있으면서도 늘 모자란다고 느낀다. 잘난 사람들과의 비교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애써도 모자라고 제법 훌륭한 성과를 이루어도 별 것 아니게 된다. 만족이 없으니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능력이라는 바가지는 크기가 다르다. 큰 바가지였다면 한번에 많은 물을 담을 수 있겠지만, 작다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우물에서 물 한 독을 길으려 한다고 치자. 누구나 아무리 애를 써도 한 바가지에는 바가지 용량 이상의 물은 담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용량만큼만 담아 물을 긷기 시작하면, 조금 힘이 들더라도 충분히 독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바가지보다 더 많은 물을 담으려고 애써 봤자 바닥만 적실 뿐이다. 하루 종일 바가지만 넘치게 채우려다 결국 텅 빈 독으로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분노하기

화가 난 사람의 얼굴에서 행복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화가 나기 시작하면서 우리 몸에 독성이 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당연히 좋은 감정과 긍정적인 사고를 싹 걷어간다. 심리적으로 우울해지고 불안해질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다양한 질병을 얻게 된다. 건강이 나빠지니 쉽게 불행해진다. 화가 극심해지면 분노가 되는데, 분노는 뇌를 마비시킨다. 이성은 사라지고 공격성만 남게 된다. 앞뒤 안 가리고 파괴적인 행위를 하게 된다.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까지도 불행하게 만든다. 대인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제일 불행해지는 것은 타인에 대한 분노가 있을 때다. 자신을 괴롭히고 무시했던 상대가 지워지지 않는다. 똑같이 되갚아줘도 마음이 풀릴 것 같지 않다. 절대 용서할 수 없고 끝까지 복수하리라 다짐한다. 이렇게 타인을 향한 분노의 화살은 결국 자신만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당장 옆에 있는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해보라. 그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스스로만 힘들고 괴롭고 불행해진다. 그래서 어렵긴 하지만 타인에 대한 미움의 해결책은 오로지 용서뿐이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이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행복이란 관계에서 오는 법이다. 행복을 연구하는 긍정심리학을 대인관계학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지난 칼럼에서도 강조했지만, 화를 많이 내는 것은 불행 정도가 아니고 수명을 단축하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고백하자면, 행복해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을 해도 늘 행복한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불행에 빠지기는 쉽다. 비교하고, 욕심 부리고, 화를 내면 된다. 그러므로 거꾸로 이야기해서, 비교와 욕심과 분노만 피한다면 최소한 불행에 빠지지 않을 수는 있다는 것이다. 요즘같이 힘든 세상, 어쩌면 불행하지만 않아도 다행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