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은 일제 압정에서 벗어난 날이다. 광복의 의미는 ‘빛(光)이 되돌아 왔음(復)’을 의미한다. 일제 치하 36년 동안 한반도는 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바뀌었고 한민족은 일본인들의 노예로 전락했다. 조상의 이름을 빼앗기고, 역사를 송두리째 각색당하고, 4천년 동안 이어 내려온 찬란한 민족문화를 송두리째 약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한민족의 역사와 언어를 말살당하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개명해야 했다. 학교에선 일본말을 배우고 일본 왕을 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당했다. 일제 하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일본이 자신의 조국이라고 배웠다. 일본인은 선민이고 한민족은 하등 민족이라고 폄하당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아시아 정복의 야욕을 드러내 대륙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우리 민족을 그전쟁의 불쏘시개로 삼았다. 젊은 청년들을 강제징용해서 탄광 노예로 삼았고, 젊은 처녀들은 강제로 전쟁터로 끌고 가 침략 군인들의 성노예로 삼았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장인 박경목 박사가 분석한 6259장의 서대문 형무소 수형기록에 의하면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운동의 주역들은 15세 학생부터 72세 노인까지 광범위한 연령대의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이 밝혀졌다. 일제가 이들 독립투사들에게 저지른 온갖 잔혹한 만행은 천안의 독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최근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부끄러움에 가슴이 저몄다. 독립을 외치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목숨까지도 바친 독립투사들에 대한 후손들의 존경심이 메말라 있다. 반면 한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지식인들 중에는 신분 탈색하여 일본인으로 행세하면서 일제를 추앙하던 친일파들이 많았다. 그들은 일본군에 입대하기도 하고 일제의 앞잡이로 오히려 더 동족을 탄압했다. 나라를 잃은 평범한 민초들에겐 일제 36년 식민통치 기간이 암흑기였다. 그 깜깜한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새롭게 햇살을 맞이한 날이 바로 광복절이다.

일본 정권은 군국주의를 다시 부상(浮上)시키려 한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일본 왕을 천황이라 칭하고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던 전쟁 광신론자들이다. 전쟁 신(神)인 천황을 위해 자살 특공대가 되어 자폭까지도 서슴지 않은 자들이다. 천황만세를 외치며 전쟁에 광분하던 자들의 귀신들만을 따로 모아놓은 곳이 ‘야스쿠니’ 신사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뒷동산에 있는 조상의 묘를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곳에 참배를 하는 건 전쟁 귀신들을 추앙하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행동이다. 지금 일본은 군국주의자의 후손이 정권을 잡고 과거 식민지배가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는 궤변을 내뱉으며 역사를 부정하며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전쟁광들을 숭배하고 있다. 일본 정권의 궤변은 21세기적 군국주의를 부활시켜 새로운 침략전쟁을 도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들은 이웃 국가를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헌법을 고치고 여차하면 침략전쟁도 감행할 태세다.

광복 70주년을 맞으면서 우리는 과연 광복의 기쁨을 소리 높여 ‘만세’라고 외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2차 대전 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미군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게 되었다. 남쪽엔 자연히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이 서고 북쪽엔 공산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 1949년 10월에 중국 본토를 중국공산당이 점령하자 미국은 중공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미국의 극동 방위선을 일본으로 내리고 한국과 대만 그리고 인도차이나 반도는 국제연합의 책임 아래 있도록 한 ‘애치슨 라인’을 선언한다. 남한이 미국의 지역방위선 밖으로 밀려나자 북한은 준비했던 탱크를 앞세우고 남한을 침공했고 소련과 중국은 이를 승인했다. 6·25 전쟁 동안 한반도는 초토화되었고 국가재정은 거덜나고 국민들은 먹고 살 것조차 없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반면 대동아전쟁에서 완전히 패망했던 일본은 이 전쟁의 특수효과로 단숨에 경제 강국으로 진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국전쟁 중에 일본은 연합군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칭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명시하고 슬그머니 대마도와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공식적으로 위장했다. 이에 앞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었지만 전쟁 통에 유야무야 되어버리고 미국이 일본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대마도를 탈취당하고 독도마저 자기네 땅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아직도 사상(思想) 정쟁(政爭)인가?

낙동강 전선까지 빼앗겼던 남한은 유엔군 참전으로 원래 국토를 간신히 회복했지만 전세를 역전시켜 북한지역을 함락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유엔군이 압록강 근처까지 북진했지만 중국 공산군이 참전하면서 되밀려 혹한에 연합군의 희생이 커지자 연합군은 후퇴하여 38선 근처에서 방어진을 치고 급히 휴전으로 마무리해버렸다. 결국 전쟁의 결과는 피비린내 나는 동족 간 살육으로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남북은 군사분계선을 사이로 가장 적대적인 군사대치 상태이며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다. 전쟁 후 미국의 원조로 남한은 서서히 나라의 기틀을 잡아갔지만 근본적인 자력갱생의 길은 보이지 않고 사상 정쟁으로 허송세월을 보냈다. 이를 보다 못한 일부 군부 세력은 1962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경제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국토를 일구고 산업을 일으켜서 온 국민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 줬다. 군인 출신들이 핵심권력을 잡았던 군사정권은 많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장기집권을 이어갔으며 재벌에게 특혜를 베풀면서 개발 중심의 독재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와중에 사회정의는 훼손되고 부패는 만연했지만 온 국민을 빈곤에서 탈출시켰다는 점에서는 지금도 공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군사정권의 탄압정치는 민주절차를 외치던 많은 인사들을 사상범으로 몰아 처단했고 권력층의 과도한 부패는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

88 올림픽 이후 다행히 평화로운 선거절차에 의거해 자연스럽게 민간정부로 정권이 이양되면서 부패척결을 위한 경제 ‘실명제’가 추진되고 OECD도 가입하면서 세계적 기준에 맞는 민주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때마침 불어 닥친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를 간과하고 외환관리정책에 실패한 나머지 1997년에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려 결국 IMF에서 195억달러의 구제 금융을 지원받게 되었다. 이 시기에 만년 야당에게 정권이 이양되고 IMF의 개입으로 인해 경제 주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IMF 환란’은 구조조정으로 대량 해고 사태를 일으키고 많은 국부가 해외 투기자금에 팔려 나갔다. 다행히 ‘금 모으기 운동’을 비롯한 국민들의 자발적 희생으로 IMF 지원 자금을 모두 조기에 반납하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외국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물론 세계적 기준에 부합할 만큼 기업의 회계가 투명해짐으로써 경제적 재도약의 기틀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중국의 경제력이 급격히 부상하게 되자 한국 기업들은 10여 년 동안 중국 특수로 인해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기술 개발력도 강화되고 세계를 이끌 만한 첨단기술들이 우리 손으로 개발되고 세계로 확산되었다. 동시에 중·후장대한 산업들도 성장하면서 국력이 급상승했다. 그렇지만 경제·산업 부문의 발전과는 달리 정치권은 사상정쟁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일삼으니 3류 정치가 일류 국가로의 미래 도약을 가로막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30년을 그려봐야 한다

2011년 이후 중국의 성장속도는 급속히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및 소프트웨어 산업이 휩쓸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물질경제 시스템은 가상세계의 디지털경제 시스템으로 대체되어 가는 현상이다. 그 와중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급속한 성장과정에서 익힌 다양한 실물경제 경험으로 지금까지 한국을 이끌어 왔던 주력산업들의 경쟁력을 잠식하거나 추월할 태세다. 반면에 우리의 주력산업들은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신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처지다. 한국의 경쟁상대는 중국이 아니고 미국과 독일 그리고 일본이라고 외쳐 보지만 어떻게 새로운 돌파구를 뚫어야 할지 경험도 없고 잠재력도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물론 지난 70년을 되돌아보면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교역국에 이를 만큼 전대미문의 역사를 이룩한 기쁨을 크게 경축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진정한 광복을 맞이하지 못했다. 한반도는 아직도 반쪽으로 나뉘어 군사력이 대치하고 있는 전쟁지역이다. 어느 쪽도 종전을 거론하지 않는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들은 한반도의 이해당사국처럼 행동한다. 우리의 의지만으론 통일이 불가능하고 경제적으로나 외교·군사적으로 주변 외세를 극복할 만큼 힘을 비축하지 못한 상태다. 광복 70주년을 단순히 기쁘다고 박수칠 수만 없는 이유다.

벅찬 광복의 날을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현 세대들은 광복 70주년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더 큰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대한민국 광복 100주년이 되면 현재 10대와 20대가 40대와 50대가 된다. 지금 40대와 50대는 70대와 80대가 될 때다. 우리의 자식들이 떠맡게 될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떻게 가꾸어야 할지 중지를 모아야 한다. 한민족과 한반도는 어떤 모습이고 건국 100주년 되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의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그런 국가관과 민족관을 공유하지 않고는 앞으로 30년을 허송세월 하게 된다. 온 겨레와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미래 30년을 힘껏 가꾸지 않으면 결코 우리가 원하는 광복 100주년이 오지 않는다. 한민족의 미래를 모두 담아낼 ‘광복 100년 프로젝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