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해외 공장에 파견돼 혁신활동을 추진할 때, 현지 직원들과 주재원들에게 공통적으로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한국적 혁신’은 우리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면밀히 분석해본 결과 답은 명확했다. 현지인에 맞는 사회적, 정서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때 우리 기업들이 유행하는 선진방법론을 그대로 모방하다 혁신에 실패한 경험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아무리 좋은 방법론이라 할지라도 현지 특성과 인력 역량에 따라 유연하게 실행방안이 정립될 수 있도록 해야 성공적으로 혁신활동을 정착시킬 수 있다.

베트남에 설립된 중공업 제품 생산기지의 혁신활동에 투입됐을 때 일이다. 이 공장은 설립 당시, ‘준공 이후 3년 내에 한국 본사와 같은 수준의 생산성’을 달성해야 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었다. 실패할 경우에는 현지법인을 폐쇄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베트남 공장 개선의 가장 큰 난관은 ‘사람’이었다. 현장 인력으로 구성된 현지인들은 한국에 대해 ‘문화한류’로 인한 긍정적인 감정과, 과거 대전(對戰) 국가였다는 부정적 감정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한국인에 대한 이중적 감정은 특유의 강한 민족적 자부심과 더해져 한국 기업에 대한 애사심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민족적 특성과 현장 인력 역량을 반영해 본격 혁신활동에 나섰다. 혁신 리더를 선발해 기초역량 강화교육부터 시작했다. 개선의 올바른 의미와 기초수준의 정리정돈, 설비 및 품질관리, 안전 등이 교육의 주된 내용이다. 우선적으로 교육받은 ‘혁신 리더’들이 거점이 되어 현장을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다행이었던 것은, ‘자율적 토론문화’가 정착돼 있어 말문을 여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교육 받은 ‘혁신 리더’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토론을 이끌어가기까지 인내하고 지도해야 했다. 수십 년의 혁신활동 경험이 있는 한국인 현장 전문가보다 현지 리더의 밀착 지도가 현장을 움직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를 비롯한 컨설턴트들은 현지 리더들과 미팅을 수시로 가지며, 혁신활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스킨십을 강화했다. 이들을 믿고 모두가 자율적, 자발적으로 움직이기를 기다린 것이다.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말로만 교육받던 혁신, 개선의 모습을 체험하는 인력들이 생겼고, 앞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 밤늦게까지 토론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퇴근 20분 전부터 공장 정문에서 대기하다 벨이 울리자마자 뛰쳐나가던 초기의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현장이 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자발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니, 한국인 관리자에게 역할이 생겼다. 현지인들의 활동 과정을 칭찬, 격려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다.

개선의 움직임은 점차 도전적 형태로 발전해갔다. 심지어는 산소절단기를 개조한 곡면용접기기 등 기술 개선에 필요한 도구들을 직접 만들었다. 한국인 기술전수자들도 놀랄 만한 성과를 만들어내며 혁신 성공의 가능성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가장 큰 성과 역시 현지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베트남에는 2~3년 일한 뒤 3배 이상의 월급을 주는 회사로 이직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회사로서는 인력을 잃는 손실이었고, 어떠한 활동도 지속되기 어렵다는 치명적 문제를 떠안아야만 했다. 월급을 올려주거나 애사심 고취 교육을 강화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현장 직원들이 자율적인 혁신활동의 일환으로 태풍 피해 지역을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이 활동이 다른 직원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회사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마을에 나가 전기를 설치하고, 월급을 모아 구매한 일용품을 전달하는 등 자발적 봉사에 동참했다. 이들의 선행은 소문이 났고, 회사에 대한 좋은 인식이 형성되며 이직률이 감소했다. 교육이나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현장의 힘으로 해결한 것이다. 물론 생산성도 좋아졌다. 공장 설립 3년차 11월, 본사 수준에 이르는 생산성을 달성한 성공적인 결과다.

혁신활동의 목적은 비단 눈에 보이는 생산성 제고, 원가절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에 기반하여 기업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 그렇기에 해외 현장일수록 현지 상황에 맞는 환경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확하게 공유된 방향과 목표 아래, 현장 특성과 인력 역량에 맞춰 그들이 스스로 혁신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디에서든 성공할 수 있는 최적의 혁신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