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 전형적인 구시대적 발상이다. 이젠 애 어른 모두 눈치 안 보고 만화를 즐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일이 종이를 넘기는 수고는 없다는 거다. 스마트 기기로 ‘웹툰(Web+Cartoon)’을 보니까. 웹툰은 남녀노소 불문 ‘킬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보니 시장도 커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웹툰 시장 규모는 1500억원 규모였다. 올해는 295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웹툰 기반 2차 콘텐츠 시장까지 합하면 더 커진다. 올해 4200억원, 오는 2018년 1조 원 규모를 바라볼 수 있다는 평가다.

웹툰은 포털 업체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포털 업체는 트래픽을 빨아들이기 위해 웹툰 플랫폼 사업에 적극 투자했다. 덕분에 오랜 시간 시장을 지배했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새 플랫폼 사업자가 속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거침없이 ‘차별화’를 외치는 이들이다. 독자층을 다변화해 시장을 넓히겠다는 방침이다.

아직 포털 업체를 위협할 만큼은 아니다. 다만 성장세가 폭발적이다. 만화평론가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이를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네이버·다음카카오 양강 체제를 깨고 지난 2013년부터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해 만화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웹툰=공짜’ 딱지 떼다

레진코믹스는 반군의 선봉장이다. 레진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이 서비스는 ‘1세대 유료 웹툰 플랫폼’이라 불린다. 요즘은 아니지만 본래 포털 업체는 웹툰을 공짜로 제공해왔다. 이를 미끼로 트래픽을 확보해 광고 사업을 벌이는 식으로 돈을 벌었다. 반면 레진코믹스는 과감했다. 부분 유료 서비스를 실시해 ‘만화는 무료’라는 인식을 깼다. 돈 버는 법을 달리하니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포털은 트래픽 확보가 1차 과제이다 보니 콘텐츠도 이 목적에 부합하는 것들로 채워지는 경향이 있다. 긴 시간 인터넷을 쓰는 10대를 타깃으로 한 장르의 웹툰이 주로 연재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따라서 마이너 취향 작품은 연재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레진코믹스는 다르다. 광고를 싣지 않으니 전체 트래픽이 중요하지 않다. 콘텐츠 판매 수익은 작가와 나누는 구조다. 따라서 작가들이 보다 큰 창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포털에 별로 없는 고어물·사극물 등의 장르 웹툰이 대거 연재되는 이유다. 연재 주기도 자유로워 작가가 작품의 질을 극대화할 시간적 여유도 확보가 가능하다.

‘친(親)작가 정책’은 콘텐츠 확보에 도움을 줬다. 연재 중인 만화만 240여개로 플랫폼 중 가장 많다. 실적 전망도 좋다. 지난해 매출은 103억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 월 방문자 수가 700만명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배가량 많아 실적도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확보한 회원 수는 약 450만명이다. 레진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유료 웹툰 플랫폼의 맏형으로서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창작자 지원을 바탕으로 품질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독자를 확보하는 선순환 구도를 그리도록 힘쓰겠다”이라고 말했다.

여심 ‘저격’ 남심 ‘강탈’

특정 타깃을 정조준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도 차별화 전략이다. ‘탑툰’에는 기존 플랫폼에 없는 성인 웹툰이 가득하다. 비성인 웹툰도 있지만 전체의 30%가량을 차지할 뿐이다. 대부분 웹툰은 성인 남성을 타깃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야한 만화만 있는 게 아니라 ‘성숙한 성인 독자’를 위한 웹툰도 많다는 설명이다. 성인 콘텐츠 효과는 대단했다. 지난해 1월 문을 연 탑툰은 올 7월 기준 1000만명의 누적 회원을 확보했다. 누적 페이지뷰는 10억건에 달하며 매월 5500만건 이상의 페이지뷰가 발생한다. 탑코믹스는 올해 22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삼았다.

탑툰이 ‘남심’을 강탈한다면 ‘봄툰’은 여성 취향을 저격하겠다며 나선 플랫폼이다. 여성들의 선호도가 높은 로맨스·순정·드라마·BL 등의 장르 웹툰을 주로 연재한다. 봄툰 임성환 대표는 “연말까지는 100여편 이상의 만화를 제공하고 300만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웹툰 작가 등용문

글로벌 웹툰 플랫폼을 지향하는 서비스도 있다. NHN엔터테인먼트의 일본법인 자회사인 NHN플레이아트가 서비스하는 ‘코미코’가 그것이다. 지난 2013년 10월 일본에 서비스를 시작해 ‘라인웹툰’과 시장 1위를 다투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애플리케이션(앱) 누적 다운로드 수만 1000만 건에 이른다.

일본을 시작으로 대만·한국·태국 등 4개국에서 서비스 중이다.이 플랫폼의 최대 강점은 여러 국가의 웹툰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웹툰 플랫폼이 해외진출을 한다고 하면 국내 작가의 작품을 번역해 제공하는 수준에 그쳤던 게 사실이다. 반면 코미코는 여러 국적 작가의 작품을 독자에게 선보인다. 현재 한국에서 서비스하는 96개의 작품 중 일본 웹툰이 32편이며, 최근에는 대만 웹툰 1편이 추가됐다. 작가들은 코미코를 발판으로 글로벌 인기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셈이다. 현재 코미코는 ‘웹툰 글로벌 루키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수상자는 한국·대만·일본 3개국에서 동시 연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게임 웹툰’ 신장르 개척

‘게임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플랫폼도 있다. 더웨일게임즈가 운영하는 ‘배틀코믹스’가 그 주인공이다. 게임의 IP(지적재산권)을 바탕으로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2차 창작물을 만들어 연재하는 플랫폼이다. 연재 웹툰 대부분은 특정 게임의 세계관·캐릭터 등에 기반을 둔다. 현재 30여개 게임을 소재로 한 180여편의 웹툰이 올라와 있으며 독자는 주로 10~20대 남성이 많다. 다만 전체 작품의 70% 정도가 PC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관련 만화다. 배틀코믹스 운영진은 향후 다양한 게임사들과 협력해 게임 웹툰을 만들 예정이다.

‘기획의 힘’ 필요하다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서비스도 생겨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30여개 웹툰 플랫폼 중 10개 정도가 새 작품을 연재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력이 없어 작가를 유치할 수 없는 까닭이다. 업계 관계자는 “웹툰 플랫폼 업체들이 수익을 잘 내자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시장에 진입한 사람들이 있다”며 “막상 시작하니 유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전략의 부재가 사업 실패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또 신규 플랫폼 다수가 차별화 포인트로 ‘성인 콘텐츠’를 앞세우는 현상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지적이 따른다. 박인하 교수는 “성인 콘텐츠는 유료 수입을 올리는 검증된 콘텐츠이지만 계속 등장하는 플랫폼들이 모두 성인 콘텐츠 중심이라면 심각한 문제”라며 “조금 더 다양한 기획이 고민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