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된 가짜 상품…“혹시 내 아내도…” 우스개 소리까지

# 세계 주요 리서치 회사들이 최근 3년간 발표한 지구촌 짝퉁 시장 규모는 평균 600조 원 내외다. 짝퉁 제품의 유통 측면에서 살펴보면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의 규모가 가장 크다.

그러나 짝퉁 제품을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국가는 중국이 단연 1등이다.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가짜 상품의 50% 이상이 중국산이다. 짝퉁의 다양성 측면을 들여다보면 중국이 짝퉁 세계의 1인자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가짜 파출소가 등장해 시민을 울리기도 하고, 막차가 끊어진 뒤 가짜 버스 운행으로 수입을 챙기는 수준이니 짝퉁의 대부라 할 만하다.

중국의 주요 짝퉁 시장엔 가격 부담으로 정품을 못사는 중국인들 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다.(사진=연합)


베이징에서 영어 일본어 한국어 등 외국어를 동시에 잘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어딜까. 중국인들은 우스갯말로 우수 인재가 모여 있는 베이징대나 글로벌기업이 아닌 짝퉁 마켓 ‘슈수이제(秀水街)’를 꼽는다.

서양인은 물론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인 등 세계 관광객들이 연일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그들을 상대하는 종업원들은 전 방위 언어를 구사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각국 언어들의 난무함은 마치 만국박람회장을 연상케 한다.

슈수이제에는 버버리 루이비통 프라다 롤렉스 등 해외 유명 상표의 모조품을 판매하는 짝퉁 시장으로 유명하다.

모조한 짝퉁 제품도 많지만, 항저우-쑤저우 지방에서 유명한 실크와 의류 도자기 제품도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진짜와 가짜가 혼재한 상가다. 이곳에 없는 명품은 왠지 인정 못 받는 브랜드로 취급돼 서운할 정도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행사는 중국 정부가 치르지만 수익은 슈수이제가 챙긴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재미가 쏠쏠했다. 올림픽 개막일부터 일주일간 30만 명의 고객이 다녀가고, 주간 매출액이 무려 1억 위안(165억 원)이었다.

올림픽 기간에 자크 로게 IOC 위원장 부인과 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각국 대통령과 영부인들이 연일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 측의 무분별한 저작권 침해에 대해 곤혹스러워야 할 서구의 지도자들이 쇼핑 올 정도로 중국의 짝퉁 시장은 요지경이다.

마켓형성 관광객 호객…당국은 팔짱

짝퉁은 가능한 구입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주요 짝퉁 시장엔 가격 부담으로 정품을 못사는 중국인들 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다.

관광차 재미 삼아 들리는 외국인들이 알아야 할 간단한 상식과 각국 고객들의 구입 패턴도 흥밋거리로 전해진다.

우선 흥정은 기본이다. 흥정을 오래 한다고 쩨쩨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흥정하는 모습이 산자이(山寨 짝퉁) 구입 문화다.

더불어 어느 정도의 금액이면 더 이상 흥정하지 않고 구입하겠다는 사전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가격 합의가 된 뒤에도 더 깎을 수 있었다는 미련은 갖지 말아야 한다. 고무줄 가격 제품을 원가 근처까지 깎을 수 없다면 차라리 적당한 가격에서 만족하는 것이 속 편하다.

짝퉁 명품시계의 경우 보통 1000위안(16만5000원) 이상부터 흥정이 시작된다. 벽안의 서양인들은 대부분 500~600위안까지 끌어내린 후 만족한 표정으로 계산을 한다. 마치 ‘땡 잡았다’는 표정이다.

물건 흥정에선 한 수 위인 한국인들은 개당 100위안까지 깎아 내린다. 간혹 중국 종업원들은 한국인들의 무자비한 후려치기에 혀를 내두른다.

한국 손님들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계산을 끝내고 뒤돌아선 그들의 얼굴은 싫지 않은 표정이다. 물건마다 다르지만 개당 50위안에 팔아도 손해 안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애프터서비스(AS)나 반품은 자신만의 요지경 꿈에서나 가능하다.


기술의 진화…진짜 같은 가짜 수두룩

중국 짝퉁 제품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보기에도 조잡한 싸구려 짝퉁, 진짜 유명 브랜드 제품인데 불량품으로 분류돼 짝퉁 시장에 흘러들어 온 가짜 아닌 가짜 전문가들도 깜빡 속는 고급 짝퉁 제품이 그것이다. 최근엔 세 번째 경우의 짝퉁 제품들이 ‘짝퉁의 변신’이란 이름을 내걸고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회사원인 강모씨는 3년 전 중국 베이징 관광 기념으로 100위안짜리 롤렉스 손목시계를 한 개 구입했다. 구입 당시에는 한두 달 후 고장날 것으로 예상하고 그 동안 친구들에게 장난삼아 자랑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4년 동안 차고 다녀도 고장은 커녕 시간이 너무 정확하게 잘 맞는 게 아닌가. 단지 배터리만 교체했을 뿐이다. 그는 지금 이 짝퉁 시계가 진짜일지 모른다는 착각을 하고 있으며, 아예 정품이라고 단정하고 당당하게 차고 다닌다.

5년여의 중국 생활을 마치고 올 초 귀국한 주부 정모씨도 짝퉁에 대한 편견이 바뀌어 혼란스럽다. 굳이 짝퉁 명품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명품 욕심이 필요할까 싶었던 그녀지만, 우연히 접한 짝퉁 가방의 품질이 진짜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명품족 친구들도 알아채지 못하는 자신의 짝퉁 가방을 바라보면서 중국의 ‘산자이 문화’는 참 요지경이란 생각 속에 산다. 중국의 짝퉁 세계는 정말 광범위하다.

도시인들은 아침 출근부터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울 때까지 짝퉁과 함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중국인은 잠결에 벌떡 일어나 옆에 누운 부인의 짝퉁 여부를 확인한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중국 여성과 국제결혼하고 베이징에서 직장을 다니는 최모씨도 매일 짝퉁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다.

그는 우선 출근길에 슈퍼에 들러 중국 우유를 산다. 가짜 우유에 대한 사고가 빈번해 항상 유명 메이커를 찾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물건 계산을 위해 100위안을 지불하면 종업원은 어김없이 손으로 지폐를 만지작거린다. 위폐 감별의 위한 손놀림이다. 자신도 나중에 당하지 않기 위해 위폐 감별법을 배웠지만 거스름돈은 항상 받자마자 주머니 속으로 직행이다.

저녁시간엔 중국 지인들과 시내에서 비즈니스 모임을 가졌다. 중국 지인들은 중국 명주인 마오타이주(茅台酒)를 들고 왔다. 고급 식당에서 파는 술도 믿지 못한다고 귀띔한다. 그럼 이 친구들이 가져 온 술은 과연 진짜일까 의심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거나하게 취한 최모 씨는 취객을 유혹하는 가짜 택시들을 요령 있게 골라 보내고 진짜 택시를 잡아탔다. 그는 귀가하면서 어떤 지방에 등장한 가짜 버스, 자신이 직접 경험한 가짜 아파트 주인의 계약금 착복 미수 사건 등을 떠올리며, 중국의 짝퉁 세계는 정말 요지경이란 결론에 다다랐다.

중국산업품질협회가 지난 11일 발표한 ‘품질신용백서’에 따르면 짝퉁 제품 제조 및 판매, 품질 불량 등에 따른 중국 기업들의 손실은 한화로 34조 원에 달했다. 백서는 짝퉁 제품은 이제 중국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질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짝퉁 시장으로 벌어들이는 경제 효과보다 질적 성장 저하로 인한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기 전까지 중국 정부의 단속과 요지경 짝퉁 시장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강준완 전문기자 napoli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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