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파도’를 하나 넘었다.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이 전격 처리되며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의 서막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오너 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와 전면에 선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론, 단순해진 순환출자 구조를 바탕으로 ‘넥스트 삼성’의 미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박재성 기자

당장 변하는 것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각각 주주총회를 열어 양사의 합병안을 두고 막판 진통을 벌였다. 제일모직이야 당연히 합병안 승인으로 쉽게 가닥이 잡혔으나 문제는 삼성물산이었다. 비록 합병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우세했으나 엘리엇이 주주의 권익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합병을 반대하는 목소리들을 결집시키는 한편, 막판 뒤집기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물산 주주들의 선택은 ‘미래’였다. 삼성물산의 지분가치가 너무 저평가 되어 있다는 엘리엇의 주장은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주주들의 선택은 통합 삼성물산의 미래비전을 노리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합병안은 1억3천235만5천800주 중 총 9202만3660주의 찬성표를 얻어 무려 69.53%의 찬성율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삼성그룹은 지금까지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던 순환출자 부담을 다소 덜게 됐다. 이제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제일모직으로 복잡하게 연결되던 순환출자 구조는 통합 삼성물산을 사실상 지주회사로 삼아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삼성카드와 삼성물산-삼성SDI/삼성전기/삼성중공업으로 단순해진다. 몇몇 지분만 더 정리하면 순환출자의 느슨한 고리가 보완된다. 이는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상당한 강점을 보여줄 전망이다.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그룹 전반에 거쳐 강해진 부분도 큰 변화다. 지금까지 계열사의 정점 역할을 수행하던 제일모직 오너 일가의 총 지분율은 42.2%에 달했다. 이를 합병으로 탄생한 통합 삼성물산 지분율로 환산하면 30.4%로 줄어들지만 경영권 방어에는 문제가 없다는 평가다.

오히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배권을 두고 보면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상당한 이득이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0.57%에 불과하다. 그런 이유로 오너 일가는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형태를 유지했으나, 이번 통합 삼성물산 출범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현재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가진 최대주주다. 그런데 제일모직은 지금까지 삼성그룹 계열사의 정점을 맡으면서도 핵심인 삼성전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통합 삼성물산의 출범으로 이 부회장은 여기에서 16.5%의 지분율을 확보할 전망이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4.1%를 가진 2대주주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론적으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 확실하다.

업계에서는 2013년 말부터 시작된 삼성그룹 사업구조 개편이 17일 주주총회 결과에 따라 거의 종료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2013년 9월 삼성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문 인수 발표, 삼성SDS와 삼성SNS 합병을 지나 2014년 삼성에버랜드의 제일모직 사명 변경, 삼성SDS 유가증권 상장, 방산계열 사업을 한화그룹에 매각하는 빅딜을 연이어 수행하며 조직의 경쟁력을 끌어 올리는 ‘개편’에 집중해 왔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이 무산된 것을 제외하면 꽤 순조로운 편이다.

▲ 박재성 기자

통합 삼성물산, 무엇을 보여줄까

나름의 대의명분을 내세운 엘리엇이었지만, 주주들의 선택은 당장의 타격을 감수하는 대신 통합 삼성물산의 비전을 선택했다. 이는 주주들이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기대를 넘어 삼성 그룹 전체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 것은 물론, 추후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삼성이 보여줄 비전에 승부를 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사실상의 지주사 역할을 수행할 통합 삼성물산의 행보는 어떻게 펼쳐질까? 이 지점에서 통합 삼성물산의 사업적 스펙트럼이 지나치게 넓기 때문에 내부의 시너지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건설부터 패션, 조경, 에너지, 바이오 산업 등 통합 삼성물산의 ‘영역’이 지나치게 넓은 것은 사실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사업 영역이 다수 겹친다는 지적도 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영 승계를 위한 목적으로 무리하게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키려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사업군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쪽에 중론이 쏠린다. 일단 바이오 사업이다.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운명의 주주총회에서 “통합 삼성물산을 2020년 매출 60조원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것”이라며 “신수종 사업인 바이오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 박재성 기자

절대 허언이 아니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은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를 기점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면, 자신은 바이오 산업으로 새로운 시대를 알리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지난 3월 보아오 포럼에서 강조한 것처럼 헬스케어에 집중한 바이오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회장도 경기도 평택에 세계 최대 반도체 라인을 준공하며 반도체에 집중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 시대의 삼성에서 바이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바이오 및 제약 분야는 지난 2010년 삼성이 5대 신수종 사업으로 내세웠던 전면에 걸었던 분야다. 또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 51%를 보유하며 바이오로직스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끌어갈 전망이다.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7년까지 바이오의약품 분야 세계 1위 의약품위탁생산업체(CMO)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자가면역질환 치료 바이오시밀러 세계 1위를 이루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통합 삼성물산은 새로운 비전을 쏠 전망이다.

건설사업부문도 극적인 반등이 예고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건설관련 기능이 다소 겹치는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실제로 자세히 살피면 그 전문영역이 조금 다르다. 삼성물산은 말 그대로 토목 및 건설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제일모직은 빌딩의 관리 및 조경산업에 특화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1위인 삼성물산과 조경 및 에너지 사업의 인프라를 보유한 제일모직은 각각 ‘인프라’와 ‘플러스 알파’를 책임질 전망이다. 올해 1분기 삼성물산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5.6% 줄었고 영업이익은 57.7%나 감소하는 등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통합 삼성물산은 건설+관리의 시너지는 물론, 부동산 설계+테마파크 경쟁력이 더해져 추후 완벽한 경쟁력 차별화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결론적으로 통합 삼성물산은 패션과 관리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경쟁력과, 건설 및 바이오 산업 등으로 대표되는 하드웨어 경쟁력이 더해져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솔루션’을 가능하게 만들 전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력은 온전히 삼성의 경쟁력으로 체화될 소지가 있다.

▲ 이성규 기자

전면에 나선 이 부회장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을 부친인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물려받고, 메르스 사태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순간부터 사실상 삼성의 전면에 나섰다고 여겨진다. 이 지점에서 그는 글로벌 경영감각과 격식을 따지지 않는 실사구시, 소탈함의 리더십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다져오고 있다.

여기에 통합 삼성물산의 등장은 이 부회장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아직 엘리엇이 삼성SDI와 삼성화재 지분 1%를 보유한 상태에서 ‘최후의 싸움 가능성’은 여전한 상태며, 이후 ‘늘어지기 식’ 지루한 소송전도 불 보듯 뻔하다. 자칫 진흙탕 싸움에 빠져 실제적인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이 부회장은 시간관계상 자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관심은 이러한 '치열함'속에서 이 부회장이 지배구조 개편의 다소 부정적인 고리를 끊고 자신만의 시대를 보여줄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삼성물산의 주주들이 통합 삼성물산은 물론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선 삼성에 무한한 믿음을 보여준 상황에서, 이제 그들의 믿음에 보답할 때라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