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순박해 보이는 청년이 연단에 섰다.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한 직업 지도 강연에 IT 멘토로 나선 오라클의 비즈니스 컨설턴트 윤재웅이다. 평범한 배경을 지니고도 미국의 IT 대기업인 구글과 오라클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또 마케터로 활약 중인 그의 이야기에 아이들의 눈이 금새 반짝인다. 지난달 구글코리아 엔지니어 출신 IT 마케터 윤재웅을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가 익숙하지 않은 기색이었지만 곧 구글과 오라클에 입사한 비결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으로 마케터가 된 배경까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현재 하는 일이 무엇인가?

미국계 비즈니스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기업 오라클에서 마케팅 기획 업무를 하고 있다. 오라클의 한국 지사 소속이었다가 아태(APAC) 지역 소속으로 옮겼다. 오라클은 전통적으로 B2B 기업이라 대상기업을 초청하는 행사가 많다. 그런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주로 한다. 전문지 광고, 세미나 등을 진행하면서 크게는 엔지니어가 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소개하고 세일즈팀이 비즈니스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오라클 한국 지사는 삼성동 아셈타워 4개 층을 사용하는데 1300명 중 1100명이 세일즈인 셈이고 마케팅팀은 100여명이다.

 

현재는 마케터인데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 출신이다.

어렸을 때 몸이 약해서 스피드 스케이팅을 배웠는데 나중에는 선수 생활까지 하게 됐다. 잦은 부상과 고질적인 빙상계 문제들 때문에 그만두고, 수능을 봐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운동선수 출신이라 컴퓨터 언어, 수학, 물리, 화학 등 공과대학 과목을 처음 들었는데 컴퓨터가 그중 가장 좋았다. 운 좋게 코트라(KOTRA)의 대학생 행정 인턴으로 입사했고 그린사업팀에 배정받아 세미나 같은 행사를 기획하는 일을 했다. 코트라에 있으니 자연히 외국 회사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막연히 외국계 회사에 취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유학파도 명문대 출신도 아닌데 ‘신의 직장’ 구글에 입사했다.

구글코리아에 QA(Quality Assurance)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면접만 5번 정도 봤다. 학부 학점이 4.5 만점에 3.1이 될까 말까. 영어도 잘 하지 못한다(웃음). 본사 전화 면접을 앞두고 50개 예상 질문을 선별해서 거기에 대한 답변을 영작해 만들었다. 면접 날짜를 정확히 알려 주지 않아서 계속 긴장하면서 질문지와 답변을 숙지했다. 그 다음에 이것들을 모두 출력해서 방바닥에 붙여 놓았다. 본사에서 전화가 왔을 때는 예상 질문이 나오면 답변지를 바닥에서 뜯어내서 차분하게 읽었다. 생각보다 평범한 질문이 많았다. 장단점이나 왜 지원했나 같은 것.

입사 후에 선배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출신학교와 이름이 비슷한 명문대와 헷갈려 뽑았냐고(웃음). 선배는 자신이 그 학교 출신인데 그럴 리 있냐며 너무 간절해 보여 뽑았다고 했다. 숫자로만 말한다는 구글에도 정량화할 수 없는 열정 같은 것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구글코리아 등 지사의 엔지니어들은 어떤 역할을 하나?

본사가 “전체적으로 이렇게 하려는데 지사에서 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해서 해라”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준다. 그러면 거기에 따라 현지화 작업과 수정할 부분들에 대해서는 본사와 협업도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원박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구글에 단어를 검색하면 오른쪽 상단에 대략적인 설명과 사진이 들어있는 박스를 그때 만들었다. 한국인들은 화면에 여백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구글에서도 지역화의 일환으로 적응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 검색엔진을 생각해보면 실시간 검색이나 광고가 화면을 꽉 채우고 있을 거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구글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출근 첫날인데 정장을 단정하게 갖춰 입고 갔더니 문을 안 열어 주는 거다. 나중에 들으니까 해당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정장 입고 출근하는 사람 처음 봤다며 카드사 영업사원인줄 알았다고 한다.

 

복장만큼이나 업무 스타일이나 회사 분위기도 캐주얼했나?

처음에 선배들이 점심 먹으려고 출근하는 줄 알았다. 느지막이 출근해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고 3~4시면 집에 가서 일하겠다고 나가니 말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상사가 새로 오거나 하면 팀 분위기가 많이 바뀌지 않나. 그런데 구글은 그런 것이 없다.

다만 알려진 대로 구글은 성과주의다. 사내 시스템으로 일의 진도나 업무 소요시간까지 트랙킹(추적) 되니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럼에도 구글은 직원을 최대한 배려해 준다는 것이 항상 느껴졌다. ‘월요병’이란 말이 있을 만큼 직장인에게 주말 후유증과 월요일에 대한 부담이 있는 법인데 구글은 월요일에는 회의도 잡지 않는다.

 

어렵게 구글러가 됐는데 오라클의 마케터가 됐다.

구글코리아의 농구동아리 ‘농글러’ 활동을 하다가 매주 친선경기 등을 통해 오라클과 같이 다른 외국계 IT기업과 친해졌다. 당시에 IT 마케팅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컸는데, 구글에서는 엔지니어가 비즈니스 파트로 가거나 그 반대의 경우는 선례가 없었다. 고민을 했는데 오라클 마케팅팀에서 기회를 줬다.

 

IT 개발자 출신으로는 현재 유일한 마케터 아닐까.

그럴 거다. 엔지니어 출신 마케터로서 강점이 있다. 오라클이 회사 인수를 적극적으로 많이 해서 굉장히 다양한 솔루션을 갖고 있다. IT 업계에 오래 일한 마케터들도 어렵고 헷갈려 하는데 그 부분이 좀 쉽달까. 그리고 IT 개발자의 특성이 소통을 안 하는 거다. 이것은 한국 개발자나 미국 개발자나 마찬가지다. 제품뿐 아니라 이들과 공감할 수 있어 크게 도움이 됐다. IT 마케터가 되겠다고 하는 공대 후배들이 있다면 정말 환영이다. 앞으로는 더 유망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시장은 작은데 실적이 좋다. 인더스트리마다 하는 말이지만 시장 트렌드가 워낙 빠르다. 오라클은 클라우드 제품의 경우 한국부터 진출해 수정해 가면서 일본과 중국 시장 진출을 점치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뛰어넘는 훌륭한 한국인 IT 업계 인재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