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

스기타 사토시 지음 쪾양영철 옮김
말글빛냄 펴냄 1만3000원

부정부패, 우경화, 정경유착 등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쳐… 책 속에 나오는 ‘일본’이라는 단어를
'한국’으로 바꿔볼 때 가슴에 더 와닿는다.

지난 7월 일본 홋카이도의 도야코에서 다섯 번째 선진국 정상회담이 열렸다. ‘서방7개국 정상회담’ 혹은 ‘G7’이라 불리는 이 회담은 경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975년에 처음 개최됐다.
첫 정상회담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당시 서독)의 원년멤버에 경제대국 일본이 추가되었다(이탈리아는 다른 사정으로 추가). 그 이듬에 캐나다가 들어왔고 1997년 러시아가 합류하면서 오늘날의 G7+1이 정착됐다.
하지만 러시아가 합류한 이후로는 회담을 더 이상 선진국 정상회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러시아는 선진국이 아니다’라는 경멸과 동시에 스스로를 선진국이라 우쭐해하는 기존 7개국의 오만함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진국’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일본은 진정으로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
일본 오비히로 축산대 철학교수인 스기타 사토시가 쓴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은 이런 의문에 대한 강한 부정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일본은 선진국이라기보다는 개발도상국에 가까우며, 분야에 따라서는 오히려 후진국이 아닐까”라며 자신의 조국을 철저히 해부한다.
책은 일본이 결코 선진국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일본인에 의한 일본 비판서이다. 일본의 정치·교육·남녀평등·노동·환경 등에 관해 면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저자가 보여주는 일본의 현실은 자못 충격적이고 사실적이다.
책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주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부분은 정치다. 부정부패, 불상사, 과오, 정경유착, 담합 등이 각각 하나의 소제목을 이루며 세세한 수치로 그 정도를 보여준다. 근본 원인은 법에 의하지 않는 행정구조.
법을 대신해 관료 자신이 법이 되는 ‘행정지도’라는 관행이 일본을 정치 후진국으로 만든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후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선거다. 입후보자는 실적이나 정책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이름만을 계속 외쳐댈 뿐이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지난 13년 동안 선거에서 불과 40%의 득표율밖에 얻지 못했던 자민당이 80%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다.”(45쪽)
특히 일본의 정책은 미국 정부가 결정하며 강력한 로비스트인 재계가 정치헌금과 정부 심의회를 통해 자민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정부가 제안한 법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 스스로 법안을 제출하지 않는다며 추궁한다.
또 사법의 독립성은 이미 진즉에 없어졌다고 비판한다.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관료들이 재판관의 인사에 관여하면서 사법의 독립성이 침해돼, 2차대전이 끝난 뒤 지난해까지 내려진 위헌 판결은 불과 6건이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가 홋카이도의 나가누마 마을에서 미사일 기지 건설을 위해 안보림(수행방지, 방풍 등을 위해 조성된 숲) 지정을 해제하자 주민들이 반발한 ‘나가누마 사건’에서 삿포로 지법의 재판장은 자위대의 위헌 판결(1973년)을 내렸다. 그러나 그 뒤 그 판사는 정년에 이르기까지 지방법원을 전전했다.
이 사건은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 이 사건을 계기로 재판관들은 더 이상 위헌법률을 심사하지 않았다.
다른 비판의 대상은 교육이다.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경쟁적인 환경에 내던져진 비인간적인 수험제도가 후진성의 지표로 거론된다. 학벌 위주의 왜곡된 사회구조와 함께 가혹한 수험체계는 일본 교육에서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문제다. 또 교육예산은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고, 학비도 비정상적으로 높다. 허울뿐인 양성평등, 가혹한 노동조건도 일본이 후진국일 수밖에 없는 근거로 제시된다.
그리고 저자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환경후진국 일본의 정체를 까발린다.
교토의 정서를 무시하고 원자력에 의존하려는 일본 정부의 자세를 강하게 비판한다.
일본 정부는 2050년까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장기 목표를 선언했지만 2007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90년 대비 40%나 늘어났다고 강조한다.
경제사회적 현실이 예상에 못 미치더라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다면 선진국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여기서도 함량 미달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다. 일본이 선진국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저자는 “과거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으로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그 중 가장 우선적으로 한반도와 중국에서 자행한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의미는 책 속에 나오는 ‘일본’이라는 단어를 ‘한국’으로 바꿔볼 때 가슴에 더 와닿는다.
저자의 기준을 적용할 경우 대부분의 항목에서 한국은 훨씬 낮은 점수를 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진정한 선진국의 모습을 제시한다. 비정규직을 없애고, 지방주권을 확립하며, 고령화를 위기로 여기지 않는 것. 어쩌면 일본보다 한국이 귀담아들어야 할 충고들이다.
고속열차가 달리고, 각지에 고속도로가 깔리고 나라가 풍요로워도 많은 국민들이 빈곤과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면 진정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 ( jun21@asiaeconomy.co.kr)

박스
뉴리더의 책꽂이
대한민국 남자들을 위한 변명

《대한민국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윤영무 지음 브리즈 펴냄 1만1800원

“대한민국 남자들, ‘열심히’ 산다. 그러나 ‘행복하게’ 살지는 못한다.” 이런 주장을 펴는 책이 한 달 전에 나왔다. 누군가 이 땅에서 남자로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고 고민을 토로하니 한 역술가는 ‘하원갑자(1984~2043)는 여성이 지배하는 시대’라서 그런다고 역(易)으로 풀었다고 한다.
앞으로 3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나 남자가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찔하다! 그때면, 그 날이 오면 내 나이는 팔십을 바라본다. 해방이 차마 될 줄은 모르고 변절을 결심한 애국지사마냥 트랜스젠더로 살아갈까나, 갈등한 적이 한두 번은 아니다.
그러다가 남자로 버티되 나도 여자들처럼 울고 싶을 때는 《열하일기》에서 조선의 남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이 그랬던 것처럼 펑펑 울자고 이미 결심한 바 있다.
마흔하고 다섯이 내 나이다. 아직도 ‘행복하게’ 사는 것엔 서툴고 어색하다. 방송기자 20년 경력의 이 책의 저자인 윤영무 씨는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겪고 있는 ‘위기의 남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담았다. 부디 여자들이여 이것만은 제발 알아주시라.
“남자이기 때문에 아파도 참아야 하며, 능력이 있어야 한다. (중략) 남자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저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는 사이 자연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가족들은 서서히 그(아버지)를 외면하기 시작한다.”(17쪽)
집사람을 위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피를 팔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웃음과 눈물을 그린 《허삼관 매혈기》(푸른숲)에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었을까. 저자는 “나 역시 누군가의 자식일 때는 허삼관의 마음을 몰랐다”(25쪽)고 고백하며 “세월이 흘러 자신이 아버지가 되고 나니, 우리 아버지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아주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고 속내를 조심조심 드러낸다.
이 책은 대한민국 남자들의 상처를 드러낸다. 이윽고 치유한다. 펑펑 울도록 심금을 매만지기 때문이다.
여성들이여! 그냥 혼자서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처럼 당신 앞에 피식 웃고 있을 내 남자를 위하여 붓글씨다, 독서다, 영화감상이다 하면서 딸과 함께 ‘행복하게’ 시간만 보내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젖은 손 대신에 거친 손을 잡아주는 것은 어떨까. 이 땅의 여자들이 먼저 챙겨서 읽으면 좋을 책이다.
심상훈 북 칼럼니스트·작은가게연구소장

이형구 기자 lhg0544@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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