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CEO가 오늘 아침 OO일보 기사를 읽고 상당히 화가 났습니다. 그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겠다는 걸 겨우 말렸습니다. 법무 임원을 불러 ‘당장 해당 기자와 데스크까지 다 소송하라’는데 제가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습니다. 근데 이 기사를 가지고 언론중재위 제소나 별도 소송을 걸면 효과가 있을까요? CEO의 의지가 강해 안 할 수는 없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컨설턴트의 답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 약을 짓는다는 뜻이지요.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런데도 왜 여러 기업에서 부정적 기사에 대해 사후약방문과 같은 언론중재위 제소나 소송을 벌일까요? 필자가 본 경우는 대부분 ‘최고 의사결정자의 격분’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홍보 담당을 비롯해 여러 임원들의 경우 최고 의사결정자의 이런 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격분해 있는 최고 의사결정자 앞에서 ‘제소나 소송을 해 보았자 별반 소득이 없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감한(?) 임원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임원들이 종종 외부 컨설턴트들에게 그런 질문을 통해 조력을 구하는 것 같습니다.

회사 측이 주의해야 할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제소나 소송은 기업에게 법적으로 정해진 일종의 권리입니다. 그런 권리를 포기하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해당 기자와 데스크를 묶어 제소나 소송을 한 이후 회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는 필히 검토해야 합니다.

기자와 데스크 개인을 괴롭힐 수는 있습니다. 특히 정확하지 않은 기사를 쓴 기자와 데스크라면 더욱 괴롭겠지요. 조사를 위해 왕래해야 하는 시간이 그들의 일과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소송이라면 그들 역시도 법적 비용을 감수해야겠지요. 하지만 이를 통해 회사가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소득은 크게 찾기 힘듭니다.

오히려 해당 기자와 데스크가 ‘추가적인 악감정’을 품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소 과정에서 합의해 회사 측의 반론이나 정정보도가 받아들여졌다 해도 그 결과는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홍보임원은 그 기자와 데스크를 수면 아래서 다독여야 하는 추가 임무까지 얻게 됩니다. 겉으로는 이긴 것 같지만, 실질적 원상회복과는 거리가 멀지요. 게다가 ‘추가적인 악감정’을 가지게 된 기자와의 관계회복을 위한 작업과 예산까지 들어가야 하니 더욱 밑지는 장사가 되고 말지요.

따라서 부정적 기사에 대한 법적 대응은 ‘감정’보다는 ‘해당 기사로 인해 실제로 받게 된 손해’라는 엄격한 잣대를 기반으로 극히 제한되어야 하겠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부정적인 기사로 회사가 엄청난 매출하락을 경험했다. 고객들이 상당수 떨어져 나갔다. 사업 유지가 힘들게 되었다’는 중차대한 손해가 있었다면 당연히 언론을 향해 기업의 권리를 행사해야 할 것입니다.

컨설턴트로서 재고를 요청하는 경우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기분 나빠서’ 하는 법적 대응입니다. 차라리 고위임원이 해당 데스크와 기자를 직접 찾아가 만나 허심탄회한 해명을 하거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통해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기회로 만드는 것이 더 나은 전략입니다. 수많은 기업이 실제로도 그렇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존속되는 한 언론은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로서 영원할 것입니다. 비즈니스를 하루 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언론과의 관계를 부정적인 기사 몇 개와 바꾸어 버리는 행동은 전략적이지 않습니다. 관계는 쌓으면 쌓을수록 자산이 됩니다. 당연히 불필요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부정적인 기사의 가능성은 감소하게 마련입니다. 단기적인 감정으로 대응할 이슈는 원래부터 아니라고 봅니다.

‘사전약방문’이 ‘사후약방문’보다는 훨씬 나은 노력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아무 이의가 없습니다. 당연히 그런 노력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후 받은 처방’이라도 남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처방이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전약방문’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즉 소주 한 잔의 힘이 소송보다 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