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모비스 미르숲 입구에 진천군 농다리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과 대전을 오가다 보면 기다란 돌다리 하나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충청북도 진천군을 감아 돌듯 백곡면에서 세종시를 거쳐 금강으로 이어지는 미호천은 수량이 풍부하고 유속이 빠르기로 유명하다. 덕분에 사료(史料)에도 전국적인 가뭄이 들어도 미호천 일대는 물이 마르지 않아, 미곡 생산은 물론 낙농업과 양잠업(養蠶業)이 크게 발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을 마르지 않는 장점은 도리어 우환이 되기도 했다. 장마 때마다 자주 범람하는 바람에 미호천을 건너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충청북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미호천이니 이를 건너지 못하면 진천에서 증편 등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 현대모비스가 충북 진천군에 조성한 미르숲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그런데 바로 이곳에 천 년 넘게 한 자리에서 한결같이 버티고 있는 돌다리가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긴 돌다리, 바로 ‘농다리’다. 현재 충북 유형문화재 제28로 지정되어 관리 보존되는 농다리는, 전체 28개 교각으로 이뤄진 길이 93.6m 돌다리로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사진촬영 명소로 유명하다. 한 해 관광객만 30만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인기 있는 문화재이다. 누가 언제 농다리를 만들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고려 시대 초 임연 장군이라는 무장이 한겨울에 미호천을 건너는 여인을 안타깝게 여겨 자신의 용마(龍馬)로 돌을 날라 농다리를 만들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다.

농다리가 천 년이 넘도록 유실되거나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현대 건축전문가들도 주목하고 있다. 비결은 독특한 설계와 구조에 있다. 농다리는 빠른 유속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마치 물고기 비닐처럼 돌을 겹겹이 쌓아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구조다. 28개 교각 사이는 커다란 상판 돌을 얹었고, 교각에 쌓인 돌들은 그 틈 사이로 자연스럽게 물이 흐를 수도 있다. 농다리가 천 년을 버텨온 것은 이처럼 자연의 힘을 거스르지 않고 최대한 수용한 결과이다.

▲ 현대모비스가 충북 진천군에 조성한 미르숲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현대모비스 10년간 100억원 투자, 친환경 체험 숲 조성

전국이 때 아닌 가뭄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지난 6월 23일 미호천을 찾았다. 소문대로 꽤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약 100m의 농다리를 지나 살고개라는 나지막한 언덕에 오르자 옛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제를 지낸 성황당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언덕을 내려가니 탁 트인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야만 눈에 담을 수 있는 ‘초평호’였다.

초평호는 해방 직후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저수지로 조성된 곳이다. 다만 이전에도 커다란 하천이 흘러 현재의 형상과는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일대를 하늘에서 바라보면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고 한다. 화산 삼거리 위에는 커다란 작은 섬도 있어 마치 제주도를 포함한 완벽한 한반도 지형이라는 것. 육지를 감싸고 도는 푸른 물은 한반도를 둘러싼 용의 형상이다. 그래서 초평호에는 용과 관련된 다양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농다리를 놓았다는 임연 장군의 용마 이야기부터, 원래 수몰 지역에 큰 부자들이 모여 살았으나 스님의 시주를 거절하고 욕을 보여 용의 허리가 끊기게 되었고 용이 죽어 살고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 등이다.

▲ 현대모비스가 충북 진천군에 조성한 미르숲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이처럼 시간의 흐름과 역사의 추억이 있는 진천 일대의 미호천, 농다리, 초평호를 잇는 일대에 다시 용의 이름을 딴 숲이 조성되고 있다. ‘미르숲’이다. 미르는 용(龍)을 뜻하는 우리 옛말이다. 용의 전설이 얽혀 있는 미르숲은 지난 2012년부터 조성되고 있다. 조성의 주체는 글로벌 자동차 부품 기업 현대모비스와 충북 진천군이다. 첨단과 친환경의 자동차 부품 제조사인 현대모비스가 기업 정체성의 이미지에 맞는 ‘친환경’ 콘셉트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바로 미르숲 조성이다. 현대모비스는 진천군 문백면 일대에 대규모 공장설비가 들어서 있어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현지경영 차원의 사회공헌 사업이기도 하다.

현대모비스가 초평호 일대 108ha(약 33만평) 규모로 10년간 총 100억여원을 투자해 미르숲을 조성한 뒤 기부하면 진천군이 유지관리를 맡게 된다. 미르숲은 ▲자연상생 철학의 숲 ▲식경관디자인 숲 ▲지질역사 배움 숲 ▲자연생태동화 숲 ▲수변경관 투영 숲 ▲미래세대문화 숲 등 모두 6개의 특화된 테마 숲으로 구성되며, 각 숲마다 다양한 체험 및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 현대모비스가 충북 진천군에 조성한 미르숲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사회공헌의 새로운 진화 가능성 보여주다

지난 6월 14일에는 초평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살고개 아래에 세워진 야외음악당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이시종 충북도지사와 유영훈 진천군수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진천군 주민 500여명이 모인 이날 음악회는 현대모비스의 미르숲 1단계 공사 완료를 기념하는 자리였다. 현대모비스는 초평호 내 청소년 수련관으로 넘어가는 하늘다리부터 야외음악당까지 연결된 수변길(초롱길)을 조성하고, 일대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농암정을 돌아 다시 살고개로 넘어가는 등산로(능암정 오름길)까지 새로 닦았다. 이 구간은 현대모비스의 미르숲 조성 사업 가운데 30%에 해당한다.

현대모비스의 미르숲 조성 콘셉트는 철저히 친환경을 표방한다. 인공적인 조성을 최대한 지양하고 숲이 간직해온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이끌어내, 생물 다양성 증진과 유전자원 보존을 위한 야생 동식물의 서식처로 복원하겠다는 야심인 것이다. 나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기업이 이처럼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숲을 조성한 사례는 매우 드물 뿐더러, 조성 목적이 친환경 복원이라는 점에서 현대모비스의 미르숲은 분명 ‘미래의 환경, 세대, 자원’을 위한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 현대모비스가 충북 진천군에 조성한 미르숲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그 실례로 초평호를 따라 남쪽으로 걸으면 숲의 모습을 담은 친환경 설계로 만들어진 현대모비스 자연생태교육관을 만날 수 있다. 연면적 150㎡의 1층 규모의 교육전시 공간인 이곳은 초평호에 반사되는 주변 풍경처럼, 센터 전면은 단열이 뛰어난 로이 복층유리를 활용해 주변 자연환경이 투영되어 마치 본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어우러진다.

자연생태교육관 아래쪽은 데크로 연결된 습지관찰원과 명상쉼터로 이어진다.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습지관찰원이 완성되면, 자연 그대로의 습지 모습과 그곳에 거주하는 동식물을 조금 더 가까이서 원형 그대로 관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현대모비스는 이곳에서 숲 거닐기와 습지 관찰, 숲 사색, 숲 힐링, 숲 유치원, 숲 요가 등 다양한 숲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현대모비스가 충북 진천군에 조성한 미르숲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이 같은 현대모비스의 친환경 콘셉트의 미르숲 조성 배경은 다름 아닌 천 년의 돌다리 농다리의 비결에서 나온 것이다. 농다리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수긍하면서도 자연의 재해를 막아내던 옛 조상의 환경친화적 지혜를 배운 결과이다. 미르숲 조성의 지역 파트너인 진천군도 현대모비스의 친환경 사회공헌 마인드에 공감하고 적극 호응하고 있다. 진천군은 현대모비스의 미르숲 조성이 완공되면 현재 연 3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농다리가 아닌 우회로 건설을 준비 중이다.

우선 늘어나는 많은 사람들이 농다리를 건너 미르숲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문화재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회로 주변에는 별도의 편의시설이나 상점 등은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도 언제든지 누구나 농다리를 볼 수는 있지만 추가 시설물이 생기면 주변 경관과 자연을 해친다고 판단해서다.

진천군 관계자는 “농다리는 문화재이지만 별도의 입장료도 받지 않고 무료 개방된 형태로 관리되고 있다”면서 “미르숲 또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다는 현대모비스의 계획에 맞춰 만들어질 것이고, 이를 관리하는 인원만 추가로 배치할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공헌의 가치는 활동 주체들의 기본 정신에서 엿볼 수 있다. 지역에 제조시설을 둔 현대모비스가 지역친화 성격의 사업을 조성하면서 근시안적 접근이 아닌 자연과 인간의 생태계를 살리는 미래지향의 시각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사회공헌의 패러다임은 새로운 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