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서 가장 극적인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다채롭고 신비감 넘치는 화면을 구사했던 ‘빛의 예술가’ 렘브란트의 삶이 1936년 흑백영화로 제작됐다. 화가를 소재로 한 최초의 영화였다. 그 후 많은 화가들의 이야기가 영화 스크린에서 재조명됐다.

화가를 소재로 한 영화는 대개 알려지지 않았던 화가의 삶의 여러 모습을 보여 준다. 예술가 이전에 인간적인 단면들, 출생과 배경,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작업을 하는 모습까지도 모두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우리는 갤러리 벽면에 걸린 작품과 작품 곁의 전시 설명문으로는 알 수 없던 화가의 인간적인 고통과 개인으로서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2015년에 또 한 사람의 화가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했다. 독창적인 화면 구성과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천재 영화감독 ‘팀 버튼(Tim Burton)’이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많은 영감과 영향을 받았던 여류화가 ‘마가렛 킨(Margaret D. H. Keane)’의 삶을 스크린으로 가져온 것이다.

팀 버튼의 영화 <빅 아이즈(Big Eyes)>는 마가렛 킨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작품으로써 1950년대의 시대적 배경, 당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었던 여류화가의 사랑과 비밀, 예술가로서의 고독한 삶을 팀 버튼만의 시니컬한 시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전까지 자신의 삶을 영화화하자는 수많은 제안을 거절했던 마가렛 킨은 자신의 작품에 영감을 받고 자란 천재 아티스트 팀 버튼의 제안에는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또 작가가 직접 영화 속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 미술계와 영화계에서 화제가 됐다.

마가렛 킨은 1950~1960년대 ‘큰 눈(Big Eye)’를 가진 아이와 동물 등 환상적 비주얼로 미술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미국의 여성화가다. 또한 1950년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1940년대 이후 현대 미술의 중심에 서게 된 미국 미술의 시류에서 여성화가로서 미술의 상업화 등 시대의 혁신을 일으키며 성공을 거둔 그녀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녀는 팝아트가 등장하기도 전에 당시 화랑에서만 팔렸던 값비싼 그림을 누구나 살 수 있는 포스터나 엽서 형태로 프린트해서 판매했고, 상업적인 ‘키치 예술(Kitch Art)’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이는 당시 예술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그렇게 팔려나간 복사본은 미국 전역의 가정, 식당, 병원에 걸렸다. 캘리포니아에 살던 어린 팀 버튼 감독을 비롯한 많은 미국의 예술가들은 그렇게 ‘빅 아이’ 시리즈와 함께 성장했고 후에 현대적 예술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것이다.

필자는 1950년대의 감성의 샌프란시스코가 그려졌던 영화 속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샌프란시스코 이탈리아 타운에 자리한 ‘킨 아이즈 갤러리(Keane Eyes Gallery)’를 방문했다. 킨 아이즈 갤러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 북쪽에 있는 ‘작은 이탈리아(Little Italy)’라고 불리는 ‘노스 비치(North Beach)’와 기라델리 스퀘어(Ghirardelli Square)에서 35부두(Pier 35)를 잇는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안가 ‘피셔맨스 워프(Fisherman’s Wharf)’의 경계선에 있다. 그곳은 거리의 행위 예술가, 이젤을 펼쳐 놓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초상화 작가, 현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가 공존해 살아 있는 예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본 마가렛 킨의 작품은 그렇게 센세이셔널한 작품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예술인지도 정의하기 어려운 ‘쇼킹’하고 난해한 현대 미술에 익숙한 필자에게 그의 작품은 심지어 조금 밋밋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팀 버튼 영화에서 본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그녀의 삶이 그대로 녹아난 작품을 직접 마주하고 있자니 마음 속엔 작은 흥분이 일었다.

팀 버튼, 앤디 워홀, 나라 요시토모 등 그녀에게 영감을 얻은 다양한 방면의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사랑한다면 현대 미술사의 일부로서의 킨의 작품을 만났을 때 더욱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하나 더, 필자는 작품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곳을 찾을 때는 35부두(Pier 35)에서 피셔맨스 워프, 노스 비치, 차이나타운까지는 도보로 여행하는 것이 좋겠다. 킨 아이즈 갤러리를 주변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갤러리들을 구경하며 거리 예술가에게 말을 걸어보라. 손에 든 위스키를 섞어 향이 진한 아이리시 커피 한 잔으로도 샌프란시스코에 밴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