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그동안 도시발전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구(舊)도심 지역이 새로운 주거지와 핵심 상권으로 변신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이미 10년 전부터 진행돼 왔다. 과거에는 뉴타운 개발 등과 같은 대규모 철거형 재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성수, 서촌, 이태원, 신사 등 골목 문화에 태생을 둔 상권 발달 지역 중심으로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한 구도심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투자를 유발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주변 개발로 인한 임대료 상승 등으로 기존 저소득층 주민들을 몰아내는 부작용도 양산하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도시 균형 발전에는 ‘긍정적’

도시 문화에서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치는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사무실이나 상업시설은 과거보다 더 높은 이윤을 창출하고, 첨단주거지가 들어섬으로써 도심은 한층 활기를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주민의 평균 소득도 향상되고 지역에 대한 주민의 소속감과 부동산적 가치도 높아진다.

최근 콜롬비아 대학의 랜스 프리맨(Lance Freeman) 교수와 콜로라도 대학과 듀크 대학의 연구팀들이 발표한 ‘거주지역의 변화: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는 시각’이라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이 꼭 저소득 계층에게 불리한 현상만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이 재정적 순환구조를 만들어주고 나아가 잠재 거주자들에게 더 많은 경제적 기회를 창출해주어 지역경제를 살리는 측면에서 기존 원주민들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국내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상권 발달과 함께 부동산 가치도 오르고 있다. 한국도시설계학회 관계자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심재생의 관점에서 본다면 빈곤지역 또는 재개발 필요 지역이 자연스럽게 개발의 물살을 타게 만들어 도시의 균형발전의 방향으로 꽤나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특히 노후 주택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중산층이 유입되기 때문에 지역 불균형을 조정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도심권에 몰리는 수요자들… 건설업계에는 호재

젠트리피케이션은 국내 건설업계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건설사들은 주거 인프라가 우수하면서도 신흥주거지에 비해 저평가돼 분양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구도심권에 신규 물량을 집중 공급하는 모습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구도심권은 학교 교통 쇼핑시설 등 주거환경이 이미 잘 갖춰져 있고 대부분 시청사, 터미널 등을 끼고 있어 지역의 심장부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신도시나 신흥주거지에 비해 저평가된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구도심권의 신규 아파트의 경우 이 같은 기본 주거 인프라를 활용해 단지 개발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분양가격도 상대적으로 낮아 소비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이 지난 2012년 마포구 아현동에서 분양한 ‘아현 래미안 푸르지오’의 경우 마포지역 거주민 외에도 용인 등 수도권 거주자들도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당시 청약의사를 밝힌 3000여명 중 15% 가량이 용인 등 수도권 거주자였던 것. 통상 타 단지에서 3~4% 가량이 수도권 거주자임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분양 관계자는 “최근 아파트 청약 시장에서 출퇴근 시간을 줄이려는 중산층의 ‘직주근접’(職住近接) 수요가 늘고 있다”며, “특히 사람들의 공간 소비방식이 교외에서 도심으로 바뀌고 있어 이 같은 도심회귀화는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과거 1990년대 중반 한국에서 전원주택 붐이 일었지만 최근 전원주택이 쇠퇴하게 된 원인은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산업구조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도심 쏠림 현상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역시 산업구조의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사람들의 주거공간의 소비패턴도 교외에서 도심 지향적으로, 이용방법도 조방적(粗放的)에서 집약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시 정비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

#한남‧왕십리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 정비사업을 통해 외부 인구가 유입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대표적인 구도심 지역으로는 용산구 한남동, 성동구 왕십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지역은 노후화한 대단위 주택들이 재개발 또는 재건축 호재에 힘입어 많은 중산층들이 유입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상권 발달 및 투자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용산구 한남동의 경우 최근 한남뉴타운 구역별 사업이 속도를 내며, 주택 거래량과 가격 모두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새로운 상권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용산구의 아파트 거래량은 올 2월 8만5517건, 3월 11만6022건, 4월 12만1540건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탔으며, 지난 4월 거래량은 2006년 11월(14만4272건) 이후 최대치로 집계됐다. 올해 4월 아파트 매매 거래량 역시 8만3483건으로, 2013년 6월(9만4647건)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지난 4월 사실상 폐지되면서 한남뉴타운 구역별 사업도 차츰 속도를 내고 있다. 입지 여건이 좋은 3·5구역은 벌써 3.3㎡당 지분가격이 4000만원대를 회복했다. 이는 부동산 경기가 한창 좋았던 2005~2006년 5000만원 안팎에 거래되던 지역인 점을 감안하면 추가 상승 여력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저물어가던 한남동의 상권이 다시 살아난 건 2011년 옛 단국대 부지에 고급 임대주택인 ‘한남더힐’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주변에 고급 주거지가 밀집한 지리적 환경에 한남더힐이 입주를 시작하면서 부유층을 겨냥한 프랜차이즈 업체와 고급 카페가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남동 안에서도 특히 독서당로 주변을 중심으로 점포 임대료와 권리금, 매매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독서당로 일대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상가에 투자하고 싶다는 문의가 하루 5~6건 정도 꾸준히 오고 있지만 정작 매물이 없어 계약을 못 하고 있다”며, “주변 중개업소의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그동안 도시발전 과정 속에서 철저하게 소외돼 온 왕십리도 최근 상황이 180도 달라지고 있다. 1960~70년대 연탄공장과 곱창골목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였던 왕십리 일대가 뉴타운 개발과 함께 서울 시민들의 새로운 인기 주거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

왕십리는 행정동으로는 상왕십리동과 하왕십리동으로 나뉜다. 과거 하왕십리동의 경우 왕십리역 주변 역세권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지만 상왕십리동은 단독·다가구 주택들이 밀집돼 있고 상대적으로 하왕십리보다 정체된 지역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3년 1차 뉴타운사업 시행구역으로 지정된 뒤 지역 개발에 급물살을 타고 있다.

편리한 교통 환경도 왕십리를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지하철 2‧5호선을 통해 서울 전역으로 이동이 가능하고 동호대교나 성수대교를 건너면 바로 강남권과 연결된다. 여기에 분당선 연장 구간인 왕십리~선릉 복선 전철이 2012년 10월 개통되면서 강남 접근성이 더욱 좋아졌다.

이에 따라 왕십리가 속한 성동구의 기존 아파트 가격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기준 성동구 아파트의 3.3㎡당 평균 매매가격은 1878만원으로 서울 강북 지역 평균가(1593만원)보다 18% 정도 비싸다. 최근 2년 사이 성동구 지역 아파트값 상승률은 7.9%로 서울 지역 평균(4.6%)은 물론 서부권 대표 주거 타운인 마포구(3.8%)보다 훨씬 높다.

실제 최근 왕십리 주변에 분양하고 있는 아파트 가격도 크게 올랐다. 전용 84㎡의 분양가가 보통 6억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김광석 리얼투데이 이사는 “왕십리 일대 아파트 30대 계약자는 광화문, 강남 일대 대기업이나 금융권 종사자가 특히 많다”며, “주택 경기가 호황인 데다 저금리 장기화로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 적극적으로 주택 구매에 나서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골목 상권, 대형 유통사 진출 활발

 #삼청동‧이태원

도시 정비를 통해 타 지역의 인구가 유입되는 지역과는 달리 ‘골목 문화’가 대중들에게 어필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구가 몰리고 상권이 발달하는 지역도 있다.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고 있는 종로구 삼청동은 서울에서 지가가 낮은 상대적 낙후지역이었다. 1970~1980년대에는 근린주구적 상업가의 특성이 있었던 삼청동길은 1990년대 인사동 인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삼청동 지역으로 주거지와 작업실을 옮겨왔고, 이들에 의해 삼청동길은 점차적으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장소로 변했다.

최근 이곳에는 국내 유명 화장품 브랜드숍과 신진 화장품 매장도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삼청동에도 2011년을 기점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화장품 대형 매장들이 10여개로 늘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알리는 한편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상가의 임대료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 2005년 33㎡ 상가의 임대료가 보증금 1억원, 월세 500만원, 권리금 5000만원에서 현재는 보증금 2억원, 월세 700만원, 권리금 1억5000만원 수준까지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태원 경리단길은 최근 가장 핫한 지역이다. 이곳은 원래 전형적인 주택가였으나 2010년 이후 이태원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젊은 예술가와 상인들이 이곳에 정착했고, 현재 서울에서 가장 최신 트렌드를 선도하는 상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연히 지가도 크게 올랐다. 경리단길의 상가 평균 임대료는 2009년 전용면적 33㎡ 기준 83만원이던 것이 지난해엔 102만원으로 5년 새 22% 상승했다. 매매가 역시 2010년 3.3㎡ 기준 3108만원에서 지난해엔 5426만원까지 올랐고, 대로변 지가의 경우 2010년 3.3㎡ 기준 3413만원에서 지난해엔 6183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후유증… 떠나가는 원주민들

정체에 빠진 도심이 다시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으나 부정적인 단면도 존재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뤄지면 지역은 한층 활기를 띠고 주민들의 평균 소득도 향상되며 지역에 대한 주민들의 소속감도 높아지지만, 문제는 중산층 유입과 외부 거대 자본의 참여로 인해 지가가 지나치게 올라 기존의 지역 생태계는 파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대, 삼청동 등 문화로 일궈낸 특정지역의 활성화가 결국에는 뒤늦게 치고 들어오는 자본에 의해 잠식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강남권에서 대규모 재건축 이주 수요가 발생하는 점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속도를 한층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강남 4구(서초·강남·송파·강동)의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 올해와 내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재건축에 따른 올해와 내년 강남 4구의 주택 부족량은 1만3357가구에 달한다. 주택 멸실량은 4만2460가구지만 공급 물량은 2만9103가구에 머무는 데 따른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불안한 서울 전세 시장에 ‘시한폭탄’이 될 우려가 크다. 일반적인 전월세와 달리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기존 주택이 멸실되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수요라는 점에서 주변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수급 불균형으로 주변지역 전세가격도 요동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강동구의 전세가 상승률은 1.75%로 서초구(2.05%)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서초구 역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 임대료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부동산114 관계자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지가가 지나치게 오르면 기존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나 영세 사업자들은 폭등한 월세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날 수밖에 없다”며 “최근 1~2년 사이 가장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태원 경리단길은 이미 기존의 특색 있는 가게를 운영하던 영세사업자들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고 그 자리를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은 중하류층이 살아가는 공간에 상류층이 치고 들어와 울타리를 치는 또 다른 빗장 동네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 출처=한국감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