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진 대표 / 사진=박재성 기자

전 국민이 놀아야 사는 기업이 있다. 모텔업을 필두로 한 숙박 정보 및 여행 콘텐츠 제공기업 ‘야놀자’다. 야놀자는 극장 및 케이블 광고를 시작으로 지난 1일부터 지상파 광고를 시작했다. 모텔업이 TV 광고에 등장한 최초의 발칙한 사례다. 광고 속 배우는 묻는다. “노는 데 밤낮이 어딨어?” 음지에 있던 모텔 양지화를 넘어 노는 데 인색한 일꾼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도발이다.

야놀자를 이끄는 수장 이수진 대표는 ‘논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모텔 프론트를 보던 직원에서 150명의 직원을 거느린 연매출 200억의 기업을 만든 그는 노는 행위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기자가 만난 그는 설득의 중요성을 감각적으로 아는 ‘소통형 리더’였다.

이 대표의 사무실에는 각종 스포츠 트로피와 장난감이 있다. 사무용 테이블은 온데간데없고 알록달록 파스텔톤 책상이 있다. 그 위에는 이 대표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대학생 멘토단’ 유인물이 숙제처럼 놓여있다. 그는 말을 할 때 상대의 호흡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고 상대의 이해를 돕기 위해 풍부한 부가설명과 사례를 녹여낸다. 

 
객실 청소로 시작해 줄 서 기다리는 모텔 세웠다

야놀자는 모텔·펜션·호텔·게스트하우스 등의 숙박 예약플랫폼을 자체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제공하고 모텔 프랜차이즈를 운영한다. 숙박 광고 제휴점수는 4000곳이며 누적 회원 260만명이 야놀자를 통해 월 평균 1만5000건 숙박장소를 예약한다. 프랜차이즈 모텔은 65개로 보유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730만을 넘어 매일 5만명이 사용한다.

이 대표는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됐을까. “가난했기에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욕망에 솔직했다. 이 대표는 일반 기업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직장을 다니던 그는 자신의 욕망에 집중했다.

그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라는 책을 읽고 일하지 않아도 수입을 얻는 수입체계를 연구했다. 자기계발서와 경제지를 탐독했고 그 결과 ‘맨땅에 헤딩‘ 한번 해보자 하는 식으로 회사를 나왔다. 그의 발걸음은 '모텔'로 향했다. 그는 모텔 종업원일 부터 시작했다. 주차장, 객실 청소와 관리를 했다.

이 대표는 “모텔 일을 하다 보니 종사자들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다음 사이트에 ‘모텔 이야기’라는 카페를 개설해 운영했다. 이것이 나중에는 비투비(BtoB) 사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가 운영하던 ‘모텔 이야기’ 카페 회원 수가 1만명을 돌파하며 모텔 납품업체들에게 소문이 났다. 이 대표는 그들과 카페에 가입한 업주들을 연결해주기 시작했다. 이를 확장해 2005년 야놀자의 모태인 ‘호텔모텔펜션’이라는 모텔 홍보사이트로 사업을 시작했다.

▲ 이수진 대표 / 사진=박재성 기자

회사를 세우고 시행착오가 많았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경영을 몰랐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정말 많았다. 엄청 많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몰랐기에 사람을 수치로 보지 않았다. 회원도, 업주도, 사원도 나에게는 소통과 설득의 대상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영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사업을 시작했다. 다음 카페를 운영한 경험이 전부였다. 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웹 에이전시 5곳 이상을 방문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이 대표는 “웹 에이전시가 뭔지도 몰랐다. 방문할 때마다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하고 나와 들은 것을 다 찾아가며 공부하는 것을 반복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주먹구구식으로 일단 직접 체험했다. 회사 경영에 필요한 디자인, 재무, 시스템 개발, 영업 전반을 일단 스스로 시작한 뒤 판이 읽히면 전문 인력을 구했다.

이 대표는 “당시 신생 회사였고, 비전도 불투명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 인력을 구할 때 고용하기보다 설득했다. 왜 우리 회사에서 일해야 하는지 설득하며 함께 비전을 만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의 사업은 체험을 통한 설득을 기반으로 빠르게 안정화됐다. 2008년 신림에 첫 직영 프랜차이즈 모텔을 오픈했을 때는 주차장을 넘어서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모텔 출입을 기다리는 진풍경을 만들어냈다.

야놀자는 음지에 있던 모텔 전반을 양지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야놀자가 모텔 이용 정보 및 후기를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자 그 안에서 고객들의 니즈(Needs)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 중 하나가 ‘카페식 인테리어’다. 이 대표는 “사이트에 모텔 이용 고객이 자발적으로 사진 후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후기를 살펴보니 평점의 기준은 인테리어에 있더라" 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야놀자 첫 직영점을 만들 때 기존의 어둡던 모텔 색을 빼는 데 집중했다. 밝은 컬러를 쓰고, 카페풍의 인테리어를 만들었다. 이 대표는 “당시 숙박업소 관계자들이 이렇게 하면 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숙박시설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장소다. 모텔은 연인들만 오는 장소가 아니다. 모텔이 러브호텔이나 여관을 벗어나 좀 더 개방되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콘텐츠의 기본은 적극적 소통에 있다

야놀자의 여가 콘텐츠 플랫폼은 회사와 함께 성장했다. 회사 설립 초창기에는 숙박 정보 플랫폼만 제공했지만 숙박이 곧 놀거리에 포함된다는 생각에 여가문화로 범위를 넓혔다. 2007년 ‘데이트 콘텐츠’ 플랫폼을 거쳐 2010년 ‘국내 여행’ 과 ‘호텔’ 플랫폼을 만들었다. 작년 ‘팬션’에 이어 지난달에는 ‘게스트하우스’ 플랫폼을 추가했다. 야놀자의 수익의 절반 이상이 광고에서 나오는 것을 볼 때 플랫폼의 성장은 수익성의 성장을 의미한다.

콘텐츠 플랫폼의 모태 역시 ‘언니들의 놀이터’로 불리던 다음 카페에 있었다. 이 대표는 야놀자 커뮤니티를 이곳부터 시작했다. “사이트 구축 전 플랫폼으로 이용하던 다음 카페는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줬다. 가입자의 70%가 여성이었는데, 배란일 계산법이나 피임법 같은 정보를 그들끼리 공유하며 활성화됐다. 나중에는 이용자들을 위해 여성 전용 게시판을 따로 생성했다”고 설명했다. 야놀자 데이트 정보 플랫폼에는 오프라인에서 하기 힘든 섹슈얼한 이야기부터 말 못 할 고민까지 낮과 밤의 풍부한 데이트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 대표는 “사실 여행·데이트 콘텐츠가 직접적으로 수익과 연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도심에서 놀면 모텔을 이용하고 교외에서 놀면 펜션을 이용하게 된다. 놀기 위해 야놀자 콘텐츠를 이용하면 거기에 숙박정보도 같이 제공하는 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적극적인 이용자들을 놓치지 않았다. 고객들의 말풍선에서 영감을 받아 ‘풍선 적립제도’를 만들었다. 가맹 모텔에 가서 회원카드를 내면 카페에서 적립 쿠폰을 주듯이 풍선으로 포인트를 적립해줬다.

직접 소통하기 위해 펜션이나 호프집을 통째로 빌려 정모도 기획했다. 이 대표는 “정모는 초창기 3달에 1번씩 했다. 150명 정도의 이용자들이 모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개선사항을 말씀해주셨다. 10주년 리스타트 선포식 때는 가장 활발하게 의견을 말씀해주신 고객에게 우수 회원상을 드렸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대표는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회원의 의견을 반영해 가맹 모텔에 팝콘기계를 설치했다. 이는 가맹점이 아닌 곳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야놀자가 시작해 모텔 업계 전반에 번진 마케팅이다.

▲ 이수진 대표 / 사진=박재성 기자

노는 문화 리드하는 기업이 목표

야놀자는 작년 잡플래닛과 포춘코리아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기업 50’에 선정됐다. 사내문화를 ‘노는 것’에 중점을 둔 덕이다. 매달 셋째 주 수요일에는 일을 하지 않고 노는 ‘놀수’는 사내 대표 복지행사로 하루 종일 노는 것이 그날의 업무다. 또 타 부서와의 친목 도모를 위해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직원들로 팀을 만들어 회식을 전폭 지원하는 ‘랜덤회식’과 사내 구성원들이 직접 중고용품과 먹거리를 판매하는 작은 장터 ‘야시장’도 주기적으로 개최한다. 특히 야시장은 사옥 주차장에서 진행하며 마을 주민들의 참여를 도모한다. 실제 이 대표는 500원씩 받아가며 직원들 관상을 봐주기도 했다. 이 대표는 “평소 워크숍을 할 때도 호텔이나 클럽을 통째로 빌리곤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작년 워크숍이다. 옆에 온 타 회사 직원들이 우리 노는 것에 벙져서 보고 있더라. 미안해서 막걸리 몇 박스를 가져다 줬다”며 당시를 즐겁게 회상했다.

이 대표의 경영철학은 ‘다름에 대한 인정’이다. 그는 모든 부서의 일을 직접 해봤다. 그러나 그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나는 방향만 정해주면 된다. 간섭을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내 시각에 갇히게 된다. 직원들도 다른 곳에서 경험을 쌓아왔는데 그분들에게 나의 논리를 함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 고 말했다.

그는 인재 채용에도 자신의 시각을 벗어난 이를 선호한다. 이 대표는 “다양한 면을 보는 이가 좋다. ‘할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려도 손자, 며느리, 아들의 입장이 다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 회사에 와서 잘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야놀자의 비전은 ‘문화를 리드하는 기업’이다.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사는 것이 미덕인 사회 풍토에 이 대표는 노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 계획이다. 모텔에 대한 묘한 반감도 마찬가지다. 그는 “장의사가 상조회사로 익숙해지고, 고리사채가 CM송으로 친숙해졌다. 모텔도 마찬가지로 익숙해질 수 있다”라고 말하며 모텔에 대한 불편한 인식 변화를 계속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야놀자는 수많은 최초를 만들어냈다. 적극적 홍보를 통해 전체 모텔의 분위기를 바꾸고, ‘중소형 모텔’, ‘파티룸’이라는 말도 처음 쓰기 시작했다. 현재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플랫폼 언어 번역 작업도 진행 중이다. 오는 7월에는 모든 정보를 통합한 ‘통합 플랫폼’ 베타버전이 출시된다. 이 대표는 아직도 시도하고 싶은 게 많다. 

그는 “나의 멘토님들이 있다. 대학생으로 구성된 ‘야놀자 CEO 멘토단’이다. 그들은 PPT 자료까지 만들며 나에게 그들의 시각으로 본 이슈에 대해 가르쳐준다”며 자랑스레 그들이 발표한 유인물을 보여줬다. 그는 직원과 고객을 넘어서 대학생들과도 소통하고 있었다. 그의 멈출 줄 모르는 소통에 야놀자의 미래가 기대된다.

<프로필>

▲2007 ~ 현 사명 변경, (주)야놀자 사장
▲2005 ~ 2007 '호텔모텔펜션' 숙박 포털 대표
▲2001 ~ 2005 숙박업 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