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쿠팡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무려 10억 달러. 쿠팡은 지난해 5월 미국 세쿼이어캐피탈로부터 1억 달러, 11월 미국 블랙록으로부터 3억 달러의 투자를 받은 이후 또 한번 잭팟을 터트렸다. 쿠팡에 따르면 이는 한국의 주요 스타업들이 지난 1년동안 투자받은 금액의 합계인 6억3600달러의 2배 이상이며, 지난 한해 글로벌 벤처 단일 투자유치금액 기업 순위로는 우버, 샤오미에 이어 3번째를 차지한다. 지극히 쿠팡을 중심에 둔 유리한 해석이지만 틀린말은 아니다. 쿠팡은 엄청난 역사를 썼다.

참고로 이번 투자는 소프트뱅크가 쿠팡의 미국지주회사인 포워드벤처스의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포워드벤처스의 자회사는 쿠팡뿐이며, 김범석 대표의 대주주 지위와 경영권은 그대로 보장된다.

▲ 출처=쿠팡

쿠팡은 어떻게 존재했고, 어떻게 바뀌나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을 중퇴한 김범석 쿠팡 대표는 2011년 연중무휴 콜센터를 열어 100명의 상담사를 고용하는 장기적 접근방식으로 발판을 다진 후, 모바일 인프라에 방점을 찍은 로드맵으로 소셜커머스의 비전을 쐈다. 이어 로켓배송을 통해 업계에 파란을 일으킨 쿠팡은 다소 논란을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했다.

소프트뱅크도 이 지점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전국 단위의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배송 전담직원 쿠팡맨을 통한 자체배송 시스템 완성했으며 판매 대행 및 상품 매입하여 판매부터 배송까지 직접 책임지는 새로운 다이렉트 커머스(Direct commerce) 모델의 실현, 거래액 중 최대 81%, 평균 75%로 높은 모바일 거래 비중을 달성하는 등 국내 모바일 커머스 리드, 모바일 앱 다운로드 수가 2500만으로 전국민 2명 중 1명 꼴의 사용자 보유, 해외 R&D센터를 통한 IT기술력을 보유가 손정의 회장의 흥미를 끌었다는 뜻이다.

앞으로 쿠팡은 두둑한 탄알을 바탕으로 기존 8개의 물류센터를 16개까지 확충하고 로켓배송의 근간인 로켓맨도 7월말까지 800여 명을 추가채용한다는 방침이다. 쿠팡이 강조했던 것처럼, 이제 소셜 커머스가 아니라 이커머스 회사로 발전하겠다는 뜻이다.

 

소프트뱅크는 왜 쿠팡에 투자했나

사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소프트뱅크는 왜 쿠팡에 투자했을까? 쿠팡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손정의 회장의 후계자인 니케시 아로라 소프트뱅크 부회장은 “쿠팡의 기술력, 고객 서비스, 창의적인 배송 모델 등은 전 세계 전자상거래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며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혁신기업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숨겨진 행간을 읽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소프트뱅크에서 원칙적인 투자배경을 밝혔지만 한 발 더 깊숙이 들어가 그 원류를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일단 소프트뱅크가 보여주는 최근의 행보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 지난달 11일 소프트뱅크는 2014년 회계연도 실적발표를 통해 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30% 증가한 8조6702억 원, 순이익은 전년 대비 28% 증가한 약 6조 원에 달한다. 영업이익은 다소 감소했으나 8조9500억 원을 기록해 선방했다. T모바일과의 합병불발로 정체기에 접어든 미국 3위 통신사 스프린트의 부진이 길어지는 대목은 아쉽지만 중국 알리바바의 매직이 소프트뱅크에 큰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 자리에서 손 회장은 실적을 발표하며 차세대 먹거리로 인터넷을 지목했다. 통신에 치중한 사업 모델을 버리고 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도다. 손 회장은 “지금까지 내 머리 속의 90% 이상은 통신 인프라 구축만 있었다. 인터넷 전략에 사용한 시간은 2%~3%였다”고 고백하며 “우리가 보여준 인터넷 전략은 취미였다. 다음 무대는 인터넷이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소프트뱅크의 차세대 동력은 인터넷 사업, 즉 IT라는 천명이다. 여기서 큰 그림을 보자. 소프트뱅크는 최근 인도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스냅딜, 싱가포르 콜택시 기업 그립택시, 중국의 콜택시 기업 콰이디다처, 모바일 게임회사 슈퍼셀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이 지점에서 기존 투자한 알리바바와 스냅딜, 쿠팡을 연결하면 흥미로운 대목이 포착된다. 모두 ICT 기술에 기반을 둔 전자상거래 업체(쿠팡은 소셜커머스지만 자신들을 전자상거래 업체로 자평한다)다.

소프트뱅크 입장에서 인도와 중국, 아시아를 연결하는 전자상거래 인프라를 하나의 라인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즉 거점 파트너의 역할로 쿠팡을 점지했다는 뜻이다. 다소 그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충분히 타당한 시나리오다. 소프트뱅크의 실적발표와 동시에 터진 인터넷 기업으로의 진출과 맞물리면 가능성이 농후하다. 추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더 정교하게 들어가자면 배송이라는 인프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 수준인 스냅딜은 차치해도, 알리바바는 배송 시스템이 그리 강력하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탁월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3개의 지역을 3개의 기업으로 연결하며 쿠팡의 배송 경쟁력을 적절하게 남은 두 개의 기업에 이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해당 라인업이 강력한 유동 관계성을 가지는 대목도 특기할만 하다. 최근 방한한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코리아페이의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뛰어난 국내기업과의 협업을 강조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역직구 시장을 잡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중국전자상거래연구센터에 따르면 중국 역직구 시장은 2013년 13조 원에서 2016년에는 무려 106조 원, 2018년에는 40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알리바바와 이마트, 롯데마트와의 협력을 비롯해 현대로지스틱스, CJ대한통운과 같은 국내 물류업계와의 협력도 이와 결을 함께한다. 잊을만 하면 나오는 아마존의 국내 이커머스 시장 진출과 비슷하다.

알리바바는 국내 역직구 시장을 잡기 위해 발판을 만들고 있으며 이는 역으로 두 지역의 유동 관계성이 장차 강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인도(기회의 땅)-중국(거대한 내수시장)-한국(기술, 특히 물류IT)의 가능성에 해당지역의 강력한 유동 관계성까지 더해졌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테스트 베드로 삼는다는 전략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뱅크가 제4이통사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을 당시 일각에서 “만약 진출한다면 국내 ICT 환경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기 위함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국내 ICT 환경은 좁고 제한적이지만 인터넷 인프라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당연히 고려 가능한 시나리오다.

물론 이러한 전제는 모두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매력적이지 않다라는 관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사실상 정체상태며,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영역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008년 11번가를 끝으로 특별한 시장 진입자가 없을 정도로 정체되어 있다. 그런데 소프트뱅크가 쿠팡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다?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점령하겠다고 이런 돈을 썼을까? 현실 가능성이 낮다.

 

쿠팡은 가치가 있다

쿠팡의 자체 경쟁력은 물론, 지정학적 위치와 잠재력을 모두 고려하면 소프트뱅크의 대대적인 투자에는 고개가 끄덕여 진다. 여기서 IPO를 통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한 가지 불안요소가 있다. 쿠팡은 현재 국내사업에만 집중하며 그 경쟁력을 키우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쿠팡측은 “당분간 글로벌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프트뱅크의 인내와 의지다. IPO라는 이벤트를 전후해 쿠팡이 당장의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쿠팡이 적절하게 넘길 것으로 보인다.

협력하지만, 당분간 동상이몽으로 지낸 후 다시 협력한다. 지금 쿠팡과 소프트뱅크의 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