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한 세대를 말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30년이면 강산이 3번이나 바뀐다. 김승연 회장이 올해로 한화그룹을 30년째 이끌고 있다. 화약제조업으로 출발한 한화가 지난 2002년에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금융업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한화는 현재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으나 여전히 목마르다.

김 회장은 다음 10년을 대비하고 있다. 한화는 태양광을 비롯한 신성장 산업군과 글로벌화 등 다음 먹거리 준비에 바쁘다. 한화케미칼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태양광 분야에서 본격적인 성과물을 내놓고 있다. 올해는 글로벌화를 위해 오는 5월에 한화차이나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편집자 주>


“앞으로 10년이 글로벌 선진화를 이룩할 중차대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태양광 업체로 새 출범한 한화솔라원, 닝보 공장, 중국 내 보험영업을 준비 중인 대한생명에 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김승연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김 회장은 이어 “그린에너지, 바이오와 같은 차세대 신사업은 그룹의 미래를 위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추진돼야 한다”며 “2020년까지 태양광 등 핵심 사업부문에서 세계 1등 제품, 세계 1등 서비스, 세계 1등 글로벌 리더 기업을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기업의 지속성장에 저해된다면 기존 사업모델의 안정과 익숙함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의 속도도 중요하지만 일의 방향이 더욱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화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 셈이다.

한화케미칼 앞세워 세계공략

한화그룹은 태양광 사업과 기존 사업의 고부가가치화, 해외 진출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한화케미칼을 앞세웠다. 한화케미칼의 원래 사명은 ‘한화석유화학’이었다. 지난해 3월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신사업을 개발해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개명했다.

한화케미칼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폴리염화비닐(PVC)을 생산하며 플라스틱의 시대를 열었다. 합성수지도 국내 최초로 생산했고 1980년대에는 유기화학과 무기화학에 이르는 사업 영역까지 확고히 했다.

한화케미칼은 1986년부터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thylene Vinyl Acetate, EVA) 시트용 EVA 수지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이는 태양전지 모듈의 보호 및 접착용 핵심 소재다. 한화L&C를 통해 EVA 시트로 가공, 판매해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계획이다.

김승연 회장은 차세대 먹거리로 가장 먼저 태양광 사업을 선정했다. 한화가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일례로 한화케미칼은 EVA 시트용 수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EVA 시트는 한화L&C를 통해 가공, 판매해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 또한 화학업종에서 잔뼈가 굵어 태양전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하우’도 갖고 있다.

태양광 사업 규모를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태양전지(셀)-모듈까지로 확대해 밸류 체인의 수직 계열화를 구축하고, 사업을 글로벌화시키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지난해 1월 울산 태양전지 생산 및 판매를 기점으로 한화케미칼은 태양광 사업을 본격화했다. 같은 해 태양광 모듈 부문에서 세계 4위 규모인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 사명을 한화솔라원으로 바꿨다.

한화솔라원은 태양전지(셀) 500㎿, 모듈 900㎿의 생산 규모를 갖고 있는 회사다. 잉곳에서부터 웨이퍼, 태양전지, 모듈에 이르기까지 태양광 사업상의 수직 통합된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케미칼 태양전지공장 내부 모습(왼쪽). 태양전지공장 내에서 제조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태양광, 계열사 협력체제 구축

한화케미칼은 한화솔라원 인수에 이어 10월에는 미국의 태양광 기술 개발업체인 ‘1366테크놀로지’의 지분을 인수했다. 이 회사는 잉곳 과정을 거치지 않고 용융 상태의 폴리실리콘에서 직접 웨이퍼를 생산하는 ‘다이렉트 웨이퍼’(Direct Wafer)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기술이 완성되면 잉곳을 만드는 과정에서 폴리실리콘이 절반가량 손실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한화케미칼 측은 2년 이내에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1366테크놀로지는 웨이퍼 표면 가공, 전극 형성 기술을 통해 다결정 실리콘 태양전지의 광전효율을 증대시키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은 원가 절감을 가져와 태양광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촉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케미칼은 2020년까지 총 6조 원을 투자해 태양전지 및 태양모듈 생산 규모를 4GW까지 증설해 세계 1위의 태양광 업체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4GW는 국내에서 평균 130만 가구가 1년간 쓸 수 있는 전기량이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국내 전체 가구 수가 1000만 가구를 조금 넘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가구 10%가 쓸 수 있는 규모”라며 “다만 국내에 판매하는 게 아니라 해외에 수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솔라원은 올해부터 대규모 설비 투자에 들어간다. 내년에는 태양전지 셀 생산 규모를 1.3GW로 늘리는 한편 모듈 생산 규모도 1.5GW로 증설할 예정이다. 한화케미칼은 자체 개발한 공정 처리 기술로 태양전지 셀의 광전화 효율을 현재 수준보다 1% 높일 계획이다. 이 신기술을 생산 설비에 적용하면 연간 1700억 원의 매출 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더불어 지난해 12월에 크리스 에버스파쳐(Chris Eberspacher) 박사를 한화그룹 태양광부문의 글로벌 CTO(Chief Technology Officer)로 영입했다. 그는 25년 간 태양전지 셀 공정 기술 개발에 전념해온 태양광 분야의 저명한 학자다.


바이오 의약품·2차전지 개발도 박차

한화케미칼은 신성장 동력으로 바이오 의약품과 2차전지 개발에도 관심이 높다. 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 바이오센터는 2006년 말 항체치료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바이오시밀러 및 신약 항체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해 1월 류마티스 관절염 임상 1상을 마치고 최근 임상 3상에 돌입했다. 벌써부터 터키 및 브라질 제약사와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와 유방암 치료제 등의 바이오시밀러 뿐 아니라 천식치료제, 폐암치료제 등의 바이오 항체 신약 개발에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2차전지의 핵심 기능 소재인 양극재 생산을 위한 공장도 최근 완공했다. 본격적인 생산을 하기 전부터 2차전지 회사와 자동차 회사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화케미칼의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양극재는 기존 양극재시장의 제품과는 다르다. 자연 속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철을 주 원료로 하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

무엇보다 안정적이며 친환경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국내 특허는 획득했고 미국과 일본에서 특허를 받는 등 해외에서 특허출원을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이밖에 한화케미칼은 투명전극, 백라이트유닛(CNT-BLU), 친환경 전도성 도료(CNT-Paint), 전도성 플라스틱, 자동차용 경량화 소재 등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다양한 응용분야의 연구 개발을 진행 중이다.


中·동남아·중동 등서 가시적 성과

한화그룹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을 발판으로 해외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중국 텐진의 전략적 사업기지 육성계획은 또 하나의 도전”이라며 “차이나 본사 설립부터 태양광 공장 증설, 명품백화점 출점, 자산운용업 진출까지 다양한 시너지 제고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화그룹은 이르면 오는 5월쯤 중국 사업을 총괄할 한화차이나를 출범시킬 방침이다. 그러면 한화케미칼의 PVC 공장 증설 프로젝트가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케미칼은 지난 2월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 연 30만t 생산 규모의 PVC 공장을 완공했다. 2015년까지 50만t을 증설해서 국내 생산시설을 합해 연 140만t을 생산, 세계 5위에 오른다는 구상을 마련했다.

금융 분야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대한생명이 올 연말까지 중국에 합작법인을 통해 보험업에 진출할 계획이다. 한화증권도 2008년 상하이에 투자자문사를 설립한 데 이어 한화투신운용이 텐진에서 자산운용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뿐 아니라 다른 지역 진출도 꾸준하다. 한화케미칼은 이미 지난 2009년 하반기부터 태국에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알칼리수용성수지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민간 석유화학회사인 시프켐과 합작투자로 건설되는 현지 공장이 곧 착공에 들어가서 2014년부터 상업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한화는 지금 태양광 사업, 바이오의약품, 2차전지, 글로벌화 등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한화를 이끌고 온 김승연 회장의 변신 노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시장에서 관심이 높다.

김경원 기자 kw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