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태양이 하늘을 비춘다. 너무나 밝게 빛나는 한낮의 햇살에 홀려 부릅뜬 두 눈을 파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창공의 아래에 숨 죽이고 있는 열대우림은 기분나쁠 정도로 조용하고 축축하다.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와 오랜시간 이곳의 주인이었던 이들의 낮은 발소리만 풀숲의 뱀처럼 서걱인다.

남자는 자신을 향해 활과 창을 겨누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떨리는 손으로 오보에를 집어든 남자는 숨막힐듯한 공포를 맨몸으로 막아내며 연주를 시작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살의에 연주는 불안전하지만 내면의 풍경은 더할 나위없는 평온이다. 검게 그을린 남자의 미간이 꿈틀거릴때마다 마법은 무기를 든 자들의 심장을 매혹시킨다.

▲ 출처=영화 미션 장면

매혹의 무기
1986년 개봉한 영화 미션은 권력과 폭력의 불편한 관계설정과 이를 통한 인간 내면의 진지한 성찰을 처참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8세기, 남아메리카 오지의 폭포 위에 사는 과라니족 학살사건을 다룬 본 영화는 희생과 또 다른 구원을 의미하는 가브리엘 신부(제러미 아이언스 분)와 폭력의 세상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지만 운명적으로 폭력을 통해 구원을 꿈꾸는 이율배반적 인물인 노예상 로드리고(로버트 드 니로 분)를 중심에 두고 펼쳐진다.

물론 영화 자체가 명작이라 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명성은 자자하다. 하지만 영화만큼 인기를 끌었던 것이 있다. 바로 배경음악인 '가브리엘의 오보에'. 가브리엘 신부가 과라니족 전사들과 만나던 순간을 표현한 본 배경음악은 모든사람이 추구하는 단 하나의 감성을 파고들며 지금까지도 강렬한 울림을 자랑하고 있다.

원래는 연주곡이었지만 1998년 사라 브라이트만이 3년에 거쳐 원작자인 엔니오 모리코네를 설득, 곡에 가사를 붙여 발표하며 더욱 유명해졌다.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그리고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넬라 판타지아'다.

영화 미션이 시사하는 현실의 생생함은 인간의 잔인함부터 후안무치, 구원, 변화 등 그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하지만 넬라 판타지아를 통해 관통되는 키워드는 '모두를 하나로 묶는 그 무언가'로 정의할 수 있다.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을 향하던 무시무시한 살의도, 목숨을 건 위기의 순간도 모두 '그 무언가'로 의미를 상실한다. 결국 영화 미션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는 바로 '이유불문,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매혹의 무기다.

넬라 판타지아를 부르는 ICT 선교사
현재 글로벌 ICT 업계의 화두는 연결과 생태계다.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이해 속속 플랫폼과 OS, 그리고 네트워크 기술이 각개전투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는 콘트롤 타워를 중심에 둔 거미줄같은 촘촘한 경계를 연속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여기에 생태계라는 개념이 더해지며 세계는 좁아지고, 넓어지고 있다.

특히 구글의 행보에 이목이 쏠린다. 프로젝트 룬과 프로젝트 타이탄을 통해 열기구와 드론으로 48억 명으로 추산되는 인터넷 오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이 낮은 인터넷 인프라를 제공하는 일에 전사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단 대의명분이 남다르다. 공익이다. "글로벌 ICT의 발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데, 왜 오지 사람들은 이러한 혜택을 보지 못하는가. 우리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이를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페이스북도,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면이 존재한다. 페이스북이 인터넷 닷 오알지를 통해 망 중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까지 감수하며 이원화된 네트워크를 꾸리고, SNS를 벗어나 플랫폼과 OS를 넘나드는 새로운 '공기'로 가닥을 잡는 이유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바로 거대한 연결의 생태계를 자신들이 주도하겠다는 뜻이다. '모두를 관통하는 그 무언가'로.

구글의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순다 피차이 수석부사장은 안드로이드M과 사물인터넷 플랫폼 브릴로, 그리고 통신수단인 위브를 공개하며 "많은 세계인들이 안드로이드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안드로이드 세상에 살고 있으니, 아직 살고있지 않은 사람들도 어서 들어와야 한다"는 뜻과 같다.

이 지점에서 18세기 제국주의 시절 선교사가 오버랩된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들이 원하는 것
서구열강의 제국주의 시절, 그들은 산업혁명의 과실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는 역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세계권력의 축이 동방에서 서방으로 넘어간 중요한 계기가 됐으며,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끔찍한 비극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당시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의 첨병이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역사적인 논쟁이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선교사들은 자국의 이익과 종교적 이익을 번갈아 따지며 마치 모래알처럼 미지의 세상으로 떠났다. 그리고 현지의 사상과 문명, 관습, 종교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그 역할을 확실하게 수행해내곤 했다. 물론 모두 그랬다고 말하면 이는 멍청한 일반론이다. 대부분이 그랬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역사의 오점이다.

여기서 현재로 돌아오면, 서방과 동방이라는 명확한 프레임도 없고 그 주체도 각각 제각각이지만, 구글과 페이스북 등 ICT 기업들이 당시의 선교사들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주체나 첨병이냐의 논쟁은 있겠지만 이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고 현재의 상황에 집중해보자. 글로벌 ICT 기업들은 연결로 원주민들을 세계의 거대한 바람으로 이끌고 생태계로 프레임을 설정해 버린다. 중심은? 당연히 판을 짜는 바로 그들이다.

결국 흐름의 방향성은 달라도 역사는 반복된다. 글로벌 ICT 기업은 사물인터넷과 생태계라는 매혹의 무기로 세계정복을 노리고 있으며, 이는 2차 ICT 제국주의를 의미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구글이 프로젝트 룬과 프로젝트 타이탄을, 페이스북이 인터넷 닷 오알지를 통해 마치 제국주의 시대처럼 상대를 강제로 교화시키고 궁극적으로 파괴의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것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포섭을 최고의 원칙에 두고 있다고 해도 최종목표는 비슷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글로벌 ICT 기업들이 오지에 인프라를 제공하며 각자의 생태계, 즉 세력권을 구축한다면 이는 곧 격렬한 투쟁의 장을 의미한다. 승자독식의 수순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생태계 전쟁'이 예고된다는 점이다.

구글의 브릴로, 애플의 홈(가제), 삼성전자의 타이젠, LG전자의 웹OS 등은 웨어러블과 스마트홈의 가능성을 치밀하게 노리며 더 많은 연결의 생태계를 추구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러한 전쟁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면, '만약 인류의 역사 그대로 ICT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고 전혀 다른 이후의 세상이 펼쳐지면 어떨까?'라는 화두를 던질 수 있다. 구글의 프로젝트 타이탄과 프로젝트 룬, 페이스북의 인터넷 닷 오알지가 오지의 인터넷 인프라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고 생태계 전쟁을 거친 후 하나의 법칙으로 존재하는 상태에서 패러다임적 요소만 유산으로 남긴다면? 승자독식의 주인공이 남을 수 있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려운 가정이지만 이 또한 인류역사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 제국주의는 사라져도 통치의 편리함과 유용성을 위해 이용한 분쟁과 반복은 남는다. 미래의 글로벌 ICT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치닫을 수 있다. 물론, 승자독식의 과정 후 최후의 1인이 남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변화의 틈에서
물론 지금까지 말한 대목은 모두 가정이고, 일반적인 대입이다. 통상적인 기사가 아닌 블로그형 기사섹션인 'IT 큐레이션'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놀라운 연결 생태계 구축에 환호하며 그 기술적 화려함에 찬사를 보내기 전, 이들의 행보가 다양한 가능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각각의 생태계 전략이 지역적 요소를 넘나드는 순간 벌어질 필연적인 파급효과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 글로벌 ICT 기업들은 사업다각화에 집중하며 정말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재미있는 점은, 애플의 전기차 프로젝트와 구글의 인터넷 오지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의 이름이 '타이탄'이라는 점이다.

우연일까? 타이탄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잊혀진 신'이다. 강력한 힘과 권위를 상징하지만 현재의 신에게 자리를 빼앗긴 오래된 신의 이름이다. 잊혀진, 이룰 수 없는 꿈을 뜻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뜻으로 지은 이름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묻는다. 치열한 변화의 틈에서 타이탄의 잊혀진 신화가 만개할 수 있을까? 글로벌 ICT 기업들이 부르는 넬라 판타지아가 비극의 선율이 아닌,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을 위한 찬가로 거듭날 수 있을까?

가브리엘 신부와 로드리고는 마지막 순간 과라니족을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싸웠다. 특히 로드리고는 스페인 군인들의 공격에 맞서 놓았던 칼을 들고 끝까지 싸웠다. 진정한 넬라 판타지아(환상속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