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서윤희(28)씨는 얼마 전 짜증나는 경험을 했다. 멀쩡하게 잘 돌아가던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어버린 것. 서울 광화문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그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버스가 언제 오는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3G 회선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다는 메시지만 뜰 뿐이었다. 멀티태스킹이 많이 되어 있어서 그런가 싶어서 멀티태스킹 앱도 모두 지워봤다. 하지만 여전히 스마트폰의 3G 접속은 원활하지 못했다.

대학생 김성준(26)씨 역시 스마트폰을 쓰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서울 혜화동 대학로 근처를 걸어가던 김씨는 여자 친구와 애틋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별안간 전화가 뚝 끊어지고 말았다. 키패드가 잘못 눌려서 끊어졌나 싶어 다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매정한 액정에는 ‘통화 실패’라는 메시지만 뜰 뿐이었다. 김씨의 스마트폰은 그 후 먹통 상태에서 오락가락했다.

스마트폰의 사용 대수와 빈도가 늘어나면서 위와 같은 황당한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일은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 지역이나 번화가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서울 시내의 경우 광화문, 강남역, 삼성역 등지에서 이러한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전파가 터지지 않는 시골 오지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바로 스마트폰 데이터 용량의 과부하 때문에 일어난 속도 저하와 콜 드롭(Call Drop, 통화가 갑자기 끊어지거나 아예 통화가 안 되는 것) 현상이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폭증한 데이터 이용량을 각 지역 기지국에 할당된 주파수가 감당하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다. 이는 사용 가능한 이동통신 주파수가 거의 바닥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갑부’ SKT ‘서민’ KT ‘빈민’ LGU

현재 이동통신 3사에 할당된 주파수는 총 3가지다. 2G 일반 전화와 오는 7월부터 서비스가 시작되는 차세대 통신망 ‘롱텀에볼루션(LTE)’에 사용되는 800㎒~900㎒ 주파수, PCS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1.8㎓ 주파수, 그리고 스마트폰 3G 데이터에 사용되는 2.1㎓ 주파수다.

통신업계는 최근 당면한 주파수 고갈 문제와 스마트폰 데이터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동 기지국 설치 등 임시방편 격의 대책만으로는 근본적 난관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중 SK텔레콤은 일반전화 및 LTE용 800㎒ 주파수 30㎒ 대역폭과 스마트폰용 2.1㎓ 주파수 60㎒ 대역폭을 보유하고 있어 통신 3사 중 주파수 보유가 제일 많은 상황이다.

KT는 LTE용 900㎒ 주파수 20㎒ 대역폭, PCS용 1.8㎓ 주파수 20㎒ 대역폭, 스마트폰용 2.1㎓ 40㎒ 대역폭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적은 주파수를 보유하고 있는 LG유플러스는 LTE용 800㎒ 주파수 20㎒ 대역폭과 PCS용 1.8㎓ 주파수 20㎒ 대역폭을 보유한 것이 전부다.

스마트폰 전용 주파수로만 따져봤을 때 SK텔레콤이 KT에 비해 20㎒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주파수 대역폭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콜 드롭 현상의 대부분이 KT 사용자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KT의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주파수의 획득이 절실한 상황이다. KT는 “현재의 40MHz 대역폭으로는 이미 스마트폰 가입자의 통화량을 감당하기 힘들어 각종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와중에 스마트폰 3G 데이터를 위한 2.1㎓ 주파수의 20㎒ 대역폭이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KT의 귀가 솔깃해졌다. KT는 가장 먼저 이 대역폭을 차지하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KT로서는 선두 반격에 나설 절호의 찬스가 생긴 셈이다.

사연 많은 2.1㎓ 주파수, 질곡의 10년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2.1㎓ 주파수는 ‘스마트폰 최적의 주파수’이자 국내 이동통신업계의 역사를 대변하는 주파수다. 그만큼 이 주파수에 얽힌 사연이 많다. 이야기의 시작은 2000년부터 시작된다.

지난 2000년 LG유플러스의 전신인 LG텔레콤은 동기식 3세대(3G) 서비스 사업권과 2.1㎓ 주파수 사용권을 획득했다. 다른 두 통신사도 서비스 사업권과 2.1㎓ 주파수 사용권을 나란히 할당받았다.

하지만 LG텔레콤은 동기식 3G 서비스가 사업성이 없고, 이 서비스에 더 이상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지난 2006년 3G 서비스 사업권을 포기했다. 할당받은 2.1㎓ 주파수 40㎒ 대역폭 역시 정부로 반납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LG에게는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일이었다.

LG텔레콤이 주파수를 반납한 이후 2.1㎓ 주파수는 한동안 통신 3사의 관심 밖에 있었다. 적어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SK텔레콤과 KT는 이미 확보했던 동기식 3G 주파수(2.1㎓ 주파수)를 이용해 3G 전국망 서비스에 나섰다. 3G 사용자는 이전보다 늘어났지만 주파수가 부족한 상황은 오지 않았다.

2010년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시장에는 회오리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4세대 LTE 통신시대 준비를 위해 SK텔레콤이 반납할 예정인 800㎒, 900㎒ 주파수 대역이 급작스럽게 황금 주파수로 급부상했다.

당시 KT와 LG유플러스는 오랜 숙원이던 800㎒, 900㎒ 주파수 경매에 나섰다. 그 때 SK텔레콤은 LG텔레콤이 반납했던 2.1㎓ 주파수 40㎒ 폭 중 20㎒ 폭의 추가 할당을 정부에 요청했다. 정부는 SK텔레콤의 요청을 받아들여 20㎒ 폭을 추가로 배정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2010년 4월 KT는 900㎒, SK텔레콤은 2.1㎓, LG유플러스는 900㎒ 주파수를 획득했다. SK텔레콤이 2.1㎓ 주파수를 예상보다 쉽게 가져올 수 있었던 데에는 경매 당시 KT와 LG유플러스가 2.1㎓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지난해 가을부터 불어 닥치기 시작했다. 각 통신사가 스마트폰 데이터에 대해 무제한 요금제를 경쟁적으로 실시하면서 데이터 트래픽에 대한 과부하 우려가 제기됐다. 주파수는 한정되어 있지만 이 주파수를 활용하려는 데이터의 수요는 폭증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스마트폰 데이터 트래픽 과부하에 대해 통신사 측의 자체 제어 대안이 필요하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지금의 이러한 ‘데이터 혼란’이 올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결국 올해 초부터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최근의 스마트폰 먹통 사태의 원흉으로 주파수의 고갈과 양극화 문제가 지목됐다. 과부하가 일어나는 곳마다 이동 기지국을 놓는 방법도 써 봤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이었다.

주파수 고갈 추가대책 나와야

지난해 11월 전파법 시행령 개정안이 일부 개정되면서 올해부터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동통신용 주파수를 통신 사업자에 경매로 판매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국내 이동통신 전파는 사업자의 사업 계획을 정부가 심사한 뒤, 통과된 사업자에 주파수를 할당하는 방식으로 분배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민간 사업자 사이의 자율 경매를 유도해 가장 높은 값을 써낸 사업자에 할당하게 된다.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2.1㎓ 주파수의 경매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부족한 양의 주파수를 보유하고 있는 KT와 LG유플러스는 “통신시장의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20㎒ 대역폭의 2.1㎓ 주파의 주인이 바뀌면 통신업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가장 큰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자는 단연 KT다. KT가 남은 20㎒의 폭을 가져갈 경우 KT가 보유한 2.1㎓ 주파수의 대역폭은 60㎒로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SK텔레콤과 더불어 가장 넓은 대역폭을 보유하게 된다.

여기에 전국 4만여 개소에 설치된 와이파이 존의 위력까지 합치자면 KT의 무선 데이터 환경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KT가 생각하고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다.
LG유플러스의 경우 2.1㎓ 주파수 획득이 가장 간절한 상황이다. 다른 사업자는 작게나마 이 주파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LG유플러스에게는 아예 없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현재 다른 사업자들과 달리 1.8㎓로 스마트폰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통신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원래 LG의 주파수였으니 다시 돌려달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미 5년 전 제 손으로 버린 주파수였기 때문이다.

만약 LG유플러스가 주파수 획득 경쟁에서 탈락할 경우 사면초가에 몰릴 수도 있다. 통신시장이 3사 구도에서 양강 구도로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이를 최악의 시나리오로 규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주파수 추가 획득 경쟁과는 별도로 주파수 고갈에 따른 현황 파악과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업계 제안으로 올 초에 다시 만들어진 ‘모바일 광대역 주파수 협의회’는 현재 1단계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 협의회는 지난해 중반 무렵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로 데이터 이용량이 4배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10~15배나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연구에 재착수한 것이다. 협의회 조사 결과 현재 지역별로 10% 정도가 원활한 3G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