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대한상공회의소

엔저에 따른 일본기업의 공세로 ‘지구촌 수출 한일전’에서 우리기업들이 밀리고 있는 양상이다. “철강, 석유화학, 기계, 음식료, 자동차․부품, 조선업종의 기업들은 원엔환율이 이미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고 입을 모은다.

선박용 엔진부품을 만들어 일본에 수출중인 전북의 한 기업은 “엔저이후, 일본 조선사들이 우리보다 자국의 협력업체로 거래선을 갈아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 1kg당 2달러 가격을 쳐 주었지만 몇 달 전에는 1.7달러, 지금은 1.3달러까지 가격 인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30억원 일본수출 규모가 14억원까지 뚝 떨어졌다고 하연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기계를 만들어 온 충남의 한 기업도 저렴해진 일본산 기계와 경쟁하느라 힘겹긴 매한가지다. 중국시장에서 대형장비 입찰 때 일본업체의 가격공세로 입찰에서 밀렸다. 수출물량도 수출컨테이너로 20% 가량 줄었다. 회사 관계자는 “바이어들에게 일본처럼 가격을 깎아주는 수밖에 없는데, 고비용저효율 요인은 없는지 협력업체 납품단가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6일 최근 일본에 수출중이거나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합을 벌이고 있는 수출기업 300여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엔저로 인한 위축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대한상의가 ‘엔저에 따른 수출경쟁력 전망과 대응과제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엔저로 인해 수출에 피해를 입었는가’라는 질문에 기업들 절반이상(55.7%)이 ‘수출에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특히, ‘거래 시 감내할 수 있는 엔화환율’을 묻는 질문에 응답기업의 평균은 ‘924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4월 평균 원엔환율 908원을 훨씬 상회한 수치다.

업종별로는 철강이 963원으로 가장 높았고 석유화학(956원), 기계(953원), 음식료(943원), 자동차‧부품(935원), 조선‧기자재(922원), 반도체(918원)가 지난달 평균치(908원)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정보통신‧가전(870원)과 섬유(850원) 업종은 아직 여력이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용 화학제품을 만들어 수출중인 광주의 한 기업은 “지금 엔저로 일본에는 거래처 유지를 위해 마진 없이 팔고 있고 다른 시장에서는 거래처를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라며 “20% 가량의 수출 감소를 겪고 내린 결론은 5% 가격인하 정책”이라고 말했다.

손해를 보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팔아야 하는 중견기업도 있다.

한 금속기업 관계자는 “최근 유럽시장에서 일본이 가격으로 치고 들어온 적이 있다”며 “하지만 한번 점유율을 빼앗기면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물량을 줄이지 않고 팔수록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엔저현상이 일본기업의 가격공세로 이어질 경우 가장 큰 물량타격을 받는 업종은 ‘음식료’ 부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먹거리 가격의 미세한 변화에도 수출물량이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출경합중인 일본제품이 10%가격을 낮춘다면, 자사의 해당 수출물량은 몇 %나 준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11.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종별로, ‘음식료’가 18.7%로 가장 높았고 ‘철강’(15.1%), ‘조선‧기자재’(13.3%), ‘자동차‧부품’(12.4%), ‘유화’(10.6%), ‘기계’(9.2%), ‘정보통신‧가전’(9.2%), ‘섬유’(9.1%), ‘반도체’(8.1%) 순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유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한 중견기업은 “미국 현지에서 일본 야쿠르트와 경쟁하는데 많이 밀리고 있다”며 “일본 현지에서의 경쟁은 더 어려워 수출물량이 1/3 토막 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엔저현상이 단기적 현상이 아닌 심화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적극적인 기업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조동철 KDI 수석이코노미스트(대한상의 자문위원)는 “단기간 내에 반전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는 “수출침체와 더불어 엔저는 시차를 두며 추가 하락할 수 있고, 유로화 역시 약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전망하며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책 모색을 주문했다.

기업의 대응은 그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엔저현상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했는가’를 묻는 질문에 우리 기업 10곳 중 7곳은 ‘마련하지 못하였다’고 응답했다. 반면, ‘마련했다’는 12.0%, ‘계획 중이다’는 18.3%에 그쳤다.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이유로는, ‘대외경제환경 불확실성’이 60.8%로 가장 높게 꼽혔고, ‘일시적 현상이라 생각’(16.7%), ‘해외시장 정보 부족’(15.3%), ‘전문인력 확보 어려움’(9.1%) 순으로 조사됐다.

전수봉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아베노믹스 초기 우려했던 근린궁핍화정책(beggar my neighbor policy)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과거 엔고시대를 이겨낸 일본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원고시대를 헤쳐 나가기위해 사업구조를 효율화하고 제품의 부가가치 향상을 통한 경쟁력 제고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엔저시대에 정부가 수출기업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해야할 정책과제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기업의 절반(52.3%)이 ‘환 위험관리 지원’을 꼽았다. 다음으로 ‘수출기업 금융지원 강화’(44.0%), ‘R&D 투자지원 확대’(33.0%), ‘비용절감 지원’(20.7%), ‘해외 전시회‧마케팅지원 강화’(18.0%), ‘법인실효세율 유지’(7.0%), ‘TPP 등 경제협력 추진’(5.0%) 등을 지적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4월27일부터 5월6일까지 전국 수출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전화와 이메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