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19일 미디어 브리핑을 통해 다양한 담론을 쏟아냈다. 일단 관심을 집중시켰던 국내 쇼핑몰 사업 진출여부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 눈길을 끈다. 티몰 한국관을 오픈하며 그 반대급부로 국내 쇼핑몰 사업을 타진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현 상황에서 이러한 일은 당분간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과의 협력을 시사하는 발언도 나왔고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가능성도 열어 두었다. “전통기업의 유통과정을 도와주는 일에 관심이 많다”는 다소 훈훈한 말도 있었다. 평소 젊고 약동적인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사람답게 인재를 양성하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됐다. 코리안 페이를 말하며 알리페이의 DNA를 바탕으로 핀테크 경쟁력을 발휘하겠다는 포부도 등장했다.

▲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마윈, 무엇을 원하나

마윈 회장의 발언은 향후 알리바바의 국내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시그널이다. 일단 국내 쇼핑몰 사업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천명을 한 이상 당장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 업계를 뒤덮은 공포는 일정부분 덜어질 전망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알리바바가 국내에서 쇼핑몰 사업을 실시할 경우 박리다매와 강력한 마케팅 전략 등으로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는 오픈마켓 형 소셜커머스를 집어삼키고 이베이가 장악한 오픈마켓 시장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 지점에서 만약 아마존이 진출하고 JD닷컴같은 중국의 후속타자들이 속속 진출하면 토종 사업자는 아예 말살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하지만 국내 쇼핑몰 사업에 진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냥 알리바바를 ‘좋은친구’로만 생각하는 우를 범하면 곤란하다. 티몰에 한국관을 만들어 주고 국내 브랜드의 중국시장 진출을 도와주는 한편, 기업의 상생을 원한다고 말하는 마윈 회장의 존재가 또 하나의 기회는 분명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알리바바는 기업이다. 아무 이유없이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 기업가 정신과 매직으로 통용되는 그의 놀라운 리더십에 감탄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도 기업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알리바바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중국 역직구 시장을 잡아내는 것이다. 이는 국내 쇼핑몰 사업보다 역직구 시장을 더 매력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국내 쇼핑몰 업체와 상생하고 그들을 도와주기 위한 철학적인 이유 외에도 갈수록 몸집이 커지는 13억 중국 역직구 시장을 알리바바의 이름으로 통합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쇼핑몰인 인터파크에 따르면 자사에 접속하는 외국인 쇼핑객 중 무려 49.1%가 중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중 FTA의 훈풍을 타고 이러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으며 다소 괴이한 흐름을 타고 있지만 액티브 엑스를 폐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전자상거래연구센터에 따르면 중국 역직구 시장은 2013년 13조 원에서 2016년에는 무려 106조 원, 2018년에는 40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알리바바가 중국 역직구 시장을 정면으로 노리고 있음을 보이는 증거는 상당히 많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천 송도 대규모 물류센터는 실체가 불분명하기에 차치한다고 해도, 이마트와 롯데마트와의 협력이 단적인 사례다.

지난 2월과 3월 사이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티몰에 전격 입점했다. 그리고 국내를 대표하는 유통의 강자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티몰 입점은 결국 알리바바가 주도하는 역직구 시장 휘어잡기의 증거다. 이들을 통해 중국시장을 열어주며, 자연스럽게 역직구 시장도 장악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마트와 롯데마트 입장에서 티몰에 입점해 중국시장을 진출하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강점이다. 이들은 ‘누가 처음 티몰에 입점했는가’를 두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현대로지스틱스, CJ대한통운과 같은 국내 물류업계와의 협력도 이와 결을 함께한다. 특히 현대로지스틱스는 사활을 걸었다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알리바바와의 연결점을 전사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인천공항의 국제특송장 규모를 2배로 확대하고 경기 김포, 군포, 오산에 역직구 물량만 전담하는 물류센터를 새로 구축할 정도다. 심지어 관련 프로세스를 전면 재정비하고 물류 테스트까지 완벽하게 준비했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다양한 시사점을 던진다. 먼저 국내시장의 포화와 성장동력의 상실이 파도처럼 밀려온 상태에서 기업들이 중국 역직구 시장에 관심을 보였고, 이에 알리바바가 손을 내미는 알고리즘이 포착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알리바바는 “우리는 기업들을 육성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중국시장에 안내하고, 사실상 플랫폼 사업자에 충실하며 나름의 경쟁력을 잡아가는 셈이다. 중국 역직구 시장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결론적으로 알리바바는 중국 역직구 시장을 잡아내기 위해 국내기업을 중국시장으로 안내하고, 자신들은 해당 시장을 규정하는 강력한 플랫폼 사업자로 남길 원한다고 볼 수 있다. 윈윈이다. 국내기업들에게는 기회의 문이 열렸고, 알리바바는 그 과정에서 중국 역직구 시장을 틀어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상당히 묘한 분위기가 포착된다. 마윈 회장은 19일 미디어 브리핑에서 “알리바바의 신수종 사업은 빅데이터와 클라우드”라고 밝혔다. 낯설지 않다. 자연스럽게 아마존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아마존은 이미 국내에 진출해 있다. 지난해 10월 아마존 서비스 코리아(Amazon Services Korea LLD)를 설립했고 3월에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아마존이 글로벌 클라우드 강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색적인 행보는 아니다. 다만 국내 전자 상거래 업계에는 진출설이 솔솔 나오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진출한 상태가 아니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알리바바와 비슷하다. 아니, 알리바바가 아마존과 비슷하다.

이러한 현상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일단 국내 전자 상거래 시장이 아마존이나 알리바바같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다. 최근 아마존이 국내 전자 상거래 시장에 진입한다는 말이 파다했을 당시 “일반적인 전자 상거래가 아닌, 국내의 브랜드를 해외에 소개하는 역직구 사업을 실시하려 한다”는 반론이 고개를 들었던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국내 전자 상거래 시장은 소비력 차원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구미를 자극하지 못하지만, 스타트업 경쟁력에 마윈 회장이 투자할 가능성을 열어둔 대목으로 미루어 보아 ‘기술 잠재력은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클라우드와 빅데이터는 사물인터넷 시대의 필수 아이템이며 특히 유통의 경우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중요한 경쟁력이다. 결국 기술력은 충분히 흥미를 끌고 있다는 결론이다.

여기에 국내 전자 상거래 시장이 ICT 발전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지점은 국내가 테스트 베드로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국내에 진출한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만 역직구 시장을 잡아내는 일에는 아마존과 알리바바의 생각이 같을 확률이 높다. 이는 국내의 콘텐츠, 즉 브랜드의 경쟁력이 글로벌 무대에서도 확실하게 통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새로운 가능성을 얼마든지 창출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역직구 시장의 플랫폼이 알리바바와 아마존이라는 점은 장기적인 성장동력적 측면에서 불안한 대목이다.

수문을 막아 버리면 물은 흐르지 못한다. 그리고 흐르지 못하는 물은 필연적으로 썪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