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

장수기업. 기업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할 것 같다. 아니 우리가 가진 장수기업이 거의 없어서 부러운 단어일 수도 있겠다. 장수기업의 정의는 사전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일본에서는 전에 하던 사람의 뒤를 이어 다음 세대가 그 일을 이어받아 하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두 세대라도 30~40년밖에 차이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기본적으로 100년 이상 생존한 기업을 장수기업으로 인정해주는 추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장수기업은 1400여년 전인 578년에 창업한 일본 콘고구미(金剛組)다.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도래인(渡來人)이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문화재 복원과 수리가 전문이며, 종업원 130여명을 둔 작은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처럼 1000년이 넘은 장수기업이 세계에 8곳 있는데 그 가운데 7개가 일본, 나머지 하나가 독일에 있다(한국은행 자료).

세계적으로 보면 창업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은 41개국에 5586개가 있는데 대부분 역사가 긴 아시아와 유럽에 포진해 있고, 전체의 56.3%인 3146개를 갖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는 200년 이상은 없고, 100년 이상은 단 3개다. 지금의 종로 4가쯤인 배오개 다리 근처에서 ‘박승직상점’(1896년)으로 시작한 ‘두산’과 ‘가스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1897년)’,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 간장기업을 자임하는 ‘몽고식품(1905년)’이다. 서울 동대문 광장시장의 상가 임대업체 ‘광장’이라는 회사도 1911년 창업해 올해로 104년째가 되지만 제조업으로는 언급한 3개뿐이다.

참고로 1960년대 100대 기업 가운데 지금까지 100대 기업 안에 들어있는 기업은 삼성,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10개가 채 안 된다. 그만큼 기업을 오래 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지금 기업들의 상당수가 이대로 간다고 가정하면 50년 뒤에는 300~400여개 기업이 ‘100년 기업’으로 등록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여기까지는 소시민들이 넘보기 어려운 큰 기업들 이야기니까 그렇다 치고, 친근감 있는 자영업에서는 100년 이상 된 가게를 찾아볼 수 있을까.

일단 공식 기록상으로는 우리나라에는 없다. 키워드로 ‘장수음식점’을 치면 샅샅이 뒤져주는 강력한 검색엔진조차도 전북 장수군에 있는 이런저런 음식점 이름만 나올 뿐이다. 일본은 양갱 하나로만 300년 이상 이어온 가게가 있고, 라멘(라면)전문점도 3대째 이어오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다소나마 업력(業歷)이 긴 가게들로 위안을 삼자면, 우리나라엔 1945년 해방둥이 국수집인 ‘명동할머니국수’, 1947년 문을 연 ‘명동교자‘, 역시 명동에 있는 설렁탕 전문점 ‘미성옥’(1950년) 등이 있고, 지방에서는 부산 중앙동의 ‘백구당’이 1959년에 창업해 3대째 이어오고 있다. 물론 이들 가게는 가업형이고, 기업형 음식업으로는 1979년에 출발한 프랜차이즈 기업 롯데리아가 37년째다.

장수기업이라는 명칭은 어쩌면 신만이 내릴 수 있는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규모가 크든 작든 사업을 오래 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인간’(^^)이 하는 자영업의 업력을 보면 “사업이 참 어렵구나”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최근 필자가 41개 업종의 매출을 분석한 <대한민국 창업보물지도>라는 책을 쓰면서 자영업의 사업자등록기간을 기준으로 ㈜나이스평가정보의 카드 매출정보 등 빅데이터를 가지고 생존기간을 분석해봤다.

▲ 지난 3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프랜차이즈창업박람회 모습. 사진=박재성 기자

그 결과 의료업종을 제외한 자영업의 평균수명은 3.7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업만 따로 보니까 3.3년이었고, 서비스업은 2.8년밖에 되지 않았다. 음식업에서는 생선 횟집이 5.2년으로 가장 길었고, 한식이 4.8년, 냉면 전문점이 4.2년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에 업력이 가장 짧은 업종은 커피 전문점이었는데 1.5년에 불과하다. 커피 전문점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2010년 이후 점포 수가 급속하게 늘어난 것도 생명주기가 짧은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로 커피 전문점은 큰 기업 브랜드가 1만개 정도이고, 다방까지 합치면 약 3만5000개에 이른다.

약간 비켜서 가 보자. 커피 전문점을 보면 생각나는 게 있다. 요즘에야 외국 브랜드가 많아서 영어 간판이 많지만 이전까지 가장 흔한 다방 이름은 ‘약속다방’이었다. 이 글을 쓰다가 궁금해서 서울 인근을 중심으로 검색한 결과 93개가 뜨고, 그 가운데는 아직도 서울의 한복판, 중구 중림동에도 약속다방이 있다.

왜 찻집 이름으로 ‘약속’이 많을까. 그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찻집은 ‘만남의 장소’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찻집은 약속 중심이라기보다 ‘소통의 장소’로 더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는 ‘생각의 장소’로 더욱 진화하지 않을까 싶다. 뜬금없이 찻집 이야기를 꺼낸 것은 생존 기간이 짧은 업종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찻집에 대한 욕망에 따라 콘셉트와 상권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어서다.

다시 업력으로 돌아가 보자. 소매업으로는 여성의류 전문점이 8.2년으로 가장 길었고, 주유소가 6.7년, 꽃집이 6.6년이다. 반면에 편의점은 2.3년으로 단명한 것으로 분석됐다. 편의점은 전국에 2만6000개가 있는데 우리나라 읍·면·동이 약 3500여개니까 한 동당 6개가 넘는다는 계산이니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럼에도 2014년에 가장 많이 창업한 업종이 편의점이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는 한강과 벽치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반경 1㎞ 이내에 편의점이 6개나 있다. 망하고 나가면 어김없이 편의점이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을 집에서 먹는지 셔터가 내려져 있다.

상권에서 가장 불리한 입지는 산, 강, 다리, 하천을 경계로 한 입지라는 건 상식이다. 본사가 이런 기본을 모르는 바는 아닐 텐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서비스업을 보자. 의료업종을 빼고는 미용실이 가장 긴 평균 4.8년으로 분석됐고, 노래방과 피부관리실이 3년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지만 비교적 오래 하는 업종으로 분류됐다.

요즘 인기 있는 네일케어숍은 2년으로 상당히 짧았는데 최근 많이 창업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즈> 기사에서 뉴욕에만 7000개가 넘는 네일숍이 있다니 앞으로 우리나라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그밖에 서비스업에서는 여성들에게 인기 업종인 어린이 영어학원과 은퇴자들이 관심을 갖는 세탁소는 2.5년 정도로 비교적 짧았다.

규모와 업종을 불문하고 업력이 일천한 우리나라는 장수기업이 많은 나라에서 배워야 할 점들이 참 많다. 해외 장수기업들의 몇 가지 장수전략을 정리해본다.

첫째, 본업을 중시했다. 이 말은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팠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 가지 상품으로만 줄기차게 하라는 말은 아니고 문어발식 확장을 하지 않고 주력사업과 융합 가능한 인접사업에 많이 투자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다.

둘째, 신용을 생명처럼 중시했다. 최근 중년여성들을 화나게 만든 ‘가짜 백수오’ 파동처럼 고객을 우롱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셋째, 투철한 장인정신이다. 장인정신 이야기가 나오니까 과거 수출 컨설팅을 해주면서 경험했던 기억이 새롭다. 의류를 수출하는 우리나라 회사였는데 일본 바이어를 초청해 상담하던 중 일본인이 양복 호주머니를 뒤집어보더니 그냥 나가버렸다. ‘오바로꾸’가 엉망이어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완벽하게 처리하는 장인정신이 그래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곤충 전략’이다. 일본에서는 기업을 키우는 전략을 ‘코끼리 전략’이라고 하고, 축소전략을 ‘곤충 전략’이라고 한다. 코끼리는 몸집을 키웠지만 인도와 아프리카에만 존재하는 희귀동물이 됐고, 곤충은 몸집을 작게 한 덕분에 지구상의 4분의 3을 차지하면서 육해공(陸海空)에 건재하고 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몸집 불리기보다 내실 있게 가져가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다.

업종은 다르지만 자영업에서도 장수기업이 보여준 생존전략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 기업은 크든 작든 경영 매커니즘이 비슷하기에 자영업에서도 그 기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점이 어느 정도 잘 되면 프랜차이즈로 전환해서 큰돈을 벌어보려고 하지만 프랜차이즈로 전환한 순간 그 맛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코끼리처럼 멸종 위기를 맞는 경우가 많다.

가끔 유명 음식 프랜차이즈들이 손님을 홀대해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원산지를 속여 이익을 높여보려고 하지만 결국 부메랑이 되어 오히려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은 바둑기사들에게만 적용되는 전략이 아닌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업에 충실하고 고객을 속이지 않는 도덕성, 그리고 더불어 함께 가려는 진정성이 최고의 장수조건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