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광인 한 남자가 영화 <아폴로 13>의 비디오테이프를 반납하기 위해 단골 대여점에 들렀다. 반납일을 놓친 지 6주쯤 지난 후였다. 연체료로 40달러를 물게 된 남자는 너무 과하다고 항의했지만 결국엔 돈을 내놓고 씩씩대며 가게를 나서야 했다. 아내에게 말했다가 잔소리를 들을 일이 끔찍했다. 속이 상한 채 헬스클럽으로 향하는 길,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헬스클럽처럼 한 달에 30~40 달러의 월정액을 내고 비디오테이프들을 빌려 볼 수 있다면?

미국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Netflix)’는 그렇게 탄생했다. 영화광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1960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12살에 가족들과 미국 대통령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방문했다고 할 정도로 명망 높은 법률가 집안 출생이었다. 보든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미국 평화 봉사단 소속으로 스위스의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를 마치고 취업해 디버깅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을 했다. 1991년 첫 번째 회사인 퓨어 소프트웨어를 설립했으나, 아트리아 소프트웨어사에 피인수 후 1998년 마크 랜돌프와 함께 넷플릭스를 설립한다. 비디오와 DVD를 택배나 우편으로 배달하는 사업이었다. 월정액을 내면 마음껏 비디오를 빌려 볼 수 있고 반납을 해야 다른 비디오를 배달해주는 방식이라 회수율도 높았다. 모든 것의 시작은 연체료 40달러 때문이었다.

그에게 연체료를 물렸던 거대 비디오대여점 체인인 블록버스터는 그의 사업을 대놓고 폄하했다. 미국의 느린 우편 시스템과 온라인 주문, 정액제라는 개념도 낯설기 때문에 금방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대는 빠르게 변신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영화를 보기 위해 비디오테이프나 DVD를 빌리러 나가지 않는다. TV는 ‘본방 사수’하지 않아도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다. 블록버스터는 도산했지만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한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 회원 수만 5300만명이 넘고 그 숫자도 가파르게 상승세에 있다. 창업 당시 500만달러였던 매출은 2006년에는 10억달러,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작으로 드라마 제작까지 시작한 2013년에 44억달러, 지난해에는 무려 55억달러로 빠르게 성장했다.

넷플릭스가 이르면 내년 6월 국내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국내 콘텐츠 시장이 벌써부터 초긴장 상태다. 한 달에 적게는 7.99달러를 내면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인기 있는 콘텐츠 플랫폼인데다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명품 드라마를 만드는 콘텐츠 생산자다. 초고화질(UHD) 콘텐츠를 가장 많이 보유했고 기존 유료방송의 절반 요금으로 제공해 미국 케이블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헤이스팅스 대표는 넷플릭스가 이처럼 성공을 거둔 것은 온라인 추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넷플릭스는 장르별로 분류한 영화 10만 개에 대한 2000만 건의 고객 영화평점을 활용해 영화 추천 엔진 ‘시네매치(Cinematch)’를 개발했다. 회원의 사이트 이용 패턴, 콘텐츠 대여 이력, 시청 후 부여한 평점 등을 분석해 개인 맞춤형으로 영화를 추천하고 DVD 재고 상황도 최적화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스트리밍 사업을 확대할 때도 다른 업체와는 달랐다. 편당 시청료를 받거나 광고에 기반하기보다 정액 요금 결제하도록 했다. 모바일에서도 광고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고화질의 방송을 보려는 사람들이 회원이 됐다. 회원들은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영화를 추천받고 시청하면서 더욱 만족하게 됐다. 모바일에서 시작한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TV, 컴퓨터, 태블릿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직원은 최대한 오랜 기간을 지켜보고 채용했지만 해고는 빠르게 결정했다. 우수한 인재는 최고로 대우했고 그들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거침없이 쳐냈다. 직원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신 탁월한 능력의 동료들이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게 했다. 헤이스팅스는 그것이 진정한 관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비디오 대여업을 시작한다니 너무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미 거대 기업들이 선점한 시장이라며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가 드라마를 만들기 시작하자 할리우드가 떨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간다니 전 세계 방송사들이 앓고 있다. 막강한 사내 문화를 바탕으로 최고 수준의 인력들이 ‘TV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최고의 팀을 가진 수장이라기보다 아직도 세상 모든 골리앗과 마주할 용기 있는 다윗들의 지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