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30일 이창규 SK네트웍스 사장이 브라질 철광석기업 MMX사가 소속된 EBX그룹 아이크 바티스타 회장과 7억달러 규모의 투자계약을 체결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자원개발 기업이며 철강회사다. 포스코나 현대제철소와 다른 점은 제철소가 없는 철강사라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신훙국서 철광석을 개발, 중국서 쇳물을 뽑는 ‘버추얼 철강’이기 때문이다.

철광석 등 자원 분야 과감한 투자…신흥시장 트렌드 주도 예고

종합상사 SK네트웍스는 상생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고객과의 동반성장을 꾀하며 성장의 방정식을 다시 쓰고 있다. 낡은 옷을 갈아입듯, 비즈니스 모델을 끊임없이 새로 쓰며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연 이 종합상사의 자원개발, 의류 브랜드 사업 등 새로운 도전에 주목했다. <편집자 주>

삼바의 나라로 널리 알려진 브라질 중서부의 ‘세라도’. ‘문을 걸어 잠근 대지’라는 뜻을 지닌 이 지방의 농민들은 늘 가난했다. 농작물을 재배할 토지는 광활하고 비옥했으나, 이들이 재배한 곡물의 판로는 부실했다. 주머니에서 먼지만 풀풀 나는 이들은 씨앗을 살 돈도 부족했다.

브라질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난 것은 세계 농업 분야를 주름잡는 ‘곡물 메이저’들의 도움이 컸다. 붕게, 드레퓌스, 카길을 비롯한 곡물 메이저사가 이 지역 농민들을 대상으로 제공한 ‘패키지 융자’는 빈털터리 농민들에게는 가뭄 끝에 내리는 ‘한 줄기 단비’격이었다.

곡물 메이저들은 자금 문제도 해결해 줬고, 판로도 제공했다. 이창규(55) SK네트웍스 대표이사는 이러한 ‘상생(相生)’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종합상사의 미래를 찾는다. 고객들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때맞춰 내리는 비와 같은 기업이 되고 싶다는 것이 이 사장의 바람.

그가 맹자 <진심장구>편에 등장하는 사자성어 ‘시우지화(時雨之化)’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배경이다. 봄비는 만물의 생장을 돕고, 나그네들의 갈증을 씻어주는 이로운 자연현상이다. 강물에 섞여든 봄비는 늘 낮은 곳으로 향하며, 주변과 다투지 않는다.

SK네트웍스의 신 비즈니스 모델도 이러한 상생의 모델을 지향한다. 자원비즈니스는 이창규 대표의 이러한 윈윈 경영철학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SK네트웍스는 브라질에서 철광석을 들여와 중국의 철강업체들을 상대로 판매하는 버추얼 철강회사다.

이 대표는 자사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국 업체들이 만든 철강 제품의 판로도 알선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브라질의 철광석 업체인 MMX의 지분 14.6%를 인수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브라질에서 매년 들여오는 철광석이 900만t. 캐나다에서 들여오는 100만t을 더하면, 연간 국내 소비 물량의 18%가량을 확보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

제주도 전통 초가 모델로 설계된 포도호텔


자원 비즈 담당하는 전문가만 40여명

이 대표는 철광석의 안정적인 수급을 밑천삼아 수익 기반을 넓히고,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도 종합상사, 자원 비즈니스 등으로 활발히 넓혀나간다는 계획이다. 고객사들의 성공을 도와줌으로써 스스로도 성장한다는 그의 이러한 야심찬 도전의 무기가 ‘버추얼(virtual) 철강’.

SK네트웍스는 수출입 업무에만 종사한다는 통념과는 달리, 종합상사이자 자원개발 기업이다. 또 철강회사이기도 하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 포스코나 당진제철소 등과 차이를 꼽는다면, 제철소가 없는 철강회사라는 점. 철강회사라면 으레 떠올리는 풍경화가 이 회사에는 없다.

굴지의 철강회사인 포스코(POSCO)나 광양제철소, 당진제철소 등에 가면 익숙한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시뻘건 쇳물, 이 쇳물이 흐르는 고로다. 또 하얀 안전모를 쓴 채 로봇처럼 걸어다니는 임직원들도 단골 메뉴다. 하지만 SK네트웍스에서는 시뻘건 ‘쇳물’이나 둔중한 ‘고로’를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렇다. 브라질의 철광석 생산업자에게 원재료를 조달해 넘기면, 중국의 철강업체들이 철강제품을 만든다. 조만간 중국 업체들이 만든 철강제품의 마케팅까지 담당할 예정이다. 중세사회 봉건 영주가 돈을 대 운영되던 ‘길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이폰, 아이패드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애플이 제조부문을 아웃소싱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애플은 부품은 삼성이나 LG전자에서 조달하고, 조립은 중국의 팍스콘에 맡긴다.

SK네트웍스의 핵심 경쟁력은 이러한 무형의 지적 자산. 제철소가 없는 철강회사이지만 원자재 개발. 확보, 운송, 완제품 가공, 유통, 거래 등 생산 활동을 제외한 전 과정을 담당한다. 이러한 자원 비즈니스를 뒷받침하는 이 회사의 자원 전문가들만 국내 최대 규모인 40여 명.

이들이 참가하고 있는 자원개발 프로젝트도 23개에 달한다. SK네트웍스는 철광석과 석탄을 비롯한 자원개발 사업 공략의 고삐를 바짝 죄며 활동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원자재 생산업자, 철강 업체들의 상생을 도우며 스스로도 성장하는 것이 목표.

고객사들의 성장을 돕는 것이 결국은 스스로도 성장하는 상생의 길이라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기도 하다. 물론 자원 비즈니스에 진출한 것이 SK네트웍스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회사의 자원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 수입 업무를 처리하거나, 원자재 가격의 아비트리지를 노리는 일부 종합상사들과는 격차가 있다. 자원 조달,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폭넓은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이 대표가 자원 개발과 더불어 공을 들이는 또 다른 분야가 ‘의류 사업’. 중국의 의류시장에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브랜드가 이 회사의 ‘오즈 세컨’이다.
지난 2009년 항주, 상해를 비롯한 중국의 부유한 도시에 진출한 오즈 세컨은 매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캘빈 클라인, 버벌리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성용 의류 브랜드로 성장했다.

SK네트웍스의 여성용 의류 브랜드 ‘오즈세컨’의 중국서의 돌풍, 지난해 10월 문을 연 선양의 지상24층 지하2층 매머드 복합 쇼핑공간인 SK버스터미널은 이 회사가 중국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여성복 브랜드 ‘오즈세컨’ 항주서 돌풍

중국 선양에 건설한 복합 버스터미널

‘하늘에는 천국이 있고, 땅에는 항주, 소주가 있다.’ 항주와 소주는 마치 천국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 양자강 이남의 부유한 지방이다. 중국 문인들의 시와 그림에 끊임없이 등장해온 항주와 소주는 토지가 비옥해 예부터 소득 수준이 높고, 사람들의 기호도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지역이다.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 주유검의 황태후를 비롯한 왕실의 여자들도 항주 출신이 많다. 먹고 살만하다보니 예술이 꽃을 피우고, 유명 문사는 물론 미인도 많이 배출한 것.

이러한 전통을 계승한 중국의 항주에서 지난해 한 의류 브랜드가 캘빈 클라인을 비롯한 유수의 글로벌 브랜드를 제쳐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이변의 주인공이 SK네트웍스의 여성용 브랜드 ‘오즈세컨’. 대륙의 북서부에서 발원한 길고 긴 양자강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도시 ‘상해’의 강후이 등에서도 매출 수위를 다투는 이 브랜드는 중국을 대표하는 쇼핑몰인 상해 ‘메이롱쩐’이 수여하는 최고 판매 우수상을 국내 브랜드로는 최초로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영국의 버버리(Byberry), 미국의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등 유명 브랜드가 독식해온 이 상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보증수표로 통한다. ‘SK네트웍스의 오즈세컨이 중국 시장에서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 회사 측 설명. 이 브랜드는 중국 진출 첫해인 지난 2009년, 14개 매장에서 매출 100억 원을 올렸다.

또 오즈세컨은 지난해 매장을 24개로 늘리는 등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200억 여원을 기록했다. 우리로 치면 ‘된장녀’들인 중국의 월광족들이 이 브랜드의 주요 고객들 중 하나.

SK네트웍스는 지난해 또 다른 브랜드인 '하니와이 1호점'을 여는 등 의류부문에서 빠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심규현 SK네트웍스 중국패션사업부장은 “경쟁 브랜드가 내놓은, 단정하지만 재미가 없는 정장 스타일과는 다른 오즈세컨 브랜드만의 튀는 디자인에 중국 고객이 열광했다”며 이 브랜드의 인기 비결을 설명했다. 오즈세컨이나, 자원 비즈니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SK네트웍스의 해외시장 진출 전략의 교두보는 중국이다.

적자기업 中산토우 인간경영으로 되살려

“선양 SK버스터미널의 완공으로 중국의 경제 발전과 행복 증진에 기여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중국과의 동반성장 사업철학을 바탕으로 자원, 자동차, 소비재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 소비자, 기업, 정부의 행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중국 선양의 선양 SK버스터미널. 이 터미널은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복합형 버스터미널로, 지상 24층 지하 2층으로, 연면적만 8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대형 건물이다. 교통과 쇼핑, 생활공간이 어우러진 이 버스터미널은 SK네트웍스의 오늘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SK네트웍스는 외자기업 최초로 선양SK버스터미널 프로젝트 지분 70%를 확보했다.

건설에서 사업 운영에 이르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SK네트웍스는 단동시 압록강변 주상복합 개발에도 나서 아파트 3동과 오피스 1동으로 구성된 ‘여강국제’를 만들었다. SK네트웍스는 일찌감치 중국시장의 가능성에 눈을 뜨고, 지난 1991년 한국 기업 최초로 중국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둘씩 중국시장을 노크하던 시기다.

또 지난 2005년에는 세계 500대 기업 중 최초로 중국 선양에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등 일찌감치 중국시장에 깃발을 꼽았다. 이 회사의 중국 내 활동의 거점에 해당하는 도시가 후금 정권의 수도이던 ‘선양’이다.

이 거점을 중심으로 부채살이 뻗어나가듯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선양, 단동지역을 중심으로 10개의 복합주유소, 유류저장 터미널을 건설하는 등 요녕성 지역에서 왕성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상해와 천진에서도 차량 애프터마켓을 겨냥하고 있다.

또 적자를 면치 못하던 중국의 산토우PS를 인수해 인간중시 경영으로 흑자기업으로 돌려놓으며, 대표적인 중국기업 인수합병 사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중국에서 회사의 CEO가 나올 것”이라는 게 이 대표의 지론. 그는 동북3성을 중심으로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중국과 동반성장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TO-BE 혁신 앞세워 비즈모델 재편

“우리가 앞으로 헤쳐나갈 경영환경을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독서와 후기 나눔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창규 대표는 지난해 사내 인트라넷에 코너를 만들었다. 자신이 직접 읽은 책 중 일부를 사내 인트라넷에 올려 ‘일독’을 권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직원들에게 추천한 도서가 <2020 부의 전쟁 in Asia>. 미래학자 하인호씨의 맥을 잇는 2세대 미래학자로 널리 알려진 최윤식 소장이 저술한 이 미래학 서적은 인구 고령화를 비롯한 악재들에 신음하는 대한민국, 일본의 내일을 바라보는 창이다.

아시아는 메가트렌드들이 부딪치며 천변만화의 변화가 명멸하는 지역. 종합상사는 시대 변화의 급물살에 떠내려가고 있는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종합상사들이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하지 않으면 수년 후를 결코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대표의 지론.

그는 홍콩,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을 자주 방문한다. 자원 수요 급증, 자동차 대중화, 도시화 등 메가트렌드는 그의 발길을 비추는 북극성이다. 미국의 소비재 회사인 프록터 앤갬블(P&G)은 국내 종합상사들의 귀감이다. 지난 1930년대 소비자 리서치 센터를 만든 이 회사는 소비자의 기호를 반영한 제품을 주기적으로 출시하며 경쟁사들을 따돌려왔다.

이 회사는 낡은 옷을 갈아입듯이, 10년 주기로 비즈니스 모델을 재편하며 고속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 대표가 강조하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 전략이 ‘TO-BE’ 모델. 전통적인 상사 모델을 벗어나, 메가트렌드를 반영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해나간다는 전략이 골자.

“비즈니스 모델의 업그레이드와 더불어 신성장축 사업들의 가시적인 성과 창출로 중국 및 신흥국의 소비자, 기업, 정부 고객을 행복하게 하고 해당 국가 경제와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동반성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박영환 기자 yunghp@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