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아파트의 전세값이 매매값의 71%를 넘기며 전세물건 ‘갑(甲)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여기에 강남권 재건축과 강북·도심권 뉴타운, 재개발 사업 이주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데다 금리인하까지 겹쳐 ‘전세대란(大亂)’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16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71.0%로 조사가 시작된 1998년 12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주택 전세가율은 64.1%로 전월(63.8%)보다 0.3%포인트 증가했다.

최근 전세난은 주로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특히 중소형 아파트에 집중돼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 아파트 전세값은 평균 3억1401만원, 수도권은 2억2401만원으로 지난해 2인 이상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473만원)의 66배 정도에 이르러 전세값 부담이 더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시가 전·월세난 대책의 일환으로 세입자가 직접 전·월세 가격 등을 직접 신고하는 ‘전월세 신고제’를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우선 시는 전월세 거래가 많은 도심권·서북권·동북권·동남권·서남권 등 5대 권역별로 1~2개 동을 선정해 세입자가 전입신고 시 별도 설문조사 방식으로 주소지·월세·임차기간을 기입할 수 있게 하는 시범사업을 4월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전월세 신고제를 통해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가 신고를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전·월세의 정확한 시세와 동향을 파악하고 세원과 세액을 알 수 있게 해 전·월세 가격 상승을 저지시키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의도다.

전월세 신고제의 핵심은 최근 저금리 기조에 따라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집주인이 많은 가운데 이들을 대상으로 임대사업 수익에 세금을 부과해 섣불리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할 수 없도록 방지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전세 물량 공급을 늘려 전세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서울시의 의도가 숨어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전·월세 가격 동향은 발표 기관마다 수치가 다르고 객관적이지 않아 실제 정확한 가격 동향이나 지표를 알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며 “세입자가 이에 대한 정보를 서울시에 제공할 경우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전·월세 동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가 추진하는 전·월세 신고제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정부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지난 1994년 도입한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제’가 집주인들의 반발과 이를 의식한 정치권의 논란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해버린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치권에서도 이번 서울시의 결정을 두고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야당은 전·월세 신고제가 사실상 임대사업자 등록제와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면에 여당은 힘겹게 살아나고 있는 부동산 시장을 주저앉힐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이번 전·월세 신고제가 서울시가 밝힌 ‘통계 보완’ 측면이 아닌 지난해 임대소득 과세 공포를 불러일으킨 2·26 대책 부활의 예비 수순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2월 정부가 추진한 임대소득 과세안은 집주인들의 거센 반발로 오는 2017년까지 시행이 보류됐지만, 이번 서울시의 전·월세 신고제를 통해 임대소득자 소득이 고스란히 노출되면 임대수익 과세는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주택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신고제가 확대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임대료의 인상을 잡을 수 있겠지만 소득이 노출될 집주인들이 세금 부담을 우려해 시장에 신규 물건 공급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며 “특히 세입자를 내보낸 뒤 나중에 다시 새로운 세입자에게 인상된 임대료를 받는 행위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114 관계자는 “전·월세 신고제는 권고 사안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통계 자료가 모여 데이터베이스화가 되고 정책 자료로서 쓰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