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캠브리지 사전은 포퓰리즘을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과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 대중과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를 말한다.

‘대중의 뜻을 따르는 정치 행태’라는 점에서 결코 부정적인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의료 포퓰리즘’, ‘복지 포퓰리즘’ 등 다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진행된 여러 가지 정책들이 여야 간 정쟁과 서민들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종종 봐 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금연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이슈가 되고 있다. 올해 들어 담뱃값 인상에 이어 금연구역 확대 등 정부와 지자체의 금연정책이 강도 높게 추진되면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1갑에 2500원이던 담배 가격이 4500원으로 무려 2000원이나 올랐다. 흡연을 위한 공간은 더욱 줄어 사실상 길거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흡연이 불가능하다. 서울의 강남역 사거리 등 일부 지역에서는 거리에서조차 흡연이 금지돼 자신의 차량 안이 아니면 흡연할 공간이 없을 정도가 됐다.

 

10조 납세자 무시한 과도한 법 해석

이런 와중에 지난 1월에는 서울시의회가 ‘간접흡연 피해 방지 조례안’을 통해 서울시내 모든 도로에서의 금연을 추진했다.

국민건강증진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은 다수인이 오가는 관할구역의 일정한 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내 모든 거리의 금연화는 서울시민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범위를 넘는 초법적인 조례라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이 조례안은 여론의 반발로 철회됐다.

당시 한국담배소비자협회는 “일본과 홍콩도 길거리 흡연을 규제하지만 흡연권을 보장하기 위해 일정장소에 흡연실이나 흡연구역을 설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연구역을 늘리기 전에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흡연실 설치나 흡연구역을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거둔 담배소비세는 5200억원에 달했다.

과도한 법 해석으로 흡연자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다른 사례도 많다. 카페베네 등 다수의 커피숍에서 ‘흡연실 착석, 음료 반입 및 섭취 금지, 위반 시 과태료 10만원 부과’라고 쓴 안내 문구를 접한다.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은 ‘흡연실에 재떨이 등 흡연을 위한 시설 외에 개인용 컴퓨터 또는 탁자 등 영업에 사용되는 시설 또는 설비를 설치해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커피숍들은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흡연실 내에 영업과 관련 없는 긴 의자, 접이식 의자 등은 사용 가능하며, 식음료 반입 또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흡연을 할 때 반드시 서 있거나 바닥에 앉아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흡연자의 인격권을 지나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관련 규정이 모든 의자의 설치를 금지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흡연자가 흡연실 안에서 일정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제한은 규정돼 있지 않다”며 “흡연실에 음료를 반입하고 먹는 행위까지 제한하는 것은 현행 법규의 과도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영세 상인, 선택적 금연정책 수용 요구

흡연자들이 담뱃값 인상으로 한 해 동안 지불하는 세금 규모만 1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세금은 늘었는데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고 흡연자를 마치 범죄자처럼 옥죄는 정부정책에 대해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박탈당했다는 불만은 높아간다.

이런 가운데 영세 상인들이 금연지역 확대 시행에 따른 매출 감소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해까지 영세 소규모 음식점과 주점들은 ‘흡연이 가능하다’는 점을 경쟁력으로 내세웠지만 올해 들어 규모에 상관없이 전 영업장으로 금연정책이 확대 시행되며 경쟁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3일 음식점 업주들은 정부의 금연정책에 항의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소원에 동참한 한 영세 주점 업주는 “전면 금연 실시 후 지난해 대비 손님이나 매출이 약 30% 이상 줄어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주는 “손님 10명 중 4~5명이 흡연자인데 금연정책 확대로 피울 수 없게 되자 발길을 끊는 이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보건복지부의 흡연실 마련 지침에 대해서도 “흡연실을 만들려면 20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 비용이 소요된다. 비용도 문제지만 장소가 협소한데 어디에 만들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영세업소의 상인이란 가게의 규모가 작고 보유한 사업비용이 적은 이들을 말한다. 이들에게 금연정책 확대는 정부가 안긴 ‘재앙’인 것이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인들은 정부의 금연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업주의 재량에 맡겨 선택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한다.

음식점 업주들과 함께 헌법소원에 참여한 국내 최대의 흡연자 커뮤니티 ‘아이 러브 스모킹’도 모든 음식점에 대한 전면 금연구역 강제는 영업권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음식점 전면금연으로 업주들이 직업수행의 자유, 행복추구권 및 재산권을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아이 러브 스모킹’은 간접흡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흡연실 설치가 우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흡연자들이 부담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연익 아이 러브 스모킹 대표는 “현재 정부와 각 지자체들이 실내공간은 물론, 길거리 등 실외공간마저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모든 음식점에 대한 금연구역 지정은 거의 모든 공간을 금연구역화하는 것으로 기호품인 담배를 소비하는 흡연자의 최소한의 흡연권마저도 묵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광진구 건대입구역 2번 출구 흡연부스 '타이소'

1천만 흡연자를 포용한 정책적 고민 필요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 금연구역 확대가 세계적인 추세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미국이나 호주, 일본 등 금연 선진국으로 널리 알려진 국가에서는 거리 곳곳에 흡연공간을 따로 만들어 간접흡연 피해는 줄이고, 흡연권은 보장해 주는 ‘분리형 금연정책’을 시행 중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2011년부터 음식점이나 숙박시설에 별도 흡연실을 만들 경우 후생노동성에서 설치비용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이긴 하지만 흡연자를 포용한 행정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 광진구는 지난해 12월 말 서울지역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앞에 타인을 배려하고 이롭게 한다는 뜻을 담아 ‘타이소(TAISO)’라는 흡연부스를 설치했다. 광진구는 동서울터미널역 앞에도 흡연부스를 운영 중이며 추가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경북 영주시도 1월 2일 흡연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비흡연자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야외 흡연실’을 설치했다. 시 청사에 기존 흡연실과는 별도로 3~4평 규모의 야외 흡연실 2개소를 추가 설치한 것이다.

이처럼 연간 10조원에 이르는 세금을 지불하고 있는 1000만 흡연자들을 배려하고, 비흡연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포용정책에 대한 고민도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흡연자들이나 영세 상인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금연정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흡연자들에겐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을, 영세 상인들에겐 흡연 여부를 선택해서 영업할 수 있는 자율권을 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강경 일변도 금연정책으로 파생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과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방지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