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코믹스는 유료 웹툰 서비스다. 그런데 지금 접속하면 웹툰을 볼 수가 없다. 자동으로 ‘www.warning.or.kr'에 접속된다. 이용자는 이 사이트를 통해 ‘불법‧유해 정보 사이트에 대한 차단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귀하가 접속하려고 하는 정보(사이트)에서 불법‧유해 내용이 제공되고 있어 해당 정보(사이트)에 대한 접속이 차단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고 적혀 있다. 이어 “해당 정보(사이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적법하게 차단된 것이오니 이에 관한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아래의 담당기관으로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설명도 확인 가능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팩트는 명확하다. 레진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레진코믹스가 25일 ‘불법사이트’로 지정돼 접속이 차단된 것이다. 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결정했다. 방심위는 청소년 접근 제한 조치 없이 음란물이 유통된다는 의견을 접수하고 해외에 있는 서버를 지난 24일 오후부터 차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레진코믹스는 18세 미만 청소년에 대한 접근 제한 조치 없이 음란물이 유통됐으며, 성행위 묘사가 구체적인 일본 만화가 다수 포함된 점이 차단을 의결한 이유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도 순차적으로 차단될 예정이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방심위에 이의 신청을 할 예정이다.

여론은 즉각 들끓고 있다. “창조경제를 꿈꾼다더니 콘텐츠 규제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와 같은 일갈이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 사실 만화는 게임과 함께 규제의 단골메뉴였다. 지난 1961년 관련 심의가 처음으로 시작됐으며, 1970년대엔 만화 규탄대회가 수없이 많이 열렸다. 1997년엔 만화계를 궤멸로 몰아갔다는 평가를 받는 청소년보호법 사태가 있었다. ‘불량 만화’를 그린 만화가들은 ‘주범’ 혹은 ‘공범’으로 몰렸던 시절이다. 그들은 어린이날마다 만화책 화형식을 지켜봐야만 했다.

만화 규제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최근에는 학교폭력에 따른 청소년 자살 문제가 불거지자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웹툰이 지목당하기도 했다. 한 언론의 <'열혈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기사가 발단이었다. 웹툰이 공공연하게 폭력을 미화해 “섬뜩”하니 규제가 필요하다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언론의 압박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3개 작품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으로 응답했다. 물론 부당한 측면이 무수히 많았다.

그렇다면 레진코믹스가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닐까. 아직까지 뚜렷한 정황이 파악되진 않았다. 다만 레진엔터테인먼트가 그간 ‘스타트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주목받았으며 정부도 이를 인정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013년 레진(Lezhin)이란 필명으로 활동하던 블로거 한희성과 개발자 권정혁이 설립했다. 벤처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창업 첫해부터 흑자를 달성하여 미래창조과학부 워크숍에서 사례 발표를 하는 등 주목을 받았다.

레진코믹스 서비스 2년 만인 지난해 레진엔터테인먼트의 매출은 100억원을 넘어섰다. 아울러 ‘2014대한민국인터넷대상 인터넷 비즈니스’ 부문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중국·일본 등 해외시장 진출에도 나서고 있다. 이들은 초창기부터 마니아층을 공략해 네이버와 다음이 장악한 웹툰 시장에서 업계 3위까지 성장했다. 일각에서는 레진엔터테인먼트가 한국의 마블엔터테인먼트가 될 수도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사태의 배경엔 방심위의 ‘인터넷 음란물 근절 TF'가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 조직은 지난 2일 인터넷 음란물 피해방지를 위한다는 취지로 공식 출범했다. 이들은 음란물의 주된 유통경로가 되고 있는 웹하드·P2P, 토렌트, SNS, 실시간 개인방송, 카페·블로그 및 해외 음란사이트에 대한 중점모니터링을 통해 음란물 심의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음란물 근절 TF'가 레진코믹스를 표적으로 삼아 TF 출범의 성과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 다시 정부의 규제와 육성정책의 엇박자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창조경제 실현의 기반이 될 스타트업과 콘텐츠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다. “창조경제를 위해 스타트업을 100개 육성하겠다”와 같은 말은 끊임없이 쏟아내 왔다. 그러면서도 규제 작업을 단행하며 두 얼굴을 보여줬다. 게임산업은 ‘두 얼굴의 정부’에 당한 최대 피해 분야로 꼽히기도 한다. 현재 ‘콘텐츠 사업을 하는 유망한 스타트업’인 레진엔터테인먼트가 규제의 칼날에 위협받고 있다. 아직 상황을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불행하게도 그간 역사는 반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