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LG의 감정대립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특히 가전분야에서 양사는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격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당장 업계에서는 신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해도 모자랄 판국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제조사들이 서로의 머리 끄덩이만 붙잡고 다투는 상황을 두고 개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 ▲ 출처=각 사 로고

 

냉장고 전쟁, 또 치열하게 맞붙나?
한국소비자원은 10일 900L 이상의 대형 냉장고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각 브랜드 대표제품을 골라 비교 결과를 발표했다. 삼성전자(RF90H9012XP), LG전자(R-F915VBSR), 대유위니아(RE944EKSSUW)의 제품이 비교대상군으로 뽑혔다. 소비자원은 용량 대비 저장성과 월 전력량, 소음 보습률, 편리성 등의 항목을 조사했다.

결론적으로 대부분 삼성전자의 냉장고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LG전자는 편의성 부분에서만 경쟁자들을 이겼다. 당장 반론이 터져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신빙성있는 결과라며 자평하는 분위기지만, LG전자는 삼성전자의 제품보다 자사의 제품이 10L 더 크며, 매직스페이스(홈바)가 탑재되어 있어 직접적인 비교를 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 ▲ 출처=한국소비자원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저장성 부분에 있어 삼성전자는 900L였고 LG전자는 910L, 대유위니아는 940L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제품이 저장성 부분에서 별 세개를 받아 1등을 했다면, 당연히 "신빙성 있는 결과"라고 말하는 삼성전자의 입장에 무게가 실린다. 전력량도 삼성전자는 월 32kWh, LG전자는 40.6kWh, 대유위니아는 49.8kWh를 기록해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보습률과 냉장속도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묘한 부분도 있다. 소비자원도 밝혔지만 전력량의 경우 이용자의 소비행태에 따라 측정치가 다르기 때문에, 결과에서 보여진 전력량 소요 데이터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편의성 분야에서 LG전자가 이긴 부분은 매직스페이스를 달았기 때문인데, 이는 저장성 및 기타 요소에서 감점요인이 되기도 한다.

기능별 편차가 작용했겠지만 910L의 삼성전자가 940L의 대유위니아 제품보다 70만원 비싸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소비자에게 좋은 정보를 알려주려는 긍정적인 취지로 시작된 소비자원의 데이터는 어쩔 수 없는 논란에 빠질 운명이었다.

게다가 이번 소비자원의 평가가 그 긍정적인 취지와 별도로, 삼성과 LG의 세탁기 전쟁을 다시 촉발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은 불안요소다. 삼성과 LG는 2012년 '우리 냉장고 용량이 더 크다'는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소모적인 논쟁을 거듭했으며, 급기야 삼성은 유튜브를 통해 LG의 냉장고에 물을 붓는 장면을 연출하며 감정싸움을 촉발시키기에 이르렀다.

결국 법원까지 출동해 삼성이 유튜브 영상을 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며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는 양사의 갈등이 얼마나 소모적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남아있다. 여담이지만, 하필 유튜브에 등장했던 냉장고도 삼성전자는 900L, LG전자는 910L였다.

 

세탁기는 더 심각하다
11일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기분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자사의 크리스털 블루 도어 드럼세탁기를 선봉장으로 삼아 글로벌 강자인 밀레의 점유율을 낮추는 한편, 그 반사이익으로 자사의 점유율을 올렸기 때문이다. 크리스털 블루 도어 드럼세탁기는 출시와 동시에 해외 유수의 상을 거머쥘 만큼 인기있는 제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크리스털 블루 도어 드럼세탁기는 다른쪽으로 더 유명하다.

지난해 조성진 LG전자 사장은 매장에 전시된 크리스털 블루 도어 드럼세탁기를 파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맞고소가 남발했으며 LG전자 사옥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조 사장은 출국금지 조치를 당해 한 때 CES 2015 출장이 불투명할 정도였다.

현재 법정에서의 진검승부만 남겨둔 상태며 양사는 "한 번 붙어보자"는 때 아닌 전의로 불타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조사를 받은 조 사장은 크리스털 블루 도어 드럼세탁기를 파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당시의 CCTV를 공개해 결백함을 호소하는 한편, 대형로펌과 함께 본격적인 소송전 준비에 돌입했다.

삼성전자의 고소에 무고죄로 받아쳤으나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상, 이제 '혈투'만 남은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양사의 변호인단이 회동해 해결을 위한 의견을 교환했으나 최종합의에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에서는 양사의 세탁기 논란이 불거질수록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브랜드 가치만 하락할 뿐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양사의 소송전이 불을 뿜던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다수의 외신은 이를 깊이있게 보도한 바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양사의 이미지만 크게 실추됐다는 평가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또 소모적인 감정이 개입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에서 유학하는 조 사장의 아들이 삼성의 크리스털 블루 도어 드럼세탁기를 두고 '유리 세탁기'라고 폄훼한 부분이다. 논란을 일으키자 이는 즉시 삭제됐으나 양사의 골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 사건
최근 일단락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나, 언제든 다시 발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도 있다. 바로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 사건이다. 이직자를 중심으로 2012년 4월 삼성디스플레이의 전신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직원이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TV 기술을 LG디스플레이에 유출시키며 촉발된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 사건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직원과 LG디스플레이 임원이 구속되며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LG디스플레이를 강하게 비판했으며, LG디스플레이는 삼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며 난타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2012년 9월 LG디스플레이는 삼성디스플레이가 OLED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걸었으며, 12월에는 입장이 뒤바뀐 고소고발전도 난무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디스플레이는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 양사의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 사건은 법원의 1심 판결을 기점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분위기지만, 언제든 역고소 사건이 발생할 수 있기에 업계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11일 삼성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이 "OLED는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장면이 묘하게 오버램되는 순간이다.

이 외에도 많다
더 안타까운 대목은 양사의 감정적 대립이 냉장고, 세탁기, 디스플레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1년 3월 3DTV가 미디어의 미래로 각광을 받던 시절, 삼성전자 직원이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LG디스플레이 엔지니어들에게 "정말 멍청한 XX들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비하해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결국 삼성전자가 사과편지를 발송해 사태는 무마됐으나, 양사의 갈등은 이미 '제어할 수 없을 지경'으로 빠져든 후였다.

심지어 2011년 10월 LG전자가 옵티머스 LTE를 출시하며 은연중에 삼성전자 제품보다 우위에 있다는 발언을 남겨 논란을 남겼고, 2013년에는 삼성전자가 에어컨 시장 점유율 1위라는 광고를 쓰지 못하도록 LG전자가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원의 진공청소기 성능발표도 논란을 낳았다. 삼성전자, LG전자, 다이슨, 밀레, 일렉트로룩스 등의 신형 진공청소기를 보급형 8종과 고급형 6종으로 나눠 소음, 최대흡입력, 미세먼지 방출량 등의 품질을 시험 평가했으며, 해당 테스트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양사의 반응에는 묘한 온도 차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상처뿐인 영광은 이제 그만
삼성과 LG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제조사다. 다양한 신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시장의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도를 넘은 감정적 대립이 지루하게 이어지며 '더욱 큰 성공'을 놓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기업의 감정대립이 삼성과 LG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SK텔레콤과 KT는 3밴드 LTE-A 세계 최초 상용화를 두고 첨예한 감정싸움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에 "시장 혼탁을 주도하는 경쟁사를 조사해 달라"는 읍소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모두가 같은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삼성과 LG의 대립은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지나치게 격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이제 중재할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자조섞인 농담이 번지는 이유다. 물론 정부는 어렵다.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 당시 정부가 직접 중재에 나섰지만 '순간의 평화'밖에는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