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만큼 시선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분야도 드물다. 세계를 호령하는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는 찬사와 더불어, 불필요한 중독의 원흉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도의 게임산업 진흥정책이 등장하는가 하면, ‘게임 중독법’으로 대표되는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과 ‘셧다운제’로 유명한 청소년 보호법 제23조의 3이 연이어 등장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최근 확률형 게임 아이템 규제안이 등장해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1914215)
■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
현행법은 게임물 내용정보를 게임물의 내용에 대한 폭력성·선정성(煽情性) 또는 사행성(射倖性)의 여부 또는 그 정도와 그 밖에 게임물의 운영에 관한 정보로 정의하여 게임물에 표시하도록 하는 등 게임물 이용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음.
한편,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에서는 일정 금액을 투입할 경우 다양한 보상을 주는 등 우연적 요소가 강한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는데 게임물의 지나친 과소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제조치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음.
이에 게임물의 이용을 통하여 획득할 수 있는 점수·경품·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가상의 게임머니 등의 유·무형의 결과물의 종류·구성비율 및 획득확률 등에 관한 정보가 게임물 내용정보에 포함되도록 정의규정을 보완하여 게임물의 유통 및 등급표시 등에 반영되도록 함으로써 확률형 아이템 판매 게임물이 건전한 게임물로 이용되게 하려는 것임(안 제2조제2호, 제32조제1항제7호)

 

확률형 게임 아이템 규제안, 어떤 내용인가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9일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할 경우 관련 정보를 자세하게 공시하도록 하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게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일명 ‘확률형 아이템 규제안’이다.

해당 법안은 말 그대로 ‘뽑기형 아이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게이머들이 게임에서 아이템을 구입할 경우 게임사는 투자한 가치와 같거나 혹은 더 높은 가치를 가지는 아이템을 확률에 따라 배분하는데, 이러한 확률을 정확하게 명시해 아이템을 얻는 알고리즘을 공개한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이 즐겨 찾는 ‘뽑기’놀이와 비슷하다. 돈을 내고 뽑기를 뽑을 권한을 가지는 상황에서 그 확률을 미리 정하고 공개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확률형 게임 아이템 규제안은 게임의 사행성 논란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실제로 정우택 의원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게이머가 아이템을 확률형으로 구매하면 무분별한 소비가 일어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건전한 게임 내 아이템 구매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해당 법안을 발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의원 측은 “어떤 아이템을 어떠한 확률로 얻을 수 있을지 공개되지 않아 투입금액 대비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조성해 이용자의 과소비와 사행성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게임의 폭력성, 선정성, 사행성 여부와 정도를 게임물 내용정보에 공시하는 한편 아이템 제공확률도 공개될 전망이다.

충돌지점

논쟁의 시작은 규제의 방식과 주체를 두고 벌어지는 분위기다. 확률형 아이템 방식에 사행성 문제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누가 규제하느냐’가 향후 게임산업 전반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게임업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는 상황의 추이를 살피며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면서도 반발의 수위를 올리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미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자율형 규제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K-IDEA는 지난해 11월 ‘청소년보호를 위한 게임업계 자율규제 선언’을 통해 전체이용가 게임을 대상으로 ‘캡슐형 유료아이템(확률형 아이템)’의 결과물 범위를 공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했는데 갑자기 국회에서 강제규제로 선회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에 다수의 IT 및 게임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르호봇의 목영두 대표는 정부와 시장의 관계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시장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것과 시장의 실패를 대비해야 하는 것에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폐단을 막는 일”이라며 “안타까운 점은 흑백논리에 빠져 최소한의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하며 자율규제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어 목 대표는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정부는 문제 자체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특히 게임분야는 우리가 가장 잘하는 분야며,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다. 폐단을 없애는 일에만 주력하며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목 대표는 “정부는 자신들이 전면에서 규제와 진흥정책을 구사하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지나치게 경직된 부분이 포착된다.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기 전에 시장의 긍정적인 선택을 돕는 쪽으로 정부의 역할을 확실하게 정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K-IDEA의 자율규제 방안이 더욱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K-IDEA의 자율규제 방안은 게임 내부의 인챈트(아이템 강화) 범위 공개와 경고문구 게시까지 의무화하기로 결정하는 등 정우택 의원의 확률형 게임 아이템 규제안보다 더 세밀하다는 평가다. 실제로 정우택 의원의 확률형 게임 아이템 규제안에는 이용등급별 규제에 대한 별다른 가이드라인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지점에서 문제는 더 커진다. K-IDEA의 자율규제안은 전체이용가 게임에 한해 규제를 마련한다는 방침이지만 정우택 의원의 확률형 게임 아이템 규제안은 별다른 내용이 없다. 이는 자율규제안보다 확률형 게임 아이템 규제안의 범위가 더 넓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규제의 대상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양측의 충돌은 ‘규제의 이유’에 이르러 더욱 첨예해진다. K-IDEA는 자율규제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맞서는 한편, 정우택 의원실은 “이제 자율규제는 의미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제점

정우택 의원의 확률형 게임 아이템 규제안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언적 측면에서는 가치가 있으나, 국회의 무리한 시장개입을 통해 게임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체이용가를 아우르는 모든 게임을 규제대상으로 삼는 대목과 더불어 자율규제의 방법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업계의 움직임을 제로베이스로 돌려놓을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사들의 주요 수입원이며, 주로 국내 게임사들만 채택하는 방식이다. 만약 해당 법안이 시행될 경우 국내 게임사들의 수익이 떨어지고 해외 게임사들만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결국 국회가 시장의 손에 맡겨져 자연스러운 규제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를 막아버리는 한편, 무리한 개입을 시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셧다운제 및 기타 게임중독 논란으로 휘청이는 국내 게임업계를 산업적 측면에서 육성하고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해외 게임사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법안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