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용 원자로사업 회심의 카드… 융합형 인재 발굴에도 남다른 정성

지난 1982년 이라크와 전쟁이 한창이던 이란의 철도 공사 현장. 대우건설 근로자들은 이라크와 접경지역에 있는 이곳에서 기반 조성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였다. 공사현장 근로자들이 거대한 굉음에 혼비백산을 한 것. 근로자들은 이라크에서 발사한 미사일 한 발이 이 공사장 인근에 떨어진 것을 후에 알았다.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다.

대우건설은 대우그룹 세계경영의 선봉장이었다. 자원의 보고 나이지리아에서는 이 회사 직원들이 반군단체에 납치되며 비상이 걸리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대우건설은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화약고 진출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회사가 아프리카 현지에 깃발을 꼽은 때가 지난 1976년. 대한민국 건설업체들은 사우디아리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행 특급열차에 몸을 실었다. 대우건설은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에 진출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수단의 항구도시 포트 수단에 지은 타이어공장은 기념비적 건물이었다.

대우건설은 시련의 강도 건넜다. 지난 1997년 태국에서 불어 닥친 외환 위기의 파고는 ‘양날의 칼’이었다. 모기업인 대우그룹의 자금난이 위기의 발단이었다. 태국에서 옮겨 붙은 불길은 대우그룹을 다 태워버릴 기세였다. 대우그룹 집도에 나선 김대중 정부의 용병 대장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대우와는 악연이었다. 대우그룹은 해체의 수순을 밟는다.

대우건설은 이 시련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면서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무한지원을 해야 했던 대우그룹 계열사와 질긴 인연의 끈을 끊어낸 것은 호재였다. 지난 1999년 채권단은 대우건설을 워크아웃 기업으로 선정했다. 독자생존의 출발점이었다.

대우건설 임직원들의 고군분투는 눈물겨웠다. 대우건설은 5566억 원의 자산을 매각했고, 900여명의 직원들을 떠나보냈다. 쌈짓돈을 모아 2억여 원을 모금한 뒤 신문에 ‘대우건설을 살리자’는 광고를 냈다.

2006.12.07 국내 최장 솔안터널 관통 공사.

임직원들이 똘똘 뭉쳐 자발적인 기업 살리기에 나선 것. 이 캠페인의 이름은 한마음 다지기 운동. 지난 2000년 기업 분할 당시 부채 비율이 500%에 달했다.

부채 비율을 2년 만에 180% 수준으로 낮춘 대우건설은 2003년 12월 자율경영체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4년 후, 서종욱 대표가 대우건설의 대표이사로 부임한다. 그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와 대우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대우맨이다. 리비아 건설본부 관리부장, 국내영업본부장 등을 지낸 서 대표는 부임 후 이른바 클래식 경영의 시동을 건다.

서종욱 대우건설 대표이사는 주택시장, 플랜트, 토목사업 등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에 한 가지를 더했다. 그가 꺼내든 회심의 카드가
‘연구용 원자로 건설 사업’이다.

직원 면접에서도 음악회 관련 질문

“소비자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 소비 트렌드를 파악하기위해서라도 감성적인 접근은 필수입니다. 아파트 설계, 고객상담, 마케팅에서도 고객들과 감성적으로 교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를 떠올리게 하는 대우건설 1층 로비에는 직원들에게 DVD를 대여해주는 종합도서관이 있다. 직원들을 위한 문화 공간을 조성한 것. 그의 집무실과 비서실에도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서종욱 대표 이사는 클래식 마니아다. 초원을 질주하는 유목민의 이미지를 떠올리던 이 회사는 서 사장 부임 이후 부드럽게 변해왔다.

그가 남성적 이미지가 강한 대우건설에 부임한 뒤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건설업계의 변화를 빼놓을 수 없다. 건설 산업은 흔히 노가다 산업에 비유된다. 마초 기질을 발휘하는 거친 건설 노동자들을 떠올리기 때문. 하지만 건설산업은 디자인, 전기, 환경, 정보통신 분야가 소통하는 최첨단 융합 산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

2009.07.15 강남북 완전 관통하는 하저터널.

콘크리트와 철근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주인공들이 바로 건설회사들이다. 스티브 잡스는 워크맨에서 모티브를 얻어 아이팟을 만들고, 아이팟을 밑천삼아 아이폰, 아이패드를 출시했다. 건설회사들은 모래바람이 세차게 부는 허허벌판에 라스베이거스를 지었다.

일본의 록본기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최첨단 공학기술과 만난 현대 건설 산업의 백미이다. 슬럼지대로 변모하던 일본 록본기 역 부근은 쾌적한 콤팩트 도시로 거듭났다. 건설산업에서도 상상력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산업은행과 시너지에 큰 기대

“흔히 건설회사라고 하면 딱딱하고 엄격한 위계질서와 군대식 문화를 떠올립니다. 상명하복식 직장 문화는 통하지 않습니다. 상하좌우가 막힘없이 소통하는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은 창의성을 발휘하고, 더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가 취임 후 클래식 콘서트를 여는 등 변화 경영의 시동을 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서 대표와 클래식의 인연은 월남전 참전 당시로 거슬러온다. 1971년 월남에서 돌아온 그가 유일하게 사온 물건이 ‘오디오’였다.

음악을 듣다보면 사고가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 인재 사관학교로 통하는 이 회사는 사원선발에서도 다양한 전공자를 발탁하고 있다.

서 대표는 직원들의 예술적 감각을 중시한다. 면접 참가자들에게 “음악회에 몇 차례나 가보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그는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시너지에도 상당한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금융과 굴뚝, 하드웨어와 서비스 등 이질적인 분야의 만남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

유비쿼터스 도시는 융합의 백미이다. 대우건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된 이후 바람 잘날 없던 세월을 보냈다. 그가 산업은행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에 기대감을 표시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해외 시장을 마치 손금처럼 파악하고 있는 대우건설의 경험, 산업은행의 자금력은 무한한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서 대표가 이 회사 ‘지휘자’에 부임한 것이 지난 2007년, 대우건설은 주택사업부문의 전통명가였다. 독신자용 소형원룸 아이빌과 주거용 오피스텔 대우 미래사랑을 비롯한 틈새시장을 일찌감치 깃발을 꼽으며 주택공급 1위 업체로 도약했다.

지난 1990년대 중반에 ‘브랜드 아파트’ 의 효시격인 그린 홈크린 아파트를 선보인다. 하지만 주택건설 부문 명가라는 명성은 '양날의 칼'이었다.

2010.12.06 6년 만에 거가대교 완공.


산업은행과 시너지에도 상당한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금융과 굴뚝, 하드웨어와 서비스 등 이질적인 분야의 만남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의 지론.

플랜트사업 신흥시장 영역 확대

주택 부문은 경기를 민감하게 타는 대표적인 ‘경기 민감 분야’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단이었다. 지난 2007년 컨트리 와이드를 비롯한 모기지 업체들이 잇달아 파산하자, 위기의 파고는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며 투자은행업계를 삼켰다.

대한민국 주택사업도 미국 발 금융 위기의 최대 피해부문이었다. 그가 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상품 포트폴리오 재편에 올인 한 배경이다.

LG전자는 애플의 스마트폰 공세로 자사가 강점을 지닌 프리미엄 피처폰 시장이 허물어지자, 옵티머스 시리즈를 출시하며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나선다.

서 대표도 주택시장, 플랜트, 토목사업을 비롯한 포트폴리오에 한 가지 비장의 무기를 더한다. 그가 꺼내든 회심의 카드가 ‘연구용 원자로 건설 사업’이다. 대우건설은 국내 최초의 해외 원자력 플랜트사업인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건설 사업을 수주하며, 경쟁사들에 앞서 연구용 원자로 시장을 선점했다.


중동·동남아 주요국에 수주 거점 구축

또 러시아, 알제리를 비롯한 신흥시장으로 해외활동 무대를 확대하고 있다. 가스처리 토탈 이피시(Total EPC .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화력 및 복합화력 발전 투자개발사업 확대, 폐기물 처리를 비롯한 고부가가치의 플랜트 사업을 본격 전개한다.

나이지리아 NLNG 플랜트, 러시아 사할린 LNG 플랜트, 알제리 LNG 플랜트 등 LNG 처리시설 기술이 독보적이라는 평이다.

서 대표는 거점 지역 확보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칭기즈칸의 후손인 티무르가 중앙아시아를 공략할 때 거점으로 확보한 지역이 사마르칸트. 아시안 컵에서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과 3, 4위전을 치른 우즈베키스탄의 수도로, 동북아시아, 유럽 양쪽 방향으로 부챗살 형태로 뻗어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대우건설도 주요 지역과 국가의 현지 거점 강화를 목표로 중동 및 동남아 주요국에 사마르칸트 같은 수주 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해외 사업 지원 체계를 강화하여 우수 3국으로 인재 수혈의 무대를 확대했다.

대우건설은 건설업계에 최고경영자를 배출해온 인재사관학교로 유명하다. 국내 건설사 중 대우건설 출신이 무려 17명에 달한다. 서 대표는 인재 확보의 무대를 아시아의 거점 지역으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오는 2020년까지 외부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른바 제로에너지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또 내년까지 에너지 절감률 50%인 아파트를 개발하는데 역점을 두며 그린 경영의 시동도 힘차게 걸었다.

박영환 기자 yunghp@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