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모토는 '악하지 말자(Don’t be Evil)’다. 몸집을 키우고 영향력을 확장하며 세계를 아우르는 거대 기업이 되더라도 절대 악한 기업이 되지 말자는 일종의 자기최면이다.

시민혁명을 기점으로 왕과 귀족을 몰아낸 거대 자본가들이 신흥세력으로 부상해 전혀 다른 계급 간 투쟁의 단초로 번졌던 인류의 근현대사를 고려하면 감동적이고 낭만적인 모토다. 엄청난 부와 권력을 거머쥔 기업이 '악하지 말자'라고 외치며 정의의 편에 서다니.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며 지독한 정경유착의 고통을 겪었던 우리에게 구글이 산뜻한 이미지도 다가오는 이유이리라.

구글의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은 오픈소스 정책에서 정점을 찍는다. 자신들의 밑천을 공개해 모든 것을 공개하고 이를 통한 생태계 순선환에 나선다는 구글의 오픈소스 정책은 '악하지 말자'의 결정판이다. 물론 현재에 이르러 우리는 '선 생태계 구축'이 가장 효과적인 몸집 불리기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모든 것을 거머쥔 기업이 오픈소스 정책을 펴는 것 자체가 색다른 시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생태계 구축의 목적이 더 큰 과실을 따내기 위한 일종의 노림수라는 것을 고려하며, 이 시점에서 우리는 구글과 낭만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절대악과 절대선은 없는 시대다. 구글은 양의 탈을 쓰지 말아야 했다.

구글월렛 선탑재, 결국 끼워팔기
미국 3대 통신사가 구글의 주도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구글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구글월렛을 선탑재한다는 소식이다. 4.4 킷캣 이상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적용되며 향후 신모델 및 구형 스마트폰에도 선탑재가 가능하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되면 루프페이를 인수해 핀테크의 일부인 간편결제 인프라의 증진을 노리는 삼성전자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미국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구글월렛이 선탑재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삼성페이, 루프페이를 쓸까? 아니면 구글월렛을 쓸까?

애플페이가 관련시장을 무섭게 장악하는 상황에서 구글이 구글월렛 선탑재로 노리고자 하는 것은 뚜렷하다. 지지부진한 구글월렛의 인지도를 끌어 올리고 운영체제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활용도를 확장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삼성전자가 타이젠에 승부를 걸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긴 셈이다.

일단 현 상황에서 선탑재 '버프'를 탄 구글월렛이 제조 파트너인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간편결제 인프라를 잠식하고, 애플페이에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블랙 코미디가 점쳐지는 상황이다. 머캐토 어드바이저리 그룹의 페이먼트 애널리스트인 팀 스런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의 차기 스마트폰 모델에는 똑같은 결제 앱이 두 개나 깔려 나오게 되는 촌극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형적인 끼워팔기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팔기로 당시 웹브라우저 1위였던 넷스케이프를 몰아낸 방식과 똑같다. 자신들의 강력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잠재적 경쟁자인 현재의 우군을 교묘히 활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치밀한 경향도 있다. '악하지 말자'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물론 구글월렛 선탑재가 범죄는 아니다. 부조리한 뇌물을 준 것도 아니며 심각한 위범행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끊임없이 불거지는 독립 앱 장터 논란은 국내 미래창조과학부를 통해 일정부분 면죄부를 받은 상황이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선탑재 문제가 꾸준한 파열음을 일으키는 대목은, 구글이 '악하지 말자'는 모토를 내세우며 오픈소스를 앞세우기 때문에 불거진다. 결국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글도 똑같은 기업이었다.

양의 탈을 벗어라
현재 세계는 구글과 전쟁중이다. 다양한 혁신의 중심에서 새로운 미래의 역사를 창조하는 구글의 이면에는 반독점 및 구글세 문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게다가 구글은 필요하다면 자신의 오픈소스 정책도 뒤집을 정도로 냉철한 비즈니스 마인드가 투절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드로이드 원 프로젝트다. 오픈소스인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막상 콘트롤 타워인 구글이 가져갈 파이가 작아지자 전격적으로 실시된 본 프로젝트는, 오픈소스의 기조를 완전히 뒤엎은 파괴적인 조치이자 구글이 안드로이드 오픈소스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단초다.

구글의 모토는 '악하지 말자'이지만 마케팅의 방향성은 '(큰 판에 걸어라)BIG BET'이다. 재미있는 것은 '큰 판에 걸어라'의 뜻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오픈소스와 같은 거대한 줄기를 통크게 공개해 생태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부수적인 수익을 완벽하게 노려라'로 해석한다. 결국 이 지점에서 구글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구글에 대한 낭만은 사실 없다는 것, 어쩌면 스노든의 폭로로 구글과 미국정부의 밀월이 만천하에 알려지는 순간 사라진 패러다임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구글도 스스로 커밍아웃을 할 때가 왔다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