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정 과장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돈도 싫고 칭찬도 싫어요. 제발 스트레스만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IT 업계에서 실력자로 소문난 그는 오늘도 ‘스트레스 만땅!’이라며 상담실을 찾았다. 잠도 못자고, 우울하기도 하고, 먹으면 먹는 대로 다 체했다. 압박감이 심해서 늘 초조하고 불안했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불행하다는 그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가고 싶어요. 예전에는 아무리 힘든 일로도 스트레스를 안 받았어요.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행복하기만 했는데.”

지금처럼 업계의 스타로 경쟁에 휘둘리기 전의 이야기다. 아무 생각 없이 일만 열심히 했으니, 지금보다 더 업무량이 많아도 힘들지 않고 행복했다. 스트레스만 없다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언뜻 들어도 정 과장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정말 스트레스만 없다면 행복할까? 도대체 스트레스를 없앨 수는 있는 것인가?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몸이 아파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화가 안 되어 또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을 찾아 각종 검사를 다 해보았지만 ‘의학적으로 정상’이라는 것이다. ‘아무 이상 없다’는 말에 어느 정도는 안심을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것은 아니니 역시 걱정이다. 증상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런 고민을 토로하게 되면, 의사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신경성’ 또는 ‘스트레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한다. “아! 내가 스트레스 진짜 많이 받는구나! 그러니 이렇게 아프지!”라고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담당 의사가 당신을 놀린 것이다. 왜냐고? 스트레스는 절대 없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편한 증상을 느끼는 것은 스트레스 요인에 의한 몸과 마음의 반응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스트레스 반응이란 ‘생존 반응’이다. 즉, 살아남기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의 방어체계가 외부 요인을 물리치기 위해 반응을 하는 것이다.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생존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곳곳에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생존한다는 것은 외부의 자극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스트레스는 절대 피할 수 없다. 살아있으려면 스트레스와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그럼 죽으라는 이야기인가? 새겨들으면 짜증나는 말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이와 반대되는 이야기도 있다. 소위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믿음이다. 워낙 스트레스에 대한 위험성이 널리 알려져서 그렇지만, 정말로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일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두 병에 걸릴까? 수도 없이 많은 질병의 원인이 오로지 스트레스 하나뿐이란 말인가? 그저 ‘스트레스가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뜻의 과장된 비유겠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이런 단정적인 이야기가 조심스럽다.

스트레스와 질병과의 상관관계는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질병을 만드는 경우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리반응이 바뀌고,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질병이 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특히 ‘기능성 질환’에 관련이 있다. 병명 앞에 ‘심인성’ 또는 ‘스트레스성’이라는 말이 붙는다. 여기에는 부정맥, 소화장애, 배뇨장애, 두통 등이 해당된다. 두 번째, 질병의 소인(素因)이 된다. 즉, 질병에 걸리기 쉬운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력이 떨어지기 쉽다. 면역이 떨어지니 결핵이나 독감과 같은 감염성 질환에 쉽게 걸린다. 요즘은 면역이 떨어지는 것보다 면역체계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스트레스 때문에 면역체계가 과하게 반응해 자신의 신체를 공격하는 루프스나 아토피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많아지고 있다. 세 번째는 질병을 악화시키는 경우이다. 아마도 거의 100%에 가까운 질병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악화된다. 감기부터 암에 이르기까지, 신체적 질병에서부터 정신적 질병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질환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악화되거나 잘 낫지를 않거나 쉽게 재발한다. 결국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다’라는 말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굳이 왜 스트레스 만병론을 꼬집느냐 하면, 마치 스트레스만 없어지면 아무 병도 없을 것이라는 착각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이다. 더불어 스트레스가 반드시 나쁜 측면만 있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스트레스는 무조건 나쁘다?

몸에 좋다고 알려진 미꾸라지를 운반할 때, 천적인 메기를 미꾸라지 수조에 함께 넣어둔다고 한다. 잡아먹으려고 쫓아다니는 메기 때문에 미꾸라지들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다. 메기를 함께 넣어둔 수조가 그렇지 않은 수조보다 미꾸라지가 훨씬 더 많이 살아남는다. ‘스트레스가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무조건 나쁘지 않다는 증거가 또 하나 있다.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있을 때 인지기능을 강화시킨다. 예를 들면, 시험 전날 암기가 잘 되거나 마감 전날 글이 잘 써진다. 또 미국 경찰국에서 한 실험에 의하면, 주변이 시끄러워 집중을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주변이 아주 조용한 경우보다 사격 명중률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이는 스트레스에 의한 긍정적 인지효과 때문이다. 물론,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경우에는 인지능력은 형편없이 떨어진다. 흔히 상담실을 찾는 건망증 환자의 많은 수가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다.

또한, 회사 조직과 같은 경우 집단의 스트레스는 구성원의 결속력과 수행력을 높인다. 별다른 경쟁 없이 정년이 보장되는 철가방 직종보다 어느 정도 외부 조직과 경쟁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직종이 훨씬 효율적인 이유이다.

다시 정 과장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현재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힘들다는 그에게 과거는 어떠했을까? 그가 미국 유학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한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초년병 시절 그의 프로젝트가 번번이 거절당했던 것은 지금처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어찌 보면 당시에는 살아남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로 괴로웠던 시절이다. 요즘처럼 ‘너무 잘 나가서’ 엄청난 업무량과 책임감으로 인한 압박감과 비교하자면, 어쩌면 더 절박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시절은 행복하게 느껴질까?

실제로 스트레스를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또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정 과장은 책임감이 유달리 강했다. 작은 책임에도 최선을 다하니 성실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지나치게 민감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되는 것이다. 또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다 그렇게 힘들었으니 자신이 힘든 것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 친구들 중에는 여유를 즐기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상대적인 박탈감 같은 것이 작용했을 수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요인 때문에 현재보다는 과거가 더 행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화려한 날들은 스트레스와 함께

그렇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고 어쩌면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기억의 불안정성’이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원하는 내용만 선택적으로 기억을 한다. 흔히 ‘추억’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 과거의 경험 중 원하는 것들만 모아 추려 놓은 ‘조작된 기억’일 뿐이다. 더불어 비록 의도적이지 않더라고, 시간은 기억을 왜곡시킨다. 물론 정 과장의 기억이 틀림없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행복과 불행은 감정의 문제이고, 이 감정은 시간이 가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쩌면 그는 과거에 더 불행했을지도 모르고, 아마도 10년 후에는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할지 모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한 이야기는 스트레스 문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만약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될 정도가 아니라면 너무 ‘스트레스, 스트레스’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일만은 아니다. 현명하게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원하는 행복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다보면, 다시 말해 현재의 스트레스가 미래를 위한 역전의 발판이 된다면, 온전치 못한 우리의 뇌는 이 시간 역시 미래의 준비를 위한 가장 화려했던 날들로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