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자업계에서 노키아와 소니는 몰락의 아이콘이다. 한 때 강력한 ICT 인프라를 바탕으로 세계를 호령했으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속절없이 퇴장한 노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며 노키아와 소니는 명가재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물론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이들은 혁명적인 변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자왕국 소니, 이미지센서 ‘대박’

글로벌 무대를 호령했던 ‘메이드 인 재팬’의 원조 소니는 일본의 부흥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전자왕국의 신화를 창조했던 강력한 브랜드다. 하지만 현재 소니는 백척간두에 몰렸다. 지난해 2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으며, 히라이 가즈오 CEO는 그 책임을 지기 위해 기자회견까지 열어 사과해야했다. 56년 동안 이어진 배당 기록도 중지됐으며 모바일 분야 직원 100여명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총체적 위기다.

소니의 위기를 초래한 결정타는 휴대폰 사업부의 실적부진이다. 새로운 엑스페리아 시리즈를 런칭하며 스마트폰 시장 3위를 노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으나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프리미엄에서는 애플과 삼성전자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으며 중저가 라인업은 샤오미와 화웨이 등 중국의 업체에 속수무책이다.

결국 소니는 '바이오(VAIO)‘의 몰락으로 불리는 PC사업을 매각하고 TV사업까지 분사시키는 한편, 전반적인 스마트폰 전략도 바꿨다. 지난달 27일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소니는 일본 저가 휴대폰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엑스페리아 구형 모델을 각 매장에 공격적으로 배치해 박리다매 형식으로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위기설은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니가 휴대폰 사업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으며 2100명에 달하는 휴대폰 사업관련 직원을 해고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히라이 가즈오 CEO 부임과 동시에 1만5000명을 감원하는 초강수로 체질개선에 나섰지만, 소니는 말 그대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그러나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소니의 부활이 임박했다는 소식이다. 일단 전반적인 엔저 약세와 유가 하락이라는 표면적 요인을 바탕으로 영상 센서와 각종 부품사업에서 상당한 수익이 기대된다.

▲ 히라이 가즈오 CEO. 출처=소니

가시적인 움직임도 포착된다. 현재 소니는 중국에서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4’을 통한 외연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원과 전면전을 선언하며 중국 당국의 각종 규제가 풀리는 ‘흐름’을 타겠다는 의미다. 스마트폰 게임이 전반적인 게임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담아낸 소니의 가정용 게임기가 어떤 파급력을 발휘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소니의 이러한 움직임을 ‘다양한 가능성의 보유’ 측면에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소니는 카메라부터 스마트폰, 편집장비, 영화산업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화룡정점은 이미지센서 대박이다. 2월 초 소니는 지난해 이미지센서를 비롯한 디바이스 부문이 무려 1조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3년 적자를 기록하던 이미지센서 분야가 소위 ‘대박’이 난 셈이다. 현재 소니는 글로벌 이미지센서 생산 점유율 40%를 장악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6년 3월 30%의 생산력 신장을 목표로 1050억엔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니 이미지센서의 부활은 사물인터넷 시대의 부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물과 인터넷의 ‘연결’을 촉발시키는 센서사업은 그 자체로 중요한 미래성장동력이며, 이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기술은 궁극적인 스마트시티의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 자체가 향후 비전을 의미하는 만큼, 소니의 이미지센서 사업 ‘대박’은 상당한 호재로 여겨진다.

히라이 가즈오 CEO는 소니의 신성장동력을 스마트폰, 이미지센서, 게임이라고 밝힌 바 있다. 비록 스마트폰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이미지센서와 게임은 그 자체로 막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고질적인 부서간 불통이 사라지며 구조조정까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조직문화가 장착되고 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소니의 부활은 이제 시작이다.

스마트폰 신화의 노키아, 네트워크로 거듭나다

지금이야 노키아를 휴대폰, 즉 전자업체의 대명사로 여기지만 원래 노키아의 본업은 제지회사였다. 1865년 설립된 노키아는 그 동안 제지, 화장품, 고무신 등 다양한 사업을 벌였으며 시대가 변할수록 그에 걸맞는 변신을 통해 세상에 적응해 왔다. 그런 이유로, 현재 노키아가 휴대폰 대신 네트워크 사업자로 변신한 것은 별로 놀랄일은 아니다.

하지만 노키아의 역사에서 휴대폰이 중요한 대목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변화가 없다. 실제로 노키아는 오랜기간 글로벌 휴대폰 시장의 왕자였으며 2009년까지 글로벌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노키아의 휴대폰 점유율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미비하다. 2013년 노키아는 휴대폰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노키아의 역사는 계속된다.

최근 노키아는 네트워크 전문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조직 자체를 바꿨다. 휴대전화 사업을 접고 2013년 4월 조직을 네트웍스 사업부, 히어(HERE) 사업부, 테크놀로지스 사업부 등 3개로 재편했다. 여기서 네트워크 사업부 조직이 가장 크고 강력하다. 사실상 노키아의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통신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을 담당한 기존의 ‘노키아 솔루션앤네트웍스’를 확대 재편한 네트워크 사업부는 노키아의 실적을 주도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여세를 몰아 노키아는 네트워크 분야에서 최대 10%에 달하는 수익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다가오는 5G 시대를 맞이해 노키아는 ‘커낵티드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며 싱글랜(Single RAN), 센트럴라이즈드 랜(Centralized RAN) 등 차별화된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통신사의 5G협력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사물인터넷 시대의 대비도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도 서비스인 ‘히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사물인터넷 플랫폼으로 부상하는 대목이 극적이다. 단순히 지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위치정보기술을 기반으로 삼아 지역의 다양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히어’는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 플랫폼으로 손색이 없다. 앞으로 노키아는 ‘히어’를 클라우드 및 지식기반 빅데이터와 연동해 서비스의 영역을 점진적으로 확대시킬 전망이다.

태블릿 시장에도 노키아 돌풍이 예고된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알루미늄 태블릿 N1의 생산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담당하지만, 내부에 장착되는 Z론처와 전반적인 N1의 설계는 노키아가 맡는다. 향후 태블릿을 넘어 패블릿의 접경지대에서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호재’가 될 전망이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의 실패를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네트워크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후로는 성공적이다.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한 아픔을 반면교사로 삼아 새로운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입했던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노키아는 살아남았다. 5G와 지도 서비스, 사물인터넷, 네트워크가 노키아의 새로운 성장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