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체질의 원칙은 ‘평생 체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체질별 한약은 섞어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갱년기가 되면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살이 찌거나 뚱뚱했던 사람이 마르기도 한다. 이런 경우도 단지 호르몬이 변화되었을 뿐 사상체질은 바뀐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평생 무엇 때문에 그런 걸까?

2011년 4월,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팀은 덴마크·일본·미국 등 6개 나라 400여명의 몸 안에 사는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인체의 장내에는 식물을 분류할 때 ‘종·속·과’를 나누듯 ‘과’에 속하는 ‘지배적 박테리아’에는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 프레보텔라(Prevotella), 루미노코쿠스(Ruminococcus) 등 3종류가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밖의 박테리아들은 이 3가지 유형의 ‘지배적 박테리아’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박테리아 유전자 연구팀은 지배적 박테리아를 기준으로 한 체질 분류에 ‘장형(腸型·Enterotypes)’이란 이름을 붙였다.

2011년 6월에 이 기사를 접한 필자는 하이델베르크의 연구소장을 찾아가 “왜 사람에게서 3가지의 지배 박테리아가 하나씩만 나오느냐”고 물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타고 난 것인지, 아니면 처음 먹는 음식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어찌 장내 박테리아만 그렇겠는가. 필자의 아버님은 얼굴의 코 왼쪽에 하얀 털 하나(산신령 털이라고 하기도 한다)가 길게 자라는 것을 자주 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면도를 하다 보니 필자 얼굴의, 정확히 아버님과 같은 자리에서 하얀 털 하나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후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우연히 가족들과 그 이야기를 하는데 옆에 있던 딸이 “아빠, 나도 그 자리에 하얀 털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피는 못 속인다더니, 털 하나에도 유전자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유전적으로 체질은 물려받는 것이라고 본다.

그 연구소장에게 한국에는 사상체질이라는 학문이 있어 4개의 체질로 나누는데,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을 것으로 보이니 공동연구를 해서 규명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10억원을 가지고 오면 해주겠다고 답했지만, 필자가 그해 8월 한국한의학연구원장에 재임되지 못해 연구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1998년 이미 한국에서도 한일생약 발전연구소(소장 고 김재백 약학박사)가 비슷한 결과를 찾아낸 바 있다. 이 연구소는 인삼 사포닌의 체내 흡수 메커니즘이 규명되는 과정에서 사포닌을 대사하는 장내 미생물의 존재를 밝혀냈다.

이 미생물 때문에 인삼 및 홍삼을 섭취했을 때 개인에 따라서 효과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사포닌(Saponin)은 대장 내에서 사포닌을 대사하는 특정 미생물에 의해 가수분해된 사포닌 대사물질로 변환되어야 체내로 흡수되고 흡수된 사포닌이 약효를 발휘하는데, 그 대사에 관여하는 미생물은 프레보텔라오리스로서 개인마다 식습관, 건강상태, 질병 유무, 동서양의 민족 차 등의 원인으로 개인차가 있다는 것이다.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이 장에 서식하는 세균 중 우리 몸에 유익한 ‘프레보텔라오리스’라는 세균과 만나 생기는 대사물질이 소음인의 암을 예방하는 작용을 한다. 만약 이런 ‘일종의 수용체(Receptor)’가 없으면 흡수되지 않고 그냥 배설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해 놓으면 종이를 가져가는 사람이 종이를 가져가고, 고철은 고물상이, 비닐은 비닐공장에서 가져가는 것과 같다.

이처럼 음식이나 한약은 분자량이 크기 때문에 먹는 것을 무조건 다 흡수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별 ‘일종의 수용체’가 선택적으로 흡수해 이화작용을 거쳐 에너지화하거나 체내에 필요한 요소들을 생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번 형성된 체질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 그에 맞는 음식이나 한약이 장내 환경에 따라 체질에 다르게 흡수되고, 다르게 기능하기 때문에 체질은 평생 변하지 않는다는 사상체질의 원칙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