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대표하는 ICT 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또 한번 붙었다. 이번에는 사이버 새배돈과 음원공유다. 보기에 따라 노골적인 경쟁사 죽이기로 비춰지며 진흙탕 싸움을 벌어닌 것으로 여겨지나, 한편으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사업다각화를 몰두하며 새로운 영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제조업 마인드에 가로막혀 신성장 동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국내 ICT 환경과 비교하면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중국을 넘어 글로벌 무대를 호령하는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자사의 지불결제 디바이스인 알리페이를 통해 세배돈을 송금할 수 있는 '훙바오 서비스' 홍보에 나서자 BAT의 한축인 텐센트가 즉각 견제에 나섰다. 2일 텐센트는 자사의 모바일 메신저 위챗에서 알리페이의 훙바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막아버렸다. 알리바바의 훙바오 서비스는 지난해 2월 처음 등장한 사이버 세배돈 서비스며, 지난해 설 연휴 당시 위챗 이용자 500만명이 홍바오 서비스를 통해 돈을 송금했을 정도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텐센트가 위챗을 통해 홍바오 서비스를 막은 사실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6억명에 달하는 위챗 사용자들의 원성을 버텨내며 홍바오 서비스를 차단한 배경에는 '알리바바 견제'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텐센트는 위챗의 홍바오 서비스를 차단한 이유로 "불법 마케팅을 근절하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했으나 이러한 해명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최근 알리바바가 중국정부로부터 '짝퉁상품 유통'의 온상지로 지목받은 사례와 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사실상 견제다. 심지어 텐센트는 위챗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알리페이의 사용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여기에 모바일 메신저 위챗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가진 텐센트의 위상도 재조명되고 있다. 텐센트는 지금까지 자국은 물론, 신흥시장에 진입하며 사실상 위챗을 선봉장으로 활용했으며 이를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발위하는 중이다. 이에 알리바바도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타진하며 라이왕 그룹과 공동으로 '라이왕'이라는 모바일 메신저를 출시했으나 실패했고, 최근에는 B2B에 방점을 찍은 딩톡을 출시하며 재차 텐센트의 위챗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텐센트의 위챗이 알리바바가 인수한 샤미뮤직, 왕이클라우드뮤직 등의 음원공유를 막아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왕이클라우드가 4일 성명을 통해 "특별한 이유가 없이 위챗이 음원공유를 중지했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텐센트의 일방적인 조치로 여겨진다. 일단 텐센트는 위챗의 서비스 안정도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라고 설명했으나 이 역시,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2013년 7월 텐센트가 위챗에서 알리바바 타오바오를 포함한 온라인 쇼핑몰 광고 계정을 삭제하자 알리바바가 타오바오 상인들의 위챗사용을 차단한 이후 지난해 4월 알리바바의 지분을 가진 시나웨이보가 위챗 기업계정 홍보를 막은 일이 있었다. 양사의 싸움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심지어 이들은 국내 게임시장에서도 무한경쟁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이미 국내 게임법인인 알리바바 코리아를 설립하고 파티게임즈, 네시삼십사분과 제휴를 맺었으며 텐센트는 다음카카오에 투자하는 한편, 넷마블에도 5억달러를 배팅했다.

사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뿐 아니라 바이두까지 참전한 BAT의 신경전은 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전투는 역시 국내에서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공유경제 기업 우버와, 스마트 택시 서비스다. 지난해 12월 우버는 바이두와 함께 중국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고 선언했다. 바이두의 모바일 기술과 지도 서비스, 우버의 인프라가 합쳐진 셈이다. 중국정부가 우버가 활용하는 구글 지도 서비스를 차단한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윈윈전략으로 여겨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버와 비슷한 기업에 이미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그림자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중국 스마트 기반의 유사택시 서비스는 알리바바가 투자한 콰이디다처가 54.4%, 디디다처가 44.9%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합치면 99%에 달한다. 우버 입장에서는 BAT의 또 다른 축이자 구글과 같은 포털 서비스 기업인 바이두와 협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바이두도 우버라는 강력한 우군을 바탕으로 알리바바와 텐센트를 흔들 수 있다.

글로벌 영화산업도 마찬가지다. BAT의 존재감이 뚜렷하다. 바이두는 지난해 2월 아쿠아멘 엔터테인먼트 제작사를 미국에 설립하고 4,000만 달러를 투자해 애니메이션 'Kong'을 제작하고 있으며 내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홍콩 영화사인 문화중국전파 그룹의 지분을 59.8% 인수했으며 소니 뮤직 등과 제휴를 맺은 텐센트는 텐센트는 미국의 HBO와 손을 잡은데 이어 영화 사업부 '텐센트 무비 플러스'를 통해 강력한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

▲ 출처=텐센트

스마트카 분야도 마찬가지다. 구글이 부럽지 않다. 공격적인 연구개발 인프라를 구축한 바이두는 무인자동차 프로토 모델을 공개하며 업계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텐센트는 인터넷 기반의 커넥티드카인 루바오 박스를 개발했다. 알리바바는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으로 내부OS 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BAT는 사물인터넷, 모바일 헬스케어 시장, 심지어 중국 콘솔 게임시장과 음식배달 서비스까지 섭렵하며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결국 BAT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너무 거대하고 무시무시해 주변 모든 것들이 숨죽이고 지켜보게 만든다. 고대 로마제국의 공화정 말기 벌어졌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의 내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일본의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의 역서인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삼두정치를 이룬 세 영웅의 격돌을 "거대한 코끼리가 제국 전역에서 무섭게 충돌했고, 주변부의 동물들은 그 두려움에 숨을 쉴 수 없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시공간을 뛰어 넘어 지금의 BAT를 설명하는 가장 극적인 묘사다.

이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ICT는 물론 소위 국내를 대표한다는 기업들은 새로운 영역에서 경쟁자와 다투기는 커녕, 아예 경쟁 자체에도 소극적인 태세를 보이고 있다. 그 지독한 제조업 마인드가 안정적인 수익원을 포기하고 신세계로 떠나는 동력을 막아버리는 분위기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의 실책도 크다. 알리바바가 솔로데이를 만들어 매출 신기록을 세우는 사이 대한민국 정부는 헤프닝으로 밝혀졌지만 소위 '독신세'나 운운하며 헛발질이나 했다. 이런 현상이 정상일까? BAT의 전방위적 외연 확장을 우리 정부와 기업이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중국 정부처럼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내쫒아 자국기업을 온실 속 화초로 만들어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외국 IT기업의 소스코드를 강제로 공개하게 만들고 반독점 법으로 옭아매거나 자국의 ICT 기업을 정보전에 활용하라는 뜻도 아니다. 극단적인 보호정책을 버려도 충분히 기회를 줄 수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의 백척간두에서 얻어낼 수 있는 마지막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