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정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오큘러스 리프트가 개발한 가상현실(VR)기술의 원천기술은 이전의 VR기술들과는 달리 화면으로 직접 들어가서 가상공간을 느끼는 실감체험기술이다.

페이스북은 오큘러스 리프트의 기술 가치를 높이 인정하여 20억달러를 주고 이 벤처기업을 전격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페이스북과 손잡고 기어 VR기술을 단시간 내에 개발해냈다. 최고의 하드웨어 기술을 보유한 삼성전자와 최고의 VR 소프트웨어 기술을 가진 오큘러스 리프트가 결합해서 만든 기어 VR기술이 주목받은 이유다. 이미 지난해 9월 베를린에서 기어 VR 공개행사를 치렀지만 실제로 시판되는 시점은 올해 초부터다.

오큘러스 리프트가 개발해온 VR기술은 PC나 노트북에서 구동되는 소프트웨어를 케이블로 연결해 VR기기에 달린 화면재생장치에서 영상을 체험하는 원리다. PC에서 컴퓨터 게임을 할 경우엔 마우스나 게임패드의 스틱을 움직여서 화면을 조정한다. 그러나 VR게임은 머리를 움직여서 화면을 조정하게 된다. 오큘러스가 PC를 기본으로 VR기술을 개발한 이유는 머리에 착용한 작은 장비 속에 3차원 게임을 처리할 고성능 컴퓨터를 삽입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버겁기 때문이다.

반면에 삼성이 개발한 기어 VR은 모바일 환경에 맞게 컴퓨터를 헤드셋 속에 삽입한 제품이다. 즉, VR장비 속에 갤럭시 노트4를 장착해서 컴퓨터 역할을 하도록 설계했다. 장비무게는 증가했지만 케이블이 달려 있지 않아서 움직임이 자유롭다.

머리에 쓰는 모든 디스플레이는 HMD(머리착용화면재생기)라고 부른다. 구글 안경도 HMD의 일종이고 기어 VR도 HMD의 일종이다. 머리에 착용하는 화면재생기의 문제점은 머리를 움직이면 화면 영상의 잔상이 번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보통 20분 이상 착용하면 두통을 호소한다고 한다. 두통 문제는 구글 안경 사용자들에게서도 공통으로 제기되었던 불만사항이다. 두통이 발생하는 현상을 없애려면 화면전환처리속도가 20ms 이하가 돼야 한다고 한다. 삼성은 LCD보다 반응속도가 빠른 AMOLED 디스플레이를 채택했다. 삼성 측의 판단은 AMOLED 디스플레이라면 VR장비에 맞게 빠른 속도로 화면전환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일반적으로 스마트폰에 채용하는 센서들은 저급 사양의 센서들이다. 기어 VR의 장점은 머리의 움직임 감지를 스마트폰의 센서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고급 성능의 가속도 센서, 자이로 센서, 자기 센서, 근접 센서 등을 장착하고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서 발생하는 잔상효과를 없애주는 기술을 채용했다. 또한, 갤럭시 노트4가 채용한 고선명 화소덕분에 VR 헤드셋이 보여줄 수 있는 입체감을 높여줬다. 삼성전자의 발표화면에 의하면 2m 전방에 4.546m의 화면이 펼쳐지는 효과를 주며 시야각이 96도로 몰입감이 충분히 발휘된다고 주장한다.

▲ 사진=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 홈페이지

가상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VR기술의 확산은 콘텐츠 개발에 달렸다. 삼성전자는 디즈니, 드림웍스, 워너브라더스 등 영화 배급사와 협력해 다양한 동영상 콘텐츠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일반 극장에서 제공하는 16:9, 21:9 비율의 화면과 달리, 가상현실을 이용하면 1:1 비율의 아이맥스 콘텐츠가 제격이다. VR장비로 영화를 보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인이 되고, <변호인>을 보면 법정의 방청객이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를 다차원의 디지털 소프트웨어로 개발하면 영화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마음대로 조정해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게 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시각으로 장면을 보기도 하고, 상대역 배우의 시각으로 주인공을 바라보는 것도 궁극적으로 가능해진다. 지금까지 영화 관람이 단순히 제3자인 관객의 시선에서 이루어졌다면, VR 공간 속에서의 영화 관람은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서 사건의 흐름을 감상할 수가 있다. 뮤지컬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함께 춤추며 노래 부를 수도 있게 된다. 아이맥스 콘텐츠를 VR로 감상할 수 있게 된다면 극장을 향한 발걸음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콘텐츠의 흐름은 관광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화와 달리 여행은 현지 생활체험이 중요하지만 역사적 유물을 관광하는 일은 VR관광이 오히려 더 세밀하고 구체적일 수 있다. VR관광은 눈으로 유물을 관람하는 것을 넘어서서 역사적 현장까지 연결해주는 소프트웨어의 개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입체적인 콘텐츠 개발기법은 교육시장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모든 학습과정은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입체공간 속에서 체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학습이 아닌 손으로 직접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해 보는 실습이 가능해진다. 직업교육현장에서부터 시작해 종국에는 학교 교육시장에서도 자연과학 실험을 중심으로 퍼져 나갈 수 있다.

공간 속에 가상이미지를 겹쳐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10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홀로렌즈(Holo Lens)라는 홀로그래픽 컴퓨터를 깜짝 발표했다. 이는 고글(Goggle)형 컴퓨터로 기어 VR 같은 모양의 HMD다. 자체 장비 내에 CPU, GPU 그리고 홀로그래픽처리장치(HPU)를 내장하고 있다. 이 HPU는 시야에 비친 장면과 동작제어 그리고 음성명령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 기존의 VR과 달리 현실공간에 가상이미지를 겹쳐주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장비다. 주변 공간에 홀로그램 영상을 띄우고 동작 또는 음성으로 명령을 내려 그래픽을 처리하는 기술을 실현하고 있다. 고선명 화면을 구사하고 실시간으로 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을 만큼 고속 컴퓨팅 능력도 갖췄다. 컴퓨팅 성능이 좋아 3차원 홀로그램을 쉽게 만들고, 고치고, 옮길 수 있다. 지금까지 컴퓨터는 마우스나 터치스크린으로 작동했지만 홀로그램을 이용하면 앱이나 정보, 3차원 영상조차도 공간 속에서 손으로 잡아 옮길 수 있다. 삼성 기어 VR기술은 사람이 가상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데 비해 홀로렌즈 AR기술은 실제 공간 속에서 가상 이미지나 영상을 끌어다 조작한다는 점이 다르다.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있는 나사(NASA) 제트 추진 연구소는 홀로렌즈 기술을 활용해서 ‘온사이트(OnSight)라는 증강현실(AR)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 기술은 과학자들이 화성에 직접 가서 탐사활동을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주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온사이트’는 화성에서 활동 중인 화성탐사선 ‘큐리오시티(Curiosity)’가 측정한 3차원 지형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뮬레이션된 입체공간을 지상으로 끌어온다. 과학자들이 홀로렌즈를 착용하면 ‘온사이트’가 만들어준 가상공간을 지상에서 조작할 수 있어 화성표면을 직접 관찰하는 효과를 얻는다.

이 기술은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 우주선을 가상공간에서 조종하는 기술로 발전시킬 수 있다. NASA는 인간이 장거리의 우주탐사를 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어서 앞으로 로봇들을 이용해서 우주탐사를 할 계획이다. 따라서 앞으로 로봇이 몰고 갈 우주선을 지상통제센터의 과학자들이 직접 우주선 속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지상에서 가상공간으로 확인하면서 조종하는 꿈을 꾸고 있다.

가상과 현실이 뒤섞인다

모르페우스(Morpheus)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꿈의 신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모든 장면은 실체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시뮬레이션한 공간이라고 한다. 이 꿈의 세계를 조종하는 등장인물 모르페우스(Morpheus)가 실체(Reality)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실체가 무엇인가? 실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네가 귀로 듣고, 냄새 맡고, 피부로 느끼는 것을 실체라고 말한다면, 실체란 단순히 너의 두뇌가 번역한 전기적 신호일 뿐이다.”

즉, 두뇌는 실체이지만 감각기관이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은 모든 것은 외부 세계를 머리로 해석한 결과일 뿐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두뇌의 해석결과를 외부 세계와 맞춰가면서 사물을 인지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실체라고 믿는 두뇌 시뮬레이션 공간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색깔이나 냄새 그리고 맛이란 그 본질이 갖는 성질들이 아니고 두뇌가 인식하는 과정에서 학습한 방식대로 정성적으로 분류한 것에 불과하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두뇌에 설치된 인식의 필터에서 일차적으로 걸러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VR기기나 AR기기가 제공하는 가상정보들도 마찬가지다. 그 정보가 실체냐, 시뮬레이션된 허상이냐는 두뇌가 감지하기에 달려 있다. 콘텐츠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인간의 두뇌는 실체와 가상을 제대로 구분해 내지 못하는 매트릭스 세상을 헤매게 될 것 같다.

 http://www.microsoft.com/microsoft-hololens/e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