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천국’ 미국에서도 골프가 사양산업이 됐다. 미국 골프 브랜드인 테일러메이드의 지난해 2분기 매출은 무려 20% 하락했고, 캘러웨이 골프 역시 같은 기간 7% 하락했다. 미 국립골프재단은 2003년 당시 3000만명에 달했던 미국 골프 인구가 2014년 현재 약 2500만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유럽에서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골프산업은 사실상 선진국에서는 사양산업인 동시에 포화산업이다.

그렇지만 대륙에서의 사정은 좀 다르다. 세계 최대 골프장을 보유하고 있는 미션힐스 그룹 테니얼 추 부회장은 14억의 중국 인구 중 2%만 골프를 즐긴다고 가정해도 세계 최대의 골프시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중국 인구를 가지고 설명하니 그 가능성은 충분히 알겠는데, 요즘 중국에서 골프를 마음 놓고 치기는 쉽지 않다. 중국의 적폐인 부패문제를 척결하겠다고 나선 시진핑 주석이 베이징, 광저우, 선양 등에 위치한 골프장들의 문을 강제로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중국의 골프는 1949년 공산혁명 이후 ‘부르주아 계급의 여가’라는 이유로 공식적으로 금지된 후 1980년대 초 허용됐다가 2004년 이후 신규 골프장 건설이 중단된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 내에 지어진 골프장이 1000개가 넘는다는 비공식 집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골프인구는 ‘0’명이라는 말이 나왔다.

중국에서 골프장은 공무원에게 뇌물이나 향응을 제공하고 짓는 불법시설물이고, 골프는 고위 공무원들이나 이들과 유착관계를 가진 상류층이 즐기는 사치 활동이다. 이에 대해 시진핑은 신규 골프 코스 건립을 철저히 단속하고 추가로 골프장의 강제 폐쇄를 단행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골프의 인기는 여전히 ‘은밀하고 위대’하다. 중국인에게 골프는, 골프가 대중화되기 전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질시와 비난의 대상인 동시에 성공의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골프장 이용요금도 미국에 비해 훨씬 비싸서 1회 라운드 요금이 150달러 이상이다. 이 나라의 10억이 넘는 사람들이 하루 5달러 이하의 수입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대단히 높은 비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골프는 ‘황제 스포츠’ 아니 ‘녹색 아편’이 되어 상류층에 파고들었다.

올해 초 아부다비에서 열린 HSBC 골프포럼에서도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시장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크게 부상했다. 특히, 중국 경제가 올해 7.5%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상황에서 자일스 모건(Giles Morgan) HSBC 스폰서십 그룹 총괄담당자는 중국 골프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2013년에 나온 맥킨지 쿼터리 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중국의 중산층은 약 6배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 중국의 도시화는 2020년까지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며, 도시에 거주하는 중국의 중산층 또한 계속해서 두터워질 예정이다. 맥킨지의 도미니크 바튼 글로벌 부사장은 2020년에는 중국 중산층은 6억3000만명에 달해 전 인구의 45%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온라인 마케팅업체인 골프비즈니스모니터의 미클로슈 브라이트네르(Miklós Breitner) 대표는 2012년 중국 중산층의 1.72%가 골프를 즐긴다고 했다. 현재 중국의 중산층이 전 인구의 2/3 이상인 것을 감안할 때 중국 내 골프인구는 수백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정보컨설팅업체인 후이디안 리서치도 작년 3월에 발행한 ‘중국의 골프 산업 조사 및 투자 전망’ 보고서에서 중국의 총 골프인구를 약 92만명에서 110만명으로 추정했다.

후이디안 리서치는 향후 몇 년간 중국인의 소득 증가 및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으로 골프인구는 약 12%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골프 제품산업의 생산규모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라고 했다.

맥킨지 리포트도 2020년 중국의 도시거주민 중 절반이 가지는 가처분 소득, 즉 개인소득 중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1만6000달러에서 3만4000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중국 내 중산층들이 여행이나 취미에 쓸 수 있는 여윳돈이 늘어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중국 내에서 골프 붐은 부동산업자들에 의해 열기를 더해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토지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용도로 거대한 파빌리온과 많은 종업원이 딸린 고급 골프장을 지었다.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는 고급 빌라에 골프장을 함께 지어 분양하는 것이 유행이 됐다.

하지만 브라이트네르는 중국에서 골프산업이 빠른 시일 내에 크게 발전할 것이란 전망에 대해서는 얼마간의 의문을 갖고 있다. 그는 여러 긍정적인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정부 규제로 인해 중국의 골프 코스 등의 성장이 지난 3년간 급격히 떨어진 것을 우려했다. 2010년 52개의 골프 코스가 지어졌으나 이듬해인 2011년에는 겨우 45곳, 2012년에는 39곳만이 지어지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의 규제 외에도 중국의 골프 성장이 멈춘 것을 두고 중국 골프시장이 과대평가됐다는 가설을 내놨다. 그렇다면 그는 중국이 골프를 배구나 배드민턴처럼 대중적인 운동으로 만들 현실적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골프를 스포츠로써 육성하고 대중화한다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하지만 중국 골프 산업의 장밋빛 미래에 대해서는 성급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브라이트네르는 중국 골프산업에도 여전히 남은 기회들이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골프가 지위의 상징인 탓에 럭셔리 제품 선호가 두드러진다. 중국 내 럭셔리 골프용품에 대한 수요는 전체 산업과 무관하게 계속해서 높은 수준이다.

중국의 골프족들은 값비싼 골프연습용품, 골프 액세서리, 골프 의류 등에도 아낌없이 돈을 쓴다. 2013년 골프장 건립 중단으로 골프업계가 주춤할 때에도 중국의 골프 제품 산출액은 2012년 58억위안에서 10.34% 증가한 64억위안을 기록했다. 또한, 국제적인 호텔·리조트 체인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스파, 쇼핑, 숙박과 함께 풀코스의 럭셔리한 골프 여행을 즐길 수 있다며 중국 골프족을 유혹한다.

그리고 골프업계의 영원한 숙제였던 여성 골퍼 부족 문제도 중국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74% 여성이 소득을 가지고 있어 여성들을 위한 합리적인 제품과 프로그램으로 접근한다면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소문난 축구광인 시진핑 주석은 2015년 새해에도 골프와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과 개최가 소원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그에게 골프는 여전히 ‘녹색 아편’이다. 하지만 중국의 상류층과 거센 기세로 성장하는 중산층은 이미 이 스포츠에 중독돼 가고 있으니 시 주석은 이기기 어려운 게임을 시작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