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난 수천년간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하며 세계의 중심축으로 패권국가 지위를 누려왔다. 멸시천대 받으며 냄새나고 미개한 사람 취급받은 건 문화혁명 이후 극빈해진 뒤 수십년의 아주 짧은 기간이었고, 우리의 짧은 경험의 스펙트럼엔 그 기간만 도드라져 보여 중국 하면 왠지 모르게 뒤떨어져 보이고 뭔가 촌스럽다는 편견을 가지게 됐다.

경영/투자 칼럼니스트, 한국 중국에서 기업상장, 인수합병 자문, 사모펀드 투자업무 수행. 현재는 대기업에서 해외투자검토 업무를 담당. 중국 CKGSB MBA

그래서 요즘 명동에 중국 간판이 즐비해지고, 서울 지하철에 중국인이 가득하면 불쾌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샤오미가 삼성의 시장점유율을 갉아먹으면 발끈하고 짝퉁 천국 중국을 타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중국은 거리낌 없이 잘 베끼고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한참 멀리서 열심히 자신들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멀지 않은 시점에 그 격차는 좁혀지고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규범적 틀 안으로 들어올 것이며, 결국 규모의 성장을 질적 성장으로 승화시켜서 예전의 자연스러운 패권국가의 형상을 회복할 것이다.

지금 중국은 세계 경제규모 2위의 국가로 우뚝 서 있고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패러다임에도 정면 도전하지 않으면서 오묘한 공생관계를 잘 이어나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채권채무 관계로 허니문을 잘 보냈고, 지금은 미국이 생산, 중국이 소비하는 관계로 안정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중국의 혁신적 인재들은 미국에서 위탁교육을 받고 중국으로 돌아와 초대박을 이어가고, 실리콘밸리의 자금줄은 중국 북경의 중관촌 심천 IT단지에서 투자기업을 물색한다. 알리바바는 중국 증권시장이 아니라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해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상장 기록을 경신했고, 레노버는 IBM, 모토로라를 연이어 인수했다.

얼핏 긴장감 넘치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결론만 보면 훈훈한 공생관계다. 동상이몽이면 어떤가, 어쨌든 같은 침대에 있으면 닮아간다. 러시아는 착각하면 안 된다. 중국은 러시아의 친구가 아니라 러시아가 호구 잡힌다는 사실을. 중국과 미국의 치정극에서 러시아는 악녀 조연으로 양쪽에서 따귀 맞고 중도 탈락하는 운명이다.

유가하락의 가장 큰 경제적 이득은 미국의 셰일 개발자가 아니라 중국의 에너지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세계 에너지 소비 증가분의 대부분은 중국이 차지한다. 중국이 잘돼야 미국도 잘되는 연결고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왕서방이 등 따시고 배불러야 미국 카우보이도 스테이크를 썰 수 있다.

중국은 집단지도 체제의 공고한 정치체제가 버티고, 장기적 국가전략이 절대 정략적 목적으로 활용되어 중도 폐기되지 않는다. 정치적 안정성과 인권 자유가 중국에서는 자연스러운 트레이드오프(Trade off) 관계로 인식된다. 청년지식인들이 공산당을 지지하는 이유다. 마오쩌둥의 아들이 모두 젊은 나이에 죽고 굳어진 집단지도체제는 은근한 견제와 균형을 가져다준다.

인류 최고의 상형문자인 한자는 중국인의 자부심이자 대동단결의 구심점이다. 미국, 유럽에는 이런 공고한 구심점이 없다. 하나의 언어문화권은 강력한 응집력을 준다.

중국인은 뼛속 깊숙한 곳까지 자본가다. 그냥 모두 돈으로 해결하려는 저렴한 마인드, 자본주의 태생 이전에 이미 자본주의가 장착된 민족이라고 보면 된다. 실크로드에서 낙타를 타고 협상하던 습성이 수천년에 걸쳐서 내려왔다. 알리바바가 전자상거래 세계 1위인 데는 이유가 있다. 바이두는 절대 구글을 능가할 수 없다. 중국인은 호기심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있다.

이런 중국의 이점들은 2015년에 더 빛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 고로 2015년의 화두는 G2의 양대패권 공고화이다. 한국은 G2와 이래저래 매우 가깝고 긴밀한 나라다. 기회가 될지 아니면 소외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메가박스가 5천억 넘게 중국 자본에 넘어가고, 텐센트가 한국 게임기업 카카오에 자금을 투자하고, 제주도가 중국 아줌마들의 투기 놀이터가 되었는데, 아직 중국엔 더 많은 돈이 대기 중이다.

서울 집값은 이제 중국 아줌마들 입김이 결정하고 오피스 빌딩도 중국 개발상에게 줄줄이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게 정말 기분 나쁜 일일까? 비싸게 잘 팔고 중국 자본을 활용하는 편이 속 편하고 실속 있지 않을까?

경제 대국 일본, 전통의 패권국 중국을 정말 아주 간편하게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만큼 친근해서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가 더 낳은데 하는 은근한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유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차가운 현실은 일본, 중국은 모두 한국과 이미 비교 불가능한 비중의 세계 경제 2, 3위의 국가라는 것이다. 실리를 챙기고 현실을 직시하려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고, 중국의 미래를 수천년의 긴 스펙트럼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