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역 상권을 놓고 애경과 롯데 간 한판 싸움이 뜨겁다. 수원역사를 중심으로 주변 일대 상권을 선점하고 있던 애경그룹에 도발적 공격을 한 곳이 롯데그룹. 싸움은 벌써 한 달 째다. 수원역 유동인구의 향배에 따라 양자간 수원역 공방의 승패가 판가름 날 예정이다.

 

라운드 1: 롯데, 수원역 터줏대감 애경에 도발하다

 

▲ 애경그룹이 증축한 쇼핑몰 AK&과 노보텔 앰배서더 수원이 이어져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애경-롯데 격돌의 서막은 이러하다. 애경은 지난 2003년 수원역사에 AK프라자를 지으며 민자역사(민간 자본으로 건설된 역)로서의 기능을 해왔다.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원시민들과 지역밀착형으로 친밀감을 다지며 수원역 일대의 상권을 키운 대표 공신이기도 하다.

수원역은 역 앞 매산로를 중심으로 주변 상가들이 일어서더니 수원역에 분당선이 이어지며 지하철 1호선과 KTX, 경부선, 호남선 등의 주요 철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가 됐다. 서울역에 이어 전국에서 제일 사람이 많이 다니는 역 2위로, 하루 30만 명의 유동인구가 수원역을 지난다. 오는 2015년 말(늦으면 2016년 초)에는 수원역에서 인천을 잇는 수인선이 분당선과 이어질 예정이니 과연 여러 기업들이 ‘경기 남부 최대 교통지’로 여기며 수원역을 노리는 까닭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수원역과 함께 커온 애경그룹의 AK프라자 수원점은 어느새 AK프라자 수입 비중의 2위를 차지, 1위인 분당점을 노릴 정도로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었다. 그 안정적인 상권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바로 롯데몰이다.

롯데몰은 수원역사 서측인 1호선 바로 옆, KCC시멘트 공장이 사라진 빈 터에 자리 잡았다. 그것도 지상 8층, 지하 3층, 총 23만3000㎡ 규모의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쇼핑몰, 롯데시네마가 같이 있는 또 하나의 ‘롯데 월드’였다.

애경은 온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세계 유통 공룡이 아마존이라면 국내 시장의 유통 공룡은 롯데그룹이다. 국내 1위 유통기업 롯데가 지난 11월 27일 그랜드 오픈을 하자 애경은 이어 지난 4일 AK프라자 옆에 쇼핑몰 AK&을 세웠다. 그리고 다시 그 옆에 세계 1위 호텔 체인그룹인 아코르그룹과 협약을 맺고 애경이 운영하는 첫 호텔, ‘노보텔 앰배서더 수원’을 18일 오픈했다. 그렇게 애경은 공룡 앞에서 몸집 부풀리기를 시도했고 수원역사를 방패삼아 애경의 백화점과 쇼핑몰, 영화관, 호텔까지 롯데몰에 대항하는 ‘AK 월드’를 건설했다.

 

라운드 2: 원수는 '수원역사 구름다리'에서 만나다

 

▲ 롯데몰에 가기위한 방법. 바로 가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 사진=이코노믹리뷰 허은선 기자

롯데는 지금 롯데몰 수원역점을 두고 고민이 많다. 라이벌인 애경그룹의 협력이 필요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경이 뿌리 깊게 들어와 있던 자리에 굴러온 돌인 만큼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태다.

롯데몰은 현재 수원역과 300m도 채 떨어져있지 않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역에서 밖으로 나와 다시 롯데몰로 들어가기가 번잡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애경의 쇼핑시설들이 역과 바로 이어져 있다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수원역을 지나는 유동인구를 잡기 위해서는 역과 롯데몰의 연결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역과 롯데몰 사이에는 버스환승센터가 들어서기 위한 공사가 한창 중이라 고객들이 롯데몰을 향하기 위해서는 직선거리의 두 배 정도나 되는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

롯데는 본래 롯데몰과 역사 사이에 구름다리를 세우기로 계획했었다. 그리고 그 공사는 다리가 역사에 닿을 10여 m 전 즈음, 그곳에서 끝이 났다. 다리는 역과의 연결통로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역에 손만 뻗은 채 완공돼야했다. 애경이 협의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 곳에 몰을 세웠다면 누구라도 다리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을겁니다. 그리고 당연히 다리가 이어질 줄 알았죠” 롯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수원역은 민자역사로서 애경그룹이 투자한 바 있다. 심지어 애경그룹은 계열사인 AK S&D가 지분 84.2%를 보유한 수원역의 최대주주로 자리 잡고 있다. 애경 입장에서는 롯데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수가 없다. 수원애경역사의 심상보 대표는 역사에 구름다리를 이으려는 롯데의 의도가 어이없다. “롯데는 이미 (구청과) 약속된 부분까지 공사가 끝난 상태고 역사까지 확장한다는 협의는 없던 상태예요. 만약 마음대로 확장하면 그건 불법이 되는 거죠. 그리고 롯데에게 길을 터주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어요?” 구름다리를 허락한다는 것은 제 살 깎아먹는 이야기라는 의미다. 심 대표는 이미 수원시에서 주민들에게 필요한 인프라는 이미 갖춰놓은 상태며, 롯데가 세우려는 구름다리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롯데의 욕심이라고 덧붙였다.

롯데 측에서도 구름다리 설치에 대한 나름의 근거는 있다. “역사라는 것은 공공성을 띄는 건물이 아닙니까? 애경에서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을 내세워 합의를 안 해주는 것은 잘못된 행위죠. 모든 시민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상태입니다. 고객들의 가장 큰 컴플레인이 바로 이 문제예요” 롯데 측은 한숨을 쉬며 억울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수원시청의 입장도 난처하다. 동선이 불편하다는 시민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시청은 기업의 요청도 민원이기에 어느 한 편을 들 수는 없으며 한 쪽에게 강제성을 부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 문제는 2016년 환승센터가 생기면 롯데의 구름다리가 환승센터로, 역사로 이어지며 해결되기에 완공 시기를 조금 더 앞당기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전평: 기업 싸움에 시민 '등만 터진다?'

 

▲ 롯데가 세운 구름다리는 끝내 수원역사에 닿지 않았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AK프라자에 AK& 쇼핑몰, 롯데몰까지 들어섰으니 수원시민들의 쇼핑 선택폭이 넓어져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유통 기업들의 땅따먹기 싸움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롯데의 구름다리도 시각적으로나 동선의 부분에서나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교통문제다. 현재도 교통체증이 심한 수원역에 롯데몰이 들어서며 교통량이 더 늘 것이라는 예측에 근처를 지나는 시민들은 생각만으로도 답이 없다는 입장이다. 수원역 주변에는 이미 많은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해 우회도로를 만들었지만 이 방법으로는 턱도 없다. 역사 뒤편에 버스환승센터를 만드는 이유도 버스라도 분산시켜 교통량을 줄여보자는 취지에서다.

쇼핑몰을 이용하는 고객들 입장에서도 불만이 가득하다. 없던 주차비가 생겼기 때문이다. 롯데몰이 들어서며 시청의 방침에 따라 각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해도 일정 금액을 지불하게 됐다. 1시간 기준 미구매 고객은 AK프라자를 이용할 경우 4000원을, 롯데몰은 3500원을 지불해야한다. 애경은 롯데몰이 생기기 이전까지 여성고객에게 구매 영수증이 없이 2시간 동안 무료 주차가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제는 제품을 사도 돈을 지불해야 하니 전후 배경을 알지 못하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바뀐 방침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롯데는 애경보다 주차비가 조금 싼 편이지만 신규로 들어온 입장이라 주차예약제라는 옵션이 붙었다. “(롯데몰은) 아예 가보지도 않았어요. 사전예약제라는 말에 굳이 갈 필요성을 못 느끼겠더라고요.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방식인데 중년의 어른들은 가고 싶어도 힘들죠” 수원에 사는 한 주민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수원역 주변의 전통시장 상인들은 눈물이 흐르다 못해 메마른 상태다. 애경이 들어선 후에도 큰 타격을 입었는데 롯데까지 들어오니 그들의 설 곳은 이미 남아있지도 않다. 수원시상인연합회는 롯데몰이 들어선다는 말을 듣고 집회까지 나섰다. 상인들은 롯데몰이 들어서면 10년 전 애경이 들어설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롯데와 시장 상인들은 피해보상 액수에 대한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충돌하기도 했다. 상인들은 피해의 규모를 500억 원으로 잡았으나 롯데 측은 177억 원을 제시해 너무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수원시의 중재로 지난 10월 전통시장을 현대화시키는데 롯데그룹이 140억 원, 수원시가 30억 원, 총 17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롯데는 본래 계획에서 3개월이나 늦은 11월 말에나 롯데몰을 오픈할 수 있었다. 현재 지역상인들은 롯데몰의 오픈을 보며 전통시장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