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경쟁 내몰린 직장인들 스트레스 증후군
창조·소통경영 가로막고 사회 갈등 확대 재생산

1등만 살아남는다.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다. 2등은 의미가 없다. 국내 기업의 경영 전략은 다 똑같을 게다. 승리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1등주의는 한국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 경쟁 과정에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는 불면증을 유발하고, 직장 동료를 믿지 못해 소통을 단절시킨다. 어떤 직장인은 과도한 스트레스성 우울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문제는 높은 직급에 오를수록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다는 점이다. 조직은 리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리더가 흔들리면 조직이 휘청거린다. 소통을 가로막고 승자와 패자의 갈등을 부추기는 1등주의 경영전략. 경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좀먹고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1등주의 문제를 심층 진단하고 나름의 대책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대기업 30대 임원 나도 몰래 ‘사이코’가 되다

대기업 S사에 다니는 30대 임원 안형모(38)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입사 이후 일에만 몰두했다. 목표로 했던 대기업에 입사를 했고,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즐겁게 열심히 일을 한 결과 승진도 빨랐다. 37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사 자리를 꿰찼으니 고속 승진이다.

고민 하나 없을 것 같은 안씨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스트레스 때문이다. 면을 제외한 소재의 천이 몸에 닿으면 미칠 듯 가려웠다. 알레르기 정도로 놔두기엔 온몸에 빨개지는 등 심각했다. 치료를 위해 부인과 함께 한의원을 찾았던 그는 의사로 부터 스트레스성 질환을 판정받았다.

피부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사이코가 너무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의사 질문에 대한 답이다.

대기업 CEO 동네 슈퍼 주인을 부러워하다

김현수(53)씨는 CEO다. 그것도 직장인의 꿈인 대기업 계열사 CEO다. 사원에서 CEO까지 올랐으니 항상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40년지기 친구로 동네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친구는 “네가 제일 성공했다”며 그를 부러워한다.

“친구들 만날 때가 가장 힘이 든다”는 김씨. 그는 오히려 동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친구가 제일 부럽다고 했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란다.

그는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부담과 위에서 누르는 압박을 온몸으로 견뎌내다 보니 남은 건 원형탈모와 우울증뿐이다”라고 했다. 바쁜 일상에 쫓기며 경쟁만 하며 살다 보니 취미는 사라졌고, 스트레스로 인한 짜증이 늘어 주변에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속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하고 싶지만 격에 맞는 사람과 만나다 보니 쉽지가 않다.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 가족과 관계도 멀어진 그는 “가끔 극단적인 생각을 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직장인들이 ‘1등주의 스트레스’에 흔들리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고위 직원, 임원급의 문제가 심각하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잠을 줄이고, 그래도 안 되면 직장 동료를 견제 할 만한 것을 찾아 나선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구조에서 패자는 낙오자일 뿐이다. 임원급 이상은 대부분이 우울증과 같은 스트레스성 질환을 앓고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가 지난해 대기업 임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46%가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54%는 경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표 참조>.

윤 교수는 “고위급 임원일수록 업무상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다”고 말했다. 성공한 사람으로서 우울증을 숨기는 경우가 많아 치료도 쉽지 않다고 했다. 대기업 임원의 자살 등 극단적 행동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꼽았다.

평직원들도 스트레스로 힘들긴 마찬가지다. 사원 때부터 ‘지옥경쟁’을 벌여야 한다. 직장인의 별인 임원에 오르기 위해선 동료 직원, 선배를 넘어서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동료와 선후배 10명을 잘라야 승진할 수 있다’는 말이 정설이 됐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협회에 가입된 전체 직원 수는 80만 명에 달한다. 공식 집계 되지 않은 직원까지 포함하면 100만 명이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중 전체 임원 수는 1만3237명이 전부다. 어림잡아 10:1의 경쟁률이다. CEO는 1050명으로 100:1이란 경쟁률을 보인다. 적게는 10명, 많게는 100명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경쟁을 해한다는 얘기다.

경쟁만 남은 직장이란 정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당장의 성과는 좋을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최근 많이 사용되는 좋은 경제용어가 뇌에 안 좋은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 외에도 글로벌 경영, 24H 위기관리, 고객 서비스 만족 등 복잡해지는 환경에서 직장인이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직원의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불면증에 의한 무기력증에 의해 업무 효율이 줄어든다. 건망 증, 민감한 반응(짜증)은 각각 창조성을 내세운 아이디어 경영을, 민감한 반응은 직원의 소통 경영을 가로막는 벽이다. 1등주의의 경영 전략이 스트레스를 유발, 글로벌 시대에 꼭 필요하다는 경영 트렌드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1등주의 경영전략을 바꾸거나, 임직원의 스트레스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기업이 내세우고 있는 창조경영과 소통경영은 유명무실 해 질 수밖에 없다.

윤 교수는 “과도한 경쟁, 성과주의로 인해 임원의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기업 경쟁력이 나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기서 이 같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성과주의로 기업 실적이 오르고, 경쟁이 직원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단순한 스트레스를 두고 한국경제까지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 아닌가?

윤 교수는 “부모가 자녀에게 학업 성적을 높여야 좋은 대학에 가고,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연구 결과는 없었다”며 “과도한 성적 경쟁의 승리만을 요구할 경우 탈선 등의 역효과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가정을 해보자. 임원에 막 진급한 A씨가 있다. 실적을 높여야 자리보존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선 언제 잘릴지 모른다. A씨 도 실적을 앞세워 종전 임원의 자리를 꿰찼다. 높은 실적을 거두기 위한 방법은? 자신의 생활에서 업무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잠을 줄이고,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는 방법뿐이다.

자기 경쟁력을 개발해 성과를 내놓을 수 있지만 시간에 쫓기 다 보니 힘들다. 아래 직원들의 업무 강도를 높이는 것도 쉽지 않다. 무리하게 요구했다간 조직 간 불화가 발생할 수 있다. 스트레스로 인해 짜증이 늘어 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조직 전체가 흔들려 실적이 악화 될 수 있다는 게 윤 교수의 말이다.

A씨가 높은 실적을 거두기 위해선 위로부터의 압박과 아래로부터의 경쟁을 스스로 견디며 자기 경쟁력을 쌓는 수밖에 없다. 8시간을 잤다면 6시간으로 잠을 줄이고, 가족과 보낸 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야 한다.

친구를 만나는 것은 생각할 여력도 없다. 가족들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취미 생활도 마찬가지. 과도한 경쟁의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에 빠지면 조직 전체가 흔들린 다. 조직이 흔들리면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한국 산업의 경쟁력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상명하복 관계로 구성돼 있어 관리자가 흔들리면 아래 직원은 휘청거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큰 조직에서 현대로 접어들면서 사업 분야별, 업무 특성별로 조직을 세분화시킨 만큼 임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1등주의 스트레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최근 임원급 스트레스 관리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리적 안정을 통한 영성(靈性)경영(Spiritual Management)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삼성그룹은 그룹 전 CEO와 임원의 심리적 상태를 조사했다. 임원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미리 검사해보고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 심리치료 같은 정신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최근엔 임원을 대상으로 1박2일 일정으로 명상센터에 방문, 심리안정수련을 받게 했다. 삼성은 스트레스 테스트를 매년 건강검진 항목에 포함시킨다는 계획이다.

LG그룹과 SK도 고위 임원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또 대한항공은 임원 승진 직후 자기 경쟁력 개발을 돕기 위한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2달 간 진행되는 자기개발 시간 동안에는 업무와 관련된 일은 일체 시키지 않아도 된다<박스기사 참조>.

IQ, EQ를 넘어 SQ의 시대로 진화

미래학자들은 영성이 이성과 지식 다음의 경제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Q(지능지수) EQ(감성지수)에 대응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SQ(영성지수)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브룩스대 도너 조하 교수는 “심리적 안정을 통해 만들어진 SQ는 어떤 상황이든 바꿀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이라며 “SQ가 좋으면 IQ, EQ 떨어져도 탁월한 리더십으로 새로운 가치 창조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P&G와 보디샵은 직원의 정서적 안정과 정신적 에너지를 충족시킨 결과 지속적인 혁신과 업무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경쟁을 목적으로 일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행복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얘기다.

치열한 경쟁과 1등주의가 국내 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던 시켰던 경쟁력의 밑바탕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소통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을 벌이기 위해선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 지속가능 경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기업이 고민을 해야 할 때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