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우리나라 전통한복 전문가이시자 전통수의 연구가 한 분을 만나 뵐 기회가 있었다. 단아한 모습과 함께 그 분이 걸어오신 한복 외길 인생을 지켜보면서 전통은 계승될 때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수의(壽衣)는 ‘이승을 떠나는 망자(亡者)가 마지막으로 입는 옷’이다. 이 옷을 미리 준비하는 당사자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마련하고, 자식이 부모를 위해 또는 노모가 아들을 위해 준비하기도 했다. 준비하는 마음에서 수의는 망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산자의 지극한 마음이요, 정성이자 효심이었으며 산자를 위한 장수의 축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의는 마지막 가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최고의 예의를 갖추어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평생을 전통수의 복원과 계승에 앞장서신 선생님의 끊임없는 노력과 혼신을 다한 열정이 최고의 전통수의를 작품으로까지 승화시키신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수의를 단순한 통과의례상 장례용품의 하나로만 취급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장례가 발생되면 어쩔 수 없는 장례용품으로 수의를 구입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통 상장례에는 살아 있을 때 수의를 장만하곤 했다. 미신처럼 들리겠지만 수의를 마련하면 더 오래 산다는 말도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죽음을 미리 생각할 때 평소와 다른 많은 사고와 습관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주변을 둘러보고,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통해 심성을 온화하게 하며, 여생을 위해 건강을 해쳤던 습성과 버릇을 조금이라도 고쳐 수명을 연장하려는 노력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수의는 윤달에 장만해야 하는가? 관혼상제(冠婚喪祭) 중 관례(冠禮)와 혼례(婚禮)는 더욱 심했고, 미리 정할 수 없는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는 여전히 날을 정하는 시속이 존재해 용품을 준비하는 일에는 특정한 해, 특정한 달을 정해 선호하게 되었다. 윤달의 윤(閏)은 ‘쓰고 난 후에 남은 것’을 의미하며 일 년 열두 달 동안 인간 세상에 조화를 부려 인간사를 괴롭히는 귀신도 다시 한 달이 남아도는 윤년이나 윤달에는 자기 할 일을 잊는다고 믿었다. 사실 평상시에도 수의를 준비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인간의 마음 속 약한 곳에 호소하면 누구나 유혹당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윤달에 수의가 급작스런 호황을 누리곤 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평소의 불효가 윤달에 씻는 면죄의식처럼 인식되는 것은 우리의 전통이며 지켜야할 ‘효(孝)’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전통 한복수의 전문가와의 짧은 만남과 대화 가운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 한 가지를 짚어 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베수의는 우리나라의 전통수의가 아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가 자신들의 침탈과 약탈을 위해 우리나라 전통 상장례 문화에 메스를 들이대서 탄생시킨 기형문화의 하나요, 일제가 강요한 잘못된 문화의 단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수의를 비단으로 지어왔다. 특히 왕실이나 귀족 명문가에서는 비단으로 평상복과 같은 기능을 할 수 있으면서도 화려한 수의를 미리 준비해 두기도 했다. 그리고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사람들 모아 놓고 자랑거리로 삼던 것이 일반적인 양반가의 모습이다. 하지만 반상의 계급과 서열이 존재했던 조선시대만 해도 못사는 평민과 천민의 경우에 비단으로 수의를 준비해 두기는 어려웠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비단 수의를 준비하다니... 그래도 서민층에서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라도 비단옷을 입혀드리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어 비단 한 필이라도 관에 넣어서 모셨던 것이다. 이를 지켜 본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일본으로 열심히 약탈해 가야할 비단이 매장되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꼼수를 부리기에 이른다. 즉, 어느 집에나 삼베로 길쌈질을 하던 모습에서 착안해 ‘삼베로 수의를 입혀드리는 것이 최고의 장례다’ 라는 억지를 강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삼베수의이며 요즘은 대마나 저마로 수의를 짓곤 한다. 식민지로 종속시켜 수많은 침탈과 노략질을 자행한 일제가 한 국가의 상장례 문화에까지 칼을 들이대서 이렇게 전통문화까지 유린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요컨대, 우리사회 곳곳에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지만 우리의 상장례문화 중 소중하게 간직해야할 전통수의까지 왜곡시켰다는 사실이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화장이 대세인 요즘 들어 수의에 대한 중요도가 점점 떨어지고, 서양식 장례문화의 유입으로 평상복 차림으로 인생졸업식을 치루는 모습도 간간이 보이지만, 죽은 자를 위한 통과의례상 장례용품의 하나로 치부되는 수의가 사실은 이면에 미리 준비해드림으로써 우리나라 전통의 효(孝)사상이 융합된 것임은 사실이다. 미리 준비해드림으로써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돌아가시기 전에도 인생졸업식 복장을 입어 보시게 하고 주변에 맘껏 자랑하시게 하는 효심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사실 이보다 더 큰 효도는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평상시 좋은 것 많이 사드리고 좋은 것 많이 보여드리고 자주 연락드리는 것이요, 수의를 미리 준비해드렸던 우리 조상들의 진정한 효(孝)의 계승이 아닐까 싶다.